• 최종편집 2023-09-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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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연구] 연평해전 후기(에베소서 6장 10-17절)
    <연평해전>이란 영화가 개봉되어 관객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평해전이 있은 후 십 수 년이 지난 이제야 영화를 통해 그 날의 비극을 접하게 되었는 바, 너무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연평해전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1999년 6월 북한 고속정들이 계속 북방한계선을 넘어 도발하던 중, 6월 15일 오전 8시 45분경 북한 경비정 7척이 우리 해군 고속정에 충돌공격을 실시하고, 우리 해군도 충돌공격을 가하였고, 이 와중에서 북한이 먼저 사격을 가해옴에 따라 우리도 즉각 대응사격을 가하였고, 그 결과 북한은 어뢰정 1척이 격침되고 5척이 크게 파손되어 도주하였습니다. 반면에 우리 해군은 고속정 5척이 경미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흔히 이것을 제1차 연평해전이라고 합니다. 제2차 연평해전은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르러 우리나라와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열리던 6월 29일에 발발하였습니다. 이 날 북한은 다시 북방한계선을 침범했고, 이날 오전 북한 경비정들은 10시 25분부터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에 대해 집중사격을 가함으로써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전은 31분간 진행되었는데, 북한 군함은 대파된 채 도주하였습니다. 제2 연평해전으로 우리 해군은 참수리 357호가 예인 중 침몰했고, 정장인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낳았습니다. 북한군은 약 30여 명이 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평해전으로 이런 피해를 입은 이유는 소극적인 교전수칙 때문이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문을 열려고 노력하던 당시 정부는 전쟁을 염려하여 상대방이 먼저 발포하기 전에는 절대 발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우리 병사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그러나 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규칙을 소극적 대응에서 적극적인 응전 개념으로 수정하였습니다.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 시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 작전)·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5단계 대응에서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의 3단계 대응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상대방이 쏠 때까지 기다리는 소극적 대응으로는 적을 막을 수 없고 아군의 피해가 커진다는 것을 체험한 결과입니다. 종종 경기를 해설하는 이들이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입니다. 적이 쏠 때까지 기다려서는 적을 능률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과 신앙의 영역에서도 선제공격이 중요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쓰러뜨리기 위해 쉴 새 없이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성경 에베소서 6장 10절 이하에서는 영적 싸움의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면서 우리가 입어야 할 것들을 말씀합니다. 그 중에는 방어와 수비를 위한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사탄을 선제공격할 무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말씀의 검입니다. 6장 7절을 보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공격할 수 있는 예리한 검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 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말씀보다 더 예리하고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 말씀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적을 이기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사단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말씀의 검으로 공격하십시오. 적극적 대응으로 영적 승리를 거두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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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 [시내산] 고향 산의 부활
    연두색 산하에 산들바람 불고 날빛 찬란한 오월에 존경하는 선배 시인 장로님께서 시문 선집 “부활연습”을 출판하고 한권을 보내 주었다. 우선 책 이름이 좋았다. 이 땅을 오고갈 모든 사람은 날마다 새롭기 위해 헌 것은 버리고 새 것으로 채우는 희망의 자세로 살아야 하는 뜻을 담아 신앙의 마음으로 승화시킨 글이라 생각하였다. 그 분은 20여 년간 시를 쓰고 수필을 쓴 문인인데 풀잎, 야생화, 호박꽃, 겨울나무, 도시비둘기 등, 약한 것들을 소재로 하여 글을 썼다. 그러나 그 글은 애잔하면서도 광야에서 외치는 말씀처럼 마음을 울렸다. 약한 것이 반드시 약한 것이 아니고, 강한 것이 반드시 강한 것이 아니며, 화려한 것이 반드시 화려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 닳고 이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약하고 부족하다는 것 때문에 실망하고 위축되고 분노하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는 마음도 읽었다. 낙담하는 사람에게 “너는 작고 무가치한 사람이 아니고 천하보다 귀한 존재”임을 일깨우는 힘찬 소리가 담겼었다. 마침 나는 유월 첫 주가 되면 고향을 찾는데, 한 때 대우받았던 뽕나무가 세월에 밀려 산천에 버려졌지만 오디를 검붉게 익혀놓고 오라 부르기 때문에 간다는 말을 되뇌며 찾아간다. 그리고 여러 지역에 떨어져 사는 동생들을 권하여 함께 오디를 따러 간다. 물론 그 일만은 아니다. 그 곳 언덕숲속에 유택을 정한 부모님도 뵙고 옛날을 회상하며 노래도 부르고 소풍날처럼 함께 식사를 하고 혈육의 정을 나누기위해서기도 하다. 뽕나무, 양잠하던 때는 뽕밭이 따로 있었다. 넓고 큰 뽕잎을 얻기 위해 거름을 주면서 또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는 주인의 보호와 특혜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명화에 밀려 용도가 폐기되니 결국 귀족이 천민이 되어 성 밖으로 쫓겨나듯 비탈진 언덕이나 큰 나무들의 너울진 숲 속으로 이사하였다. 그 나무들은 현실에 순응하여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내려 자리를 잡고 사람들이 마음껏 올라갈 수 있을 만큼 큰 나무가 되어 무성한 잎과 많은 오디를 달고 있었다. 그래서 가지를 잡고 삭게오처럼 나무에 올라 사랑스런 어머니 가슴가린 적삼처럼 손을 넣고 싶은 충동에 푸른 잎을 젖히고 잘 익은 오디를 한줌씩 딴다. 그 맛은 비할 수가 없다. 그 추억 때문에 매년 이맘때를 정하여 모이고 즐기게 되었다. 고향의 산, 소먹이고 풀 베든 시절에는 삭막하기 그지없었는데 지금은 푸르게 욱어진 숲을 이루고 새들을 불러 흥겹게 노래 부르도록 부활하였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산봉우리나 골짝이 울창하여 낯설었지만 넓은 그늘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니 가슴마저 확 트인다. 이것이 휴식, 치유, 회복, 재충전이라는 용어들을 모아놓은 공간이리라. 또한 정신적 치유라는 힐링의 장소가 분명함을 느끼게 하니 마음으로부터 감사가 솟는다. 유월, 고향을 가보라. 분명 맛난 것도 주지만 잊은 옛이야기와 소박했던 감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한 때 대접받든 뽕나무가 잡나무들 자리에 서서 자존감을 꺾고 자생력으로 오디를 익혀놓고 출향한 사람들을 기다리는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그 나무에서 느낀 오디 맛 때문에 어느새 오디 물로 얼룩진 옷을 보다가 뽕밭 주인의 호통에 놀라 설익은 오디를 따먹다 도망친 옛일이 되살아나니 빙그레 웃는 웃음도 달콤했다. 수목도 천한 것이 따로 없고 모두 귀하다. 제가 선 위치에서 꽃으로, 열매로, 또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가치를 십분 발휘한다. 인생도 한 때 설치든 자존감보다 현실을 어떻게 장식할까 생각해야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핀잔 받든 사람이 노력하여 큰일을 했다는 이야기처럼 결과가 좋아야 한다. 고향의 벌거숭이산들이 푸르게 부활한 유월, 검붉은 오디는 물론 산딸기와 산나물을 들고 지나온 날을 회상하는 고향은 한껏 푸르렀다.
    • 오피니언
    2015-07-23
  • [하수룡 장로] 내게 맡긴 직분을
    한국의 교회와 성도들이 이웃에 선행한 사실을 공식화된 것만을 보아도 불교 신문에서 조차 불교보다 수 십 배로 많다고 불교인의 각성을 촉구한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기독교가 극히 소수 종교지도자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란 불명예스런 별명을 낳게 되었다. 기독교의 부패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직분을 받기 전의 세상적인 사고나 사명 의식 없이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된다. 부쩍 2000년대에 들어 교회의 지도자인 소수의 직분 자들이 일 만 악의 뿌리인 돈을 하나님 위에 두는 것을 현실화 시켜 버렸다. 돈이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는 물질제일주의가 교회 내에 들어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여 직장에 적응하지 못한 소수의 젊은이들이 사명감 없이 목사의 길을 택한 것이 문제가 되고 사회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분들이 교회 지도자의 직분을 맡은 것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21세기에 들어 젊은 직분자들은 목사사례를 보통 회사 사장월급으로 생각하고 장로는 무급 상무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것도 믿음은 뒤로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이나 세상 학문을 많이 수학한 사람을 직분자로 세우는 것이 상례가 되어 버렸고 직분을 신분 상승으로 여기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직분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교회의 모든 일을 사명감을 갖고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았다. 또한 학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학생이 사명감 없이 신학을 전공하여 목사가 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물론 하나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잘하는 목회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20세기에 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와 현재 21세기의 직분자들의 믿음은 생각하는 관점이 다르고 헌신하는 것도 엄청난 괴리가 있음을 발견하고 정말 놀랄 때가 많다. 오늘날의 직분자들이 옛날처럼 목회자를 존경하고 주의 사명을 헌신적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 작금의 교회의 현실이라 하겠다. 말씀대로 살고 보수적인 신앙을 자랑하는 장로교 총회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극히 소수의 직분자지만 자기의 명예를 위해 금권을 발동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웃 총회에서는 총회장직을 맡기 위해 공탁금을 엄청 내어 놓아야 한다니 일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교회는 목사이면 충분한데 박사에 목매여 국내에서 아주 쉽게 박사를 취득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교회나 상회의 책임을 맡은 직분자들은 교인들이 헌금한 돈을 공짜 돈처럼 함부로 쓰는 것이 상습화 되어 버렸다. 교회당 부지를 구입하는 데 직분자가 이면계약을 하여 차액을 챙기는 불미스러운 일들도 생긴다. 큰 교회로 성장시킨 은퇴목사는 교회에서 자기가 맡은 직을 자녀에게 세습하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한다니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이 650만도 안 된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가 많은 성도로 채워져 있고,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많아지고 세례 받는 교인이 날로 적어지고 있는 것은 정말 걱정스럽다. 이렇게 진행되면 잠시 뒤에는 유럽이나 미주 교회처럼 교회당은 텅텅 비고 연세 많은 교인으로 명맥을 이어나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바로 우리 눈앞에 도래하겠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더해 온다. 거기에다 거대한 이슬람의 침략이 더 무섭다. 그런데도 직분자들은 교회당을 자꾸만 높이 그리고 크게 지으려는 경쟁심으로 하나님의 집은 빚더미 위에 앉아있게 만들어 놓았다. 감당할 수 없이 지은 매머드 교회당을 내어 놓아 이단에 헐값에 처분하는 불행한 사태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데도 남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렇게 빚에 쪼들려 이단에 헐값에 팔려나가는 교회당을 바라보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나에게 맡긴 귀한 직분을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확실히 믿고 주님이 우리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일을 제대로 감당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왜 손가락질을 한단 말인가? 비록 시작은 잘못 되었더라도 내가 받은 직분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믿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사명을 잘 감당해야만 한다. 직분을 맡은 자는 누구든지 내가 모든 일에 주인공이라고 착각하지 말고 주님을 최고의 자리에 좌정하시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살고 다음 세대가 대대로 살아갈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오직 기도 밖에 없다. 지도자인 직분자가 크게 입을 벌려 우리의 죄악을 용서해 달라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어야만 한다. 직분자들이 말씀을 떠나면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떠나신다. 그래서 내게 맡기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을 두렵고 성실한 마음으로 제대로 수행해야만 한다. 그리하면 가정의 모든 문제, 교회문제, 국가사회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
    • 오피니언
    • 정론
    2015-07-23
  • [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⑥
    1. 사실의 사진: 교리 주입 사진-신학(Photheology)이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매력적이다. 사진에도 신학이 있을까? 그렇다면 사진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사진에 신학과 신앙이 없다면 그저 한 장의 종이 쪼가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사진에 신앙과 신학이 있다는 것은 사진 한장에 한 사람의 숨결이나 한 세대의 생명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떻게 신학적 의미를 부여받고, 신앙적 생명을 얻고, 창조적인 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사진의 신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백승균 교수는『사진 철학을 만나다』(북길드, 2014)에서 사진과 사람의 관계, 나아가 인간 의식과 사진의 관계에 관해 ‘사실의 사진’, ‘의미의 사진’, ‘의식의 사진’으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26-37). ▲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 여기 사진이 있다.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연작 사진이다. 사랑하는 딸의 패션쇼를 아빠가 찍은 사진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실의 사진이다. 그리고 이 사실에는 패션쇼를 가능하도록 만든(옷을 입혀준) 언니 희주가 있고, 또 이 모습을 찍은 아빠가 있을 것이다.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언니와 아빠 모두가 이 사진의 완성자가 될 것이다. 이처럼 사진은 사실의 기능을 한다. 사진-신학의 지평도 마찬가지다. 사실의 사진은 사실의 신학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단순한 교리를 주입하는 신앙에 다름 아니다. 교리에 그 교리를 가능하게 한 사람들, 그리고 그 교리를 완성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성령의 역사 하에서. 따라서 사람들의 이해 지평(곧, 의미)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스럽게 사실의 사진은 의미의 사진으로 넘어가고, 사실의 신학은 의미의 신학으로 진행해야 될 것이다. 2. 의미의 사진: 해석학적 신학 <둘째 딸 희진이의 패션쇼>라는 사진의 의미는 무엇일까? 해석의 지평은 어떻게 가능할까? 희진이의 패션쇼는 아빠의 사랑이, 언니의 정성이, 그리고 주인공 희진이의 애교가 의미놓여져 있다. 이것은 배고파도,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의미의 차원이다.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창설한 프뢰벨(F.W.A. Fr?bel, 1782~1852)은 아동의 내적인 신성이 자연물과의 친근함을 통해 발현된다고 말한다. 가령,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목각기차가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고향으로 달려간다면, 프로벨은 그 기차를 그저 장남감으로만 여기지 말고 실제 기차로 간주할 것을 주장했다(백승균, 32). 그렇다. 사람은 사실만으로 살지 않고(그리고 이 사실은 경제와 정치, 현실의 모든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으로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의미로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잘 알았고, 마귀의 시험을 지혜롭게 대처하셨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1-4절) 따라서 의미의 신학은 해석학적 신학의 지평을 열어준다. 사실의 신학이 단순한 교리 주입이라면, 의미의 신학은 성서 말씀을 인간학적으로 해석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다. 사진 한 장을 통해 사실을 넘어 해석학적 의미의 지평 융합을 이룬 것처럼. 3. 의식의 사진과 신학의 사명: 김아타를 중심으로 사진은 불가능한 순간(가령 1/125초~1/15초의 순간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기술이며, 한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영원으로 잇게 하는 예술이다. 사진의 특별한 기법에는(물론 디지털 카메라에 해당되지만) ‘연장노출(extended exposures)’과 ‘다중노출(multiple layering)’이 있다. 연장노출은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수십 시간까지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어두고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것들의 형체를 모두 사라지게 만든다. 반면 다중노출은 이미지를 수십 번 중첩하는 것으로 사물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든다. 따라서 본래의 모습은 사라지고, 처음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 뉴욕을 촬영한 1만컷 이미지를 단 하나로 중첩시킨 작품 앞에 선 김아타 <뉴욕 타임스>가 “철학적 사고가 지극히 참신한 작가”라 극찬한 박박 민 머리, 동그란 안경, 검정 인민복의 사진작가 김아타는 연장노출과 다중노출 기법을 통해 작품을 창작했는데, 뉴욕의 모습을 찍은 1만장의 사진을 겹쳐 한 장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약간의 채도 차이가 있을 뿐 희뿌연 사각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노자『도덕경』5290자,『논어』1만5817자,『반야심경』260자를 한자한자 촬영해 각각 한 장으로 포개는 작업도 했는데(성경은 분량이 많으니 ‘요한복음’이나 ‘창세기’만을 한 글자 한글자 찍어서 촬영하기를 추천한다), 이러한 작업 가운데 김아타는 “자신을 구속하던 경전이 솜사탕이 되더라”고 말한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얻고, 없애버림으로써 있음을 드러내는 구도자의 깨달음이다. 예수께서도 깨달은 바 천하 만국의 영광이 결국 사라짐을, 아쉽지만 지금 사랑하는 딸의 모습도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 속에 사라져 감을 깨닫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아셨고,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는 답을 우리들에게 알려 주셨다. 의미를 넘어 의식의 변화가 새로운 존재를 창출하는 것이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가복음 4장 4-8절) ▲ (2004) 사진에서 의식의 변화를 이룬 김아타의 ‘아이스 모놀로그(Ice Monologue, 얼음 이야기)’인 ‘ON-AIR Project’ 시리즈는 영원함을 상징하면서 역사적 의미도 지닌 파르테논 신전, 부처, 마오쩌둥, 피라미드 등의 조형물들을 얼음조각으로 만들고, 그 조각이 점점 녹아 사라지는 과정을 촬영한 작품이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경우 3개월 동안 실제 크기의 15분의 1로 얼음조각을 만든 뒤 녹아 없어지는 1개월의 과정을 사진에 담아냈다. “모든 존재는 생멸하고 이 우주에 생멸하는 법을 거스를 존재는 없다”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가령, 스틸 사진 3장으로 표현한 <마오의 초상>은 권력의 무상함을 떠올린다. 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부산대학교 문학박사,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 문화
    2015-07-23
  • 대형교회만 조용하면 한국교회 평안하다?
    최근 어느 목회자가 그랬다. “대형교회만 사고 치지 않고 조용하면, 한국교회가 조용하다. 대형교회 때문에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어서 “특히 수도권에 있는 대형교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콕 찍어서 이야기 했다.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정말 마음에 남는 말이다. 크리스천이든 넌크리스천이든 모두가 아는 사랑의교회 문제부터 전병욱 목사 등 국내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대형교회들이 매번 큼지막한 사건을 터뜨려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도 이어지고, 심각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지만, 결국 죄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당연히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선이라는게 있지 않는가? 사랑의교회 문제는 식을 줄 모르고, 전병욱 목사 사건은 홍대새교회 측에서 성명서를 발표해 “도저히 침묵할 수 없게 되었다. 사건의 민낯은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겠다”고 말해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의 필수도서 중 하나가 리처드 포스터의 <돈 섹스 권력>이다. 1989년 발매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혀지는 책 중의 하나다. 제목만 들어도 깨닫게 되는 뭔가가 있다. 실제로 교계에 있다 보면 목사나 장로들, 혹은 성도 등 교회에서 벌어지는 이유가 저 3가지로 압축된다. 재정 문제이거나, 성 문제, 권력을 위한 자리싸움이 교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다. 이 책이 이렇게 오랫동안 읽혀진다는 것은 가장 인간의 본능적 죄악을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 오피니언
    • 사설
    2015-07-23
  • 고신과 고려의 통합 움직임 환영한다
    1976년 제26회 총회시 ‘신자간의 사회 법정 소송에 대한 이견’으로 분열된 고신과 고려가 39년만에 하나로 통합된다는 훈훈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비록 절차들이 남아 있지만, 두 교단 총회장의 의지와 통합추진위원들의 대화 소식은 훈훈함 그 자체다. 금년 총회에서 분명 좋은 소식이 들려 올 것으로 확신한다. 고신총회는 지난 21일 대구성동교회당에서 총회 운영위원회를 열어 고려총회와의 통합추진위원회 보고를 받고, 금번 65차 총회에 통합 안을 총회에 상정하기로 가결했다. 이날 통합합의문도 공개됐다. 통합합의문에 따르면 1. 고신총회와 고려총회는 2015년 9월에 개회되는 제65회 총회 시에 통합을 하기로 한다. 통합 시, 양 총회의 모든 역사(총회회기, 교회역사, 신학교졸업기수 등)는 병합한다. 2. 고려총회의 노회는 그대로 유지하고 통합총회의 행정 개편과 함께 지역노회로 편성한다. 3. 양 총회 소속의 목사, 선교사, 교역자의 신분은 헌법대로 보장하며, 항존직을 비롯한 교회의 직분은 그대로 유지된다. 교회(당)는 가급적 유지재단 가입을 권장하고, 목회자에게 은급(연금) 제도 혜택 및 계속 수학의 기회 등은 양 총회 공히 동등하게 제공한다. 4. 고려신학교 신학원(M.Div 과정)은 고려신학대학원의 역사와 병합하며, 졸업자의 학적은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관리하고, 재학생은 신입생으로 입학(특례)하게 한다. 고려신학교 여자신학원은 고신대학교의 병설과정으로 하여 총회 직영으로 한다. 5. 통합에 따른 경과조치와 추후 필요한 사항은 양 총회 통합위원회가 합의해서 처리한다 등이다. 고신과 고려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에 따라,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와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에 순교로 대처해온 순교 교단들이다. ‘신자간의 사회 법정 소송에 대한 이견’으로 교단이 분열하였지만, 두 교단은 고린도전서 6장 1-10절의 말씀에 의지하여 ‘성도간의 사회법정 소송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고 믿고 있다. 두 교단의 통합이 한국교회 분열의 역사를 종식시키고 통합과 화합의 역사의 시작임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오피니언
    • 사설
    2015-07-23
  • 영남신대 총장선출, 다음 달로 연기
    영남신학대학교(이사장 김수읍 목사)는 지난 20일(월)에 가진 이사회에서 제7대 총장 선출을 다음 달인 8월 14일로 연기하기로 했다. 당초 이날 이사회에서 새 총장을 선출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총장인선위원회는 인선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사회는 후보로 등록했던 이춘길 교수, 최무열 교수, 최인기 교수에게 동의를 받아 총장초빙 재공고를 내기로 했다. 김수읍 이사장은 “동문회비상대책위와 이사들이 새 총장을 자유롭게 추천, 인사의 폭을 대폭 넓혀 일괄적으로 선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영남신대 법인이사회 관계자는 “학내 문제가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 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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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23
  • IYF가 남기고 간 것들
    구원파 박옥수가 설립한 IYF가 지난 7월5일부터 16일까지 한국교회에서 월드문화캠프를 개최했다. 이번 캠프에 참석한 숫자는 세계 50여 개국 4천 명이라고 IYF측에서 발표했다. 특히 첫 일주일은 부산에서 모든 행사를 진행했다. IYF측은 캠프뿐만아니라 지난 5년 동안 세계청소년부 장관들을 초청해 장관포럼을 개최하고, 세계 각국 총장들로 구성된 총장포럼도 개최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김재경 의원이 국회에 이들을 초청하고 만찬을 했으며, 서병수 부산시장도 개막식 참석과 이들을 부산시청에 초청해 만찬을 나누기도 했다. 특히 박옥수는 “세계 여러곳을 다녔지만, 부산만큼 좋은 곳이 없다. 서 시장님이 IYF에 마음을 많이 써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부산에 머무를 시간이 많을 것 같다”고 화답했다. 예년에 비해 명사 강의 등이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박옥수의 입지는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특히 부산시장과 지역 학계, 재계, 정치권 인사들과 관계를 돈둑히 하는 등 부산에 높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교계의 대응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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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의 소리
    2015-07-23
  • 총회 임원회의 이상한 행보
    고려학원 이사장 강영안 장로에 대한 총회 재판이 지난 29일 부산 성산교회에서 열렸다. 총회 임원회가 스스로 결정해 총회재판국에 기소시킨 내용을 다시 해당노회로 환송하라는 것은 오히려 총회 임원회가 ‘직무유기’하는 느낌이 들고 있다. 이미 총회재판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사안을 놓고 서류 반납 요청은 앞뒤가 안 맞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총회운영위에서 총회 임원회의 분위기는 강 이사장 편을 들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회장의 설교 내용에서부터 사회보는 것까지.... 이사장에 비판적인 인사의 발언권을 제지하면서, 참석 대상자도 아닌 학교법인 감사에게 발언권까지 주면서 강 이사장 ‘이사장 추인’ 통과에 열을 올렸다. 과정들을 살펴보면 총회 임원회가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소지가 충분하다. 여기에 지난 21일 모인 임원회에서는 법인 이사 4인이 행정소송한 건에 대해서도 ‘일단 사실여부를 확인 한 다음에 총회재판국에 보낼 지 판단한다’고 결의한 후 유보한 상태다. 총회 임원회의 노골적인 이사장 감싸기가 이제는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학교법인 문제를 좀 더 신중하게 다루자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지금까지 총회 임원회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이사장 감싸기’라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과한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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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 신원그룹 회장 박성철 장로 이야기
    △노사분규 없는 신원그룹 평소 신원그룹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이 이 회사를 방문하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성가곡이 흘러나오고, 벽면에는 ‘월요예배순서’가 붙어 있다. 사옥에는 예배실과 기도실, 신학연구소와 성가단의 간판까지 볼 수 있다. 교회인지, 회사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국내 굴지의 의류업체인 (주)신원은 자타공인 믿음의 기업이다. 경영이념의 첫 번째가 믿음 중심이고 다음이 고객중심, 미래지향이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전 세계의 신원 직원들이 예배를 드린다. 회사 입구에는 ‘주일은 주님과 함께’라는 문구가 크게 붙어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주일에 쉬는 것은 박성철 회장(서울 신길성결교회 원로장로)이 창업부터 지켜온 그의 철칙이다. 박 회장은 신앙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신원통상을 설립했다. 섬유수출과 의류사업으로 승승장구했던 회사는 금융, 레저산업까지 진출하며 국내 16개, 해외 8개 계열사를 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 97년말 외환위기 때 빚을 제때 갚지 못하고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가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의류와 관련 없는 사업은 모두 접었다. 다행히 해직된 직원들 대부분 다른 업체에 재취업을 했다. 신원 직원이면 믿을 수 있다는 평판이 큰 힘이 됐다. 박성철 회장은 신원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책임을 지고 보유 지분 전량을 회사에 무상증여, 월급쟁이 회장이 됐다. 박 회장은 방만했던 경영을 스스로 반성하고 재점검하며, 회사 회생을 위해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직원들은 보너스, 영업비를 스스로 반납했고, 주일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며 야근도 자처했다. 박 회장은 지방으로 내려가 직원들을 설득했다. “주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쉬어야 합니다”면서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이들 영업점들이 주일에 문을 닫으면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오히려 15%나 늘었다. 신원은 해고된 직원들에게 명절이면 지갑이나 벨트 등 선물을 보내기도 했는데 ‘저희는 아직도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는 뜻을 이와 같이 성결교 증경총회장 이재완 목사가 위와 같이 담아 글을 올렸다. 전국CBMC 중앙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박성철 장로는 지난 4월 국세청으로부터 조세포탈 협의로 고발당했다. 지난 7월 9일 사기 회생 및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썩은 사과’ 신원 박성철의 추락(이 글은 동아일보 권순활 논설위원이 지난 7월 15일자에 실은 칼럼 내용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란 표현을 썼다. 임직원들에게 도를 넘은 연봉과 상여금을 뿌리던 미국 금융회사들이 경영이 어려워지자 정부에 손을 내밀어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행태를 비판했다. 탈세 및 사기 혐의 등으로 그제 구속된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을 보면서 경제학자의 질타를 눈여겨 봐야한다. 신원그룹은 1998년 1조 원의 차입금을 안고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해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외환위기 충격으로 수많은 기업이 사라지고 직장인들이 줄줄이 해고된 ‘고통의 시절’에 신원은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부채 상환 유예와 탕감, 추가 융자를 받았다. 특혜에 가까운 혜택이었다. 박 회장은 대주주 지분은 포기했지만 퇴진 약속을 뒤집고 회장 자리를 지켰다. 그는 워크아웃 기간에 재산이 전혀 없는 ‘가난한 전문 경영인’의 이미지를 풍기려고 애썼다. 하지만 2002년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특위가 공개한 자료에서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박 회장 일가는 1998년 이후 11번이나 해외에 나가 귀금속 쇼핑 등에 2711만 원을 썼다. 국내에서도 신용카드로 2억8600만 원을 사용했다. 검찰과 국세청은 워크아웃을 악용해 회사 빚을 떠넘겼던 그가 당시 300억 원의 재산을 숨긴 사실을 최근 밝혀냈다. 박 회장은 가족 명의로 소유한 광고대행사를 통해 신원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되찾으면서 증여세 등 30억 원대의 세금을 포탈했다. 기업 부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한 뒤 ‘말끔한 회사’의 대주주로 당당하게 복귀한 셈이다. 2011년에는 또다시 개인 재산이 한 푼도 없는 것처럼 법원을 속이면서 개인 회생을 신청해 250억 원의 개인 채무를 면제받았다. 100억 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 회장은 ‘썩어도 한참 썩은 사과’다. 틈만 나면 나랏돈을 빼먹으면서 자기 주머니는 몰래 챙긴 행태는 죄질이 특히 나쁜 악성 경제 범죄다. 이런 양심불량 기업인 때문에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떵떵거리며 산다’는 속설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박 회장은 10년 넘게 법의 빈틈을 악용해 이익은 사유화하면서 손실은 국가와 국민에게 전가했다가 결국 추락했다. △박성철 장로의 ‘야누스의 얼굴’ 긍정과 부정을 엮은 두 편의 글을 읽고 느낀 것은 부끄러움뿐이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랴. 하지만, 호남출신이자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인물인 박성철 장로는 한국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줬다. 대형사고가 터졌다고 하면 그 중심에 크리스천이 있다는 사실에 한국교회는 휘청거리며 위기를 맞고 있다.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본 것 같은 충격이다. 신이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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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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