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9-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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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부산박람회 유치를 위한 전국 시.도 연합기도회 전개한다
    | 2030 부산박람회 유치를 위한 기도회 시.도.시.군 본부 주관으로 전개 | 저출생극복을 위한 교회 시설 내 아동돌봄 설치 입법 청원에 적극 동참 한국성시화운동협의회(대표회장 김철민 목사, 이하 한국성시화협)는 지난 7일 오후 3시 부산 수영로교회 교육관 6층에서 전국 시.도 대표단 연석회의를 갖고 2030 대한민국 부산박람회 유치를 위한 전국 시.도.시.군 본부 중심으로 기도회를 갖기로 결의했다. 이날 대표단 연석회는 "이번 2030 부산박람회 유치는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서울 월드컵,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등에 버금가는 세계적 문화, 산업, 관광의 올림픽이다. 대한민국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K팝, K푸드, K방산 등과 더불어 한국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세계적 행사이다. 전 국민이 나서는 이때에 우리 한국교회도 적극 나서서 힘을 보태자"고 뜻을 모았다. 한국성시화협은 이번 '2030부산박람회 유치 기도회 전국 시.도.시.군 연합기도회' 시작을 대전본부에서 막을 올리기로 했다. 오는 9월 21일(목) 대전제일교회(김철민 목사)에서 대전어머니기도회 마마클럽과 연합해 기도회를 연다. 이를 시작으로 부산, 광주, 울산, 제주, 세종, 경남, 경북, 포항, 전남, 전북, 서울, 경기, 강원본부 등에서 계속해서 연합기도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날 한국성시화협은 '저 출생 극복을 위한 교회 시설 내 아동 돌봄 시설 설치' 입법 청원(주관 CTS기독교텔레비전TV, 저출생대책국민운동본부)에도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각 시 본부 주관으로 전개하는 2030 부산박람회 유치기도회와 함께 기도회와 서명운동을 같이 병행하기로 했다. 한편 한국성시화협은 이날 시 대표단회의에서 오는 11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제6회 정기총회 및 성시화지도자 컨퍼런스를 포항에서 개최하기로 잠정결정했다. 또한 이날 회의에서 한국성시화협은 사)한국정직운동본부(대표 박경배 목사)가 주관 운영하는 인권지도사 양성교육 프로그램에 각 시 본부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머 사)복음전함(이사장 고정민 장로)과 ‘들어볼까’ 전국방방곡곡 전도 프로그램에 각 시.도.시.군 모든 교회가 참여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 동참하기로 했다.
    • 뉴스
    • 뉴스종합
    2023-09-12
  • [기고] 학교법인 이사회 보고서에 대한 반론
    제72회 총회에서 상정된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연혁(설립자, 설립일, 초대원장) 수정 청원건> 에 대한 학교법인이사회의 보고서가 제73회 총회 회순(123p 참조)에 보고되었다. 우선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을 안건으로 상정해 주신 3개 노회와 지난 1년 동안 이를 심의하느라 수고하신 학교법인이사회 소위원회 위원들과 관계자분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그동안 이사회가 본 건을 심의하면서 참고자료로 ‘복음병원 사령원부’, ‘제3영도교회 당회록’ 등을 인용했고, 참고인으로는 이상규 교수, 정남환 교수, 오경승 병원장, 김영대 원목실장, 조긍천 목사, 정수생 목사 등을 출석시켜 의견을 청취했다고 했다. 이사회의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에 대한 보고서 전문을 접한 필자는 우려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사회는 사료 전체를 인용치 않았고, 의도하는 결론을 위해 일부만 인용하고 있었다. 이미 오기된 역사자료를 표준인양 인용하기도 했다. 마치 “복음병원 역사는 수정할 것이 없다” 는 결론을 위해 짜맞추기식 논의를 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도 갖게 했다. 아직 총회가 개회되지 않았지만 첫 문제 제기자로서의 책임감과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총회 총대들이 본 건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관점으로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을 이해하고 토의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기 제출된 이사회 보고서에 대한 필자의 소견과 반론을 준비했다. 1. 학교법인 이사회 보고서 내용은 다음 3가지로 요약된다. 1) ‘설립자’는 전영창선생이 설립했음을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전영창, 한상동, 장기려 3인이 동역하여 설립했다”는 ‘설립자 3인설’을 인용했다. 2) ‘설립일’ 건은 제3영도교회 당회록과 복음병원 사령원부를 근거로 1951. 1. 15일이 아니라 1951. 6. 21일임을 종전 그대로 인용했다. 3) ‘초대원장’ 건은 복음진료소 첫 의사는 차봉덕 의사임을 인정하면서도 사령원부를 근거로 차봉덕이 초대원장이 아니라 장기려가 초대원장임을 인용했다. 결국 이번 이사회 보고서는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은 수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이사회가 위와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 주요 자료는 ‘제3영도교회 창립사’와 ‘복음병원 사령원부’였다. 이 두 자료를 근거로 복음병원 역사는 수정할 것 없이 복음병원 설립은 전영창, 한상동, 장기려 3인이, 설립일은 1951. 6. 21일, 초대원장은 장기려박사라는 종전의 역사를 수정없이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인용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사회는 위 두 자료를 정확히 인용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사회는 위 두 자료를 사실대로 인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3영도교회 역사는 앞 부분은 가린체 연혁 뒷부분만 인용함으로 총대들로 하여금 오해할 수 있도록 했다. 2. 이사회의 제3영도교회 당회록 및 발간사 인용 문제 이사회가 실수한 가장 결정적 장면은 제3영도교회 역사를 인용함에 있어서 역사 전부를 인용치 않고 당회록 앞부분에 있는 발간사만 인용했다는 점이다. 보고서를 보면 “제3영도교회 창립사에 의하면 주후 1951년 3월 6일 마산에서 개최한 제 54회 경남노회에서 인가받았고, 동년 3월 23일 예배당 공사를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5월 하순에; 마루를 놓고 6월 3일 주일부터 예배를 보고, 9월 중순에 공사를 필하기로 되었다.”라고 하면서 “1951. 1. 15일에 제3영도교회에서 구제회와 진료소를 함께 시작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습니다”라고 결론 지었다. 이사회의 보고서처럼 제3영도교회는 1951년 3월 6일 경남노회 인가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니다. 제3영도교회는 이보다 2년 전인 1949년 8월 7일부터 시작되었다. 제3영도교회 연혁을 보면 1949년 8월 7일 제일영도교회에서 영도 4개처 교회를 설립키로 하고 수요일부터 박상순전도사 인도로 42명이 모여 개척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고 있다. 1950년 3월 17일 202평 부지 매입, 1950년 11월 1일 가설예배당 완공, 1951. 3월 6일 경남노회에서 인가를 받았다. 이사회는 제3영도교회 역사의 앞부분은 전혀 인용치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제3영도교회 시작점을 1951년 1월 15일 이후로 해야만 1951년 6월 21일을 병원 개설일로 꿰맞출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만일 이사회가 1951년 1월 15일에는 시기적으로 병원을 시작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주장하려고 교회역사 앞부분 2년은 생략하고 뒷부분만 인용했다면 이는 중대한 오류요 실수다. 제3영도교회의 연혁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을 1951. 6. 21일을 설립일로 옹호하기 위해서 한 교회의 역사마저 왜곡 인용했다면 이는 총회를 눈가림으로 속이려했고 또 다른 역사왜곡을 획책했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한 실수인지 왜 그렇게 했는지 반드시 밝혀 주시기 바란다. 3. 복음병원 ‘사령원부(辭令原簿)’ 인용 문제 이사회가 복음병원 역사에 준거처럼 인용한 ‘복음병원 사령원부’는 과연 설립자, 설립일, 초대원장에 대한 결정적인 문서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원부는 보고서의 인용과는 달리 설립자는 전영창, 초대원장은 차봉덕임을 더 확실히 입증해 주는 문서이다. 우선 이 ‘사령원부’는 가치 있는 사료(史料)일까? 이는 이 자료를 누가, 언제, 어디서 작성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검토해야 한다. 만일 이 사령원부를 1951년, 영도에서 전영창이나 장기려, 또는 당시 원무과에서 작성했다면 이 문서는 복음병원 역사에 결정적인 사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려 15년이 지난 이후 누군가에 의해 정리된 문서였다. 1) 이 ‘사령원부’는 1951년 영도에서 작성된 문서가 아니다. 이 사령원부 표지에 ‘主後 1951年 以降’으로 기록되어 있다. 언뜻 보면 마치 1951년에 기록한 문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以降(이강)이란 이후(以後)라는 뜻으로 1951년 설립이후 복음병원 직원의 임명내용을 정리해 둘 목적으로 기록한 명부란 뜻이다. 또한 이 문서는 부산 영도에서 작성된 문서도 아니다. 표지 왼편에 보면 이 문서를 작성한 장소가 명기되어 있다. “부산시 암남동 산 34번지 복음병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이 문서의 기록장소가 병원이 설립된 영도가 아니라 암남동 송도에서 작성된 명부임을 밝혀준다. 먼 훗날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2) 이 문서는 1965년 이후 이재술 장로가 작성한 명부였다 역사기록에서 누가 기록했느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사건 당사자인 장기려나 전영창, 또는 당시 원무과에서 기록한 문서라면 그 의미가 클 것이다. 그러나 이 문서는 필자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복음병원 서무과장이셨던 이재술 장로의 필체였다. 이재술 장로 가족에게 이 명부의 필체를 확인 요청했다. “제 부친의 글씨체가 독특해서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데 너무나 비슷합니다.”라는 답변이었다. 또 다른 유력한 원로에게 이 사령원부의 작성자가 누구일까요? 라는 질문에 “그 당시에 이런 문서를 작성할 분은 서무과에 근무한 이재술 장로님뿐이다”고 답변했다. 이재술 장로는 1965년부터 복음병원 서무과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거창고등학교에서 전영창 선생과 함께 서무과장으로 8년간 근무하다가 장기려 박사의 요청으로 1965년 2월 4일 부산복음병원으로 부임, 1971년 12월 31일까지 약 7년간 근무하셨다. 그렇다면 이 사령장부는 1965년부터 1971년 사이에 작성된 문서가 확실하다. 복음병원설립 후 15년~22년 어간에 이재술 장로가 작성한 사령원부는 그 당시 회자 되는 구전과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된 것임은 자명하다. 이때는 이미 전영창이나 차봉덕은 복음병원 역사에서 배제된 때였고 장기려 중심의 역사로 재편되어 고착된 때였다. 복음병원 설립일도 이미 1951. 6. 21일로 지키고 있었으니 사령원부에도 첫 발령일을 6월 21일로 기록했다. 이 사령원부가 나중에는 복음병원의 정사(正史)로 변착(變着)되어 ‘고신의료원 50년사’에도 그대로 인용 되는 등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3) 이 사령원부는 전영창 선생이 설립자임을 밝혀준다. 이 사령원부에서 제1호로 임명된 직원은 총무 전영창이다. 누가 임명했나? 전영창이 전영창을 발령했다. 발령처 대한기독교경남구제회 대표자가 전영창이기 때문이다. 경남구제회(법인격) 이사장인 전영창이 병원의 총무로 자신을 임명한 것이다. 당시 전영창은 법인의 대표나 직함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병원의 총무로 임한 것은 본인 스스로가 총무로 자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병원초기 총무처럼 모든 시설, 장비, 의료기 구입, 수선, 운영일체를 도맡았다. 그래서 장기려박사도 당시 전영창을 ‘총무요 설립자’라고 표현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설립자가 법인과 병원의 대표자가 된다. 지금의 의료법상으로도 그렇다. 이 사령원부가 비록 전영창을 병원의 총무로 임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법인과 병원의 대표자요 설립자인 것이다. 경남도청도 1951. 12. 23일 복음의원을 의료기관으로 인가하면서 전영창을 병원의 대표자(경남도보 제 103호, 개설대표자 전영창)라고 명시했다. 주무관청이 전영창을 설립자요 대표자로 허가했으면 병원설립자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금번 보고서가 전영창, 장기려, 한상동 3인이 동역해서 설립했다는 병원설립자 3인설을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는 주무관청의 허가마저 무시한 것이고 의료법에 대한 무지의 소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전영창이 복음진료소를 개원할 때 한상동 목사는 전여 관여치 않았고, 장기려 박사는 6개월 후에야 2대 원장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두 분이 공동 설립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의료법 제33조(개설 등)는 법인 또는 의사 1명만이 의료기관의 대표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사회가 복음병원 3인 설립설을 인용하려면 최소한 대한민국 의료법이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상식은 가지고 인용했어야 했다. 3인 설립설이 불가능한 4가지 이유는 필자의 “나삼진목사의 복음병원 설립자 3인설에 대한 반론”(기독교보 2022. 7.13일자)을 참고하기 바란다. 4) 이 사령원부는 차봉덕의사가 초대 원장임도 밝혀준다. 이 사령원부는 인사발령 제2호 차봉덕을 의사로, 제6호 장기려를 원장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이 원부는 차봉덕을 첫 번째 의사로 임명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의료법 제33조에 따르면 처음 개설하는 의사가 원장이고 초대원장이 된다. 대한민국 의료법 제 33조 8항(그 밖의 규정)에는 “의료인은 의료기관 개설시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할수 없다”로 되어 있다. 한명의 의사가 둘 이상의 의료기관에 중복해서 근무해도 불법이 된다. 장기려박사는 6월 말까지 제3육군병원에 외과과장으로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7월 2일에 부임했다. 개설시 있지도 않은 장기려를 초대원장이라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비록 이 원부가 기록자에 의해서 차봉덕을 의사로, 뒤에 부임한 장기려를 원장이라고 기록했다 해도 의료법상으로는 처음 개설한 의사가 원장이 되는 것이다. 모든 판단 기준은 법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이 사령원부는 의료기관 개설에 대한 의료법에 반하는 인위적 기록이다. 이사회 보고서가 아무리 장기려를 초대원장이라 강변해도 이 사령원부는 오히려 차봉덕의사가 초대원장임을 입증하고 있다. 사실(fact)을 호도, 왜곡한 기록은 역사가 될 수 없다. 이 기록은 기록자 또는 주변의 의도가 개입된 기록, 즉 차봉덕을 배제하고, 장기려를 초대원장으로 만들기 위한 인위적 기록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기록이 중요하지만 사실을 왜곡한 기록은 역사가 될 수 없다. 5) 대한기독교경남구제회와 복음진료소는 동시에 설립했다. 이사회 보고서는 경남구제회와 진료소를 동시에 설립할 수 없다고 했다. 1주일 만에 두 기관을 설립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관적 해석으로 1951. 1. 15일 병원 설립일을 부정하고 있다. 부정하려면 이를 뒷받침할만한 역사적 사료를 제시해야 함에도 이사회는 그 어떤 사료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리’라는 추론으로 부정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법인과 수익기관(병원)은 동시에 설립한다. 심지어 병원설립이 되지 않으면 법인허가도 인가되지 않는다. 6.25전쟁 중 5천불 구호금을 가지고 미국에서 급거 귀국한 전영창 선생이 불과 1주일 만에 구제회(법인)와 진료소를 설립한 것이 왜 ‘무리’라고 억측하는가? 당시는 전란 중이었고 수십만의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몰려와 구호를 위해 백방으로 뛰며 마음이 급했던 전영창이 1주일 만에 구제회와 진료소를 준비하는 것이 왜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가? 지금의 여유있는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안된다. 그때는 그만큼 시대가 급박하고 긴박했었다. 또한 당시에는 국민의료법이 제정되기 전이므로 의사가 진료하는 곳이 집이든 창고든 어디서나 병원개원이 가능했다. 의료법이 없는 시대에는 의사만 있으면 이틀만에도 병원 개원이 가능하다. 구제회와 진료소를 동시에 설립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1월 설립 후 불과 두달 후인 그해 3월 경남노회가 각 교회로 하여금 헌금하여 보내 주도록 결정한 것은 경남구제회가 운영하는 진료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영창의 아들 전성은은 부산 영도로 이사를 오니 진료소 앞에는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얻어온 재료(밀가루 옥수수 등)로 끓인 죽을 받기 위해 선 줄이 200m는 되었다고 회상했다. 경남노회가 결의해서 보내 준 구호헌금은 이렇게 쓰인 것이다. 경남구제회와 진료소를 동시에 설립했다는 것은 설립자 전영창의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전영창은 그의 자서전격인 전영창 전집Ⅱ <거창고등학교 전영창> 연혁에서 “1951. 1. 15일 피난민 무료진료소 복음병원을 개설”했다고 남겼다. 그의 장례식 연혁에서도 같은 내용이 보고 되었다. 그의 아들 전성은이나 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설립자 본인이 1. 15일 구제회와 병원을 설립했다고 설교시나 강연때 자주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이사회가 이를 부정할만한 사료나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무리”라는 말로 부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그 외에도 1. 15일 병원을 설립했다는 여러 근거 및 자료는 많다. 필자의 <복음병원 숨겨진 초기역사>를 참조하기 바란다. 4. 마무리 하며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을 다룬 이사회의 총회 보고서 결론은 “복음병원 역사는 수정할 것이 없다”였다. 필자는 이사회가 그 근거로 제시한 ‘제3영도교회 역사’와 ‘복음병원 사령원부’의 실체를 분석하면서 그 인용이 부적절했음을 지적했다. 이 두 문서는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을 반대할만한 사료가 될 수 없다. 오히려 3개 노회가 제출한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을 지지하는 사료들로도 볼 수 있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사회 보고서는 제3영도교회 역사를 잘못 인용했다. 사령원부 또한 복음병원설립 후 15년 이후 작성된 문서로서 이미 전영창과 차봉덕이 복음병원 역사에서 배제되고 장기려 중심의 역사로 고착된 때 작성된 문서임을 밝혔다. 이 사령원부가 나중에는 복음병원의 정사(正史)로 변착(變着)되어 ‘고신의료원 50년사’에도 그대로 인용 되었고 오기된 역사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고신총회 70년사(총회출판국, 2022)에서는 설립자는 전영창, 설립일은 1951. 1. 15일, 초대원장은 차봉덕을 정사(正史)로 남겼다. 바라옵기는 이번 고신총회가 3개 노회에서 제기한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을 객관적 사료들을 기준으로 검토해 주시고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단의 역사학자들과 관계자들이 공청회나 학술발표회 등을 거치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하여 복음병원 역사와 연혁을 수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5. 수정해야할 복음병원 정사(正史)는 무엇일까? 1) 복음병원 설립자는 전영창선생이다. (1) 장기려 박사의 증언. 장기려 박사는 복음병원 회보인 ‘영아와 유아의 찬미’(창간호) 권두사에서 전영창을 일컬어 “설립자 전영창씨는”(장기려, 영아와 유아의 찬미 창간호, 1951)이라고 칭했다. 복음병원 회보 제4집(1976년)에서도 “본원의 설립자이며 총무 일을 보아 주셨던 전영창 선생”이라 했다. 또한 한국일보 연재기사(1976년)에서도 “복음병원 설립자 전영창씨와 함께” 라는 설명을 사진과 함께 남겼다. 그 외 그의 자서전 등 여러 곳에서 설립자는 전영창임을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각종 언론, 세미나에서 장기려박사를 설립자라고 말한다. 복음병원 연혁에 아직도 설립자를 전영창으로 표기하지 않고 있다. (2) 주무관청인 경남도청의 확인 1971년 발행된 복음병원 회보 <영아와 유아의 찬미> 제 3집 복음병원 연혁에 “1951. 12. 23. 복음의원 개설 허가받음(경남도보 제 103호, 개설대표자 전영창)”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경남도청이 복음의원 설립자를 전영창으로 확인해 준 것이다. 주무관청이 전영창을 개설대표자로 인정했으면 다시는 3인설 같은 주장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3) 황영갑(차봉덕원장 남편), 전성은(전영창의 아들), 차진실(차봉덕원장의 조카), 맹숙희(초창기 간호사), 성소균, 이재술, 지강유철, 이상규 교수 등 수많은 분들이 전영창선생을 설립자로 증언했다. 2) 복음병원 설립일은 1951년 6월 21일이 아니다. (1) 1951년 6월 21일은 장기려 박사가 제 3육군병원에 재직 중일 때다. 지강유철의 장기려 자서전에는 “1951. 6. 21일 한상동, 전영창, 그리고 경남구제위원회 회계 김상도 목사와 함께 제 3육군병원(외과과장 장기려박사 근무지)으로 찾아갔다. 선생은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하고는 채 열흘이 되기 전인 6월 30일 제3육군병원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6월 21일은 전영창이 외과의사를 구하기 위해 한상동목사의 소개로 장기려박사를 만난 날일뿐이다. 6월 21일이 개원일이 될 수 없는 이유다. (2) 경남노회 회의록도 1951년 6월 이전에 설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51년 3월 6일~8일 마산문창교회에서 개최된 제54회 경남노회에서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 승인하고 각 교회는 연보하여 구제회로 보내 주시되 연보는 4월 29일 주일 일제히 하여 주기로 함” (맹호원, 경남노회 회의록, 角丸인쇄소, 1929). 이 결의는 복음진료소가 1951. 6월 23일 이전에 이미 개설되었음을 의미한다. 3) 복음병원 설립일은 1951년 1월 15일이다. 1951년 6월 21일이 복음병원 설립일이 아닌 이상 이제 남은 것은 1951년 1월 15일뿐이다. 이 날짜는 전영창 전집Ⅱ <거창고등학교 전영창, 마루그래픽스, 2013. 9.15>의 연혁에서 확인된다. 또한 전영창 선생의 장례식 때 보고된 장례식 순서지 연혁에서도 “1951. 1. 15. 부산에 복음병원 창설”로 기록했다. 이에 대해 전성은은 “이 날짜는 아버지가 학교에서 설교나 훈시 시 자주 말씀하신 내용으로서 1951년 1월 9일 미국에서 유학 중 급거 귀국하여 1월 15일에 경남구제회와 복음병원을 설립하셨다고 말씀하셨기에 그것을 근거로 연혁에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전성은, 경남 거창 자택에서, 김세중, 고명길에게 증언, 2014. 5. 19) 4) 초대원장은 차봉덕 원장이다. 복음병원의 초대원장이 차봉덕이라는 사실은 장기려 박사 본인의 입으로 자신이 영도 복음진료소에 갔을 때 서울의전 출신 여의사(차봉덕)가 근무하고 있었고 이를 이어받았다고 했다. 또한 차봉덕의 남편 황영갑 목사의 자서전에서도 확인된다. 그 외 차봉덕원장의 조카 차진실 사모, 당시 간호사였던 맹숙희 권사, 전기기사 김종열장로 등의 증언에 의해서도 확인이 된다. 늦게 발굴된 복음병원 사령원부도 차봉덕을 첫 번째 의사로 재직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당시에는 의대 졸업장만 있으면 가정집이던 창고던 어디서나 개원할 수 있었다. 복음진료소도 의사가 진료하는 엄연한 병원이었다. 차봉덕원장이 6개월 만에 이임하고 전영창선생마저 3년 후 병원을 떠나자 장기려박사 중심으로 병원역사가 정리되다 보니 정영창, 차봉덕 원장의 이름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초대원장이 바뀔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법상 단 3일을 근무했다해도 첫 개설의사가 초대원장이 되는 것이다 6. 고신총회 총대님들께 드리는 고언 1) 학교법인 이사회의 보고서가 주관적 역사 해석이 아니라 역사적 사료들을 정확이 인용했는지를 검증해 주시기 바랍니다. 2) 검증 시 역사학자들의 사료(史料)에 근거한 설명과 관련자들의 의견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다양한 의견이 있을 시 충분한 시간을 갖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다각적인 객관적 사료 조사와 연구, 학술토론, 공청회 등을 통해서 합의점을 도출하고 결론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병원의 숨겨진 역사는 단순히 복음병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영창 선생을 축출하고 역사를 오기한 분들 역시 고신의 초기 인사들이었기에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이라는 고신정신과 정체성 문제로까지 연결됩니다. 이런 점에서 총회의 복음병원 역사 수정건 심의는 결코 가벼이 할 수 없으며, 그 역사적 소임과 책임이 매우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신사참배 문제로 고신이 분리될 때 교회당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새롭게 개척한 것은 물질을 초월하는 순교자적 신앙과 순수성이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복음병원문제에서는 왜 전영창을 부정축재자로 억지 탄핵하고 축출했었는지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천막병원에서 점점 확장되고 커져가는 복음병원 재산권문제가 그 중심에 있었음은 그 당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전영창이 복음병원의 이사장으로서 훗날 자신의 재산이라고 주장할까 두려웠던 것일까요? 1953년 전영창을 탄핵하는 임시노회에서 조수옥, 전성도, 황철도, 김상도, 안용준, 최일영목사 등이 그토록 반대하며 전영창의 무고를 변호하고 항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앙의 정통과 순교정신을 강조한 고신을 향한 충고와 항변은 아니었을까요? 지체된 정의도 정의가 아니지만 불의한 결정과 왜곡을 그대로 지나치는 것은 더더욱 정의가 아닐 것입니다. 코람데오 정신도 아닙니다. 부디 바라옵기는 학교법인이사회와 총회는 몇몇 사람의 주관적 역사해석이 아니라 객관적 사료를 근거로 검증해 주시고,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기술방법에 따라 학술토론이나 공청회 등을 통해 공정하게 심의결정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더 확실한 새로운 사료가 나오면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따를 것입니다. 그동안 이 일에 수고하신 학교법인 이사회와 관계자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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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1
  • 개신교 인구 비율, 최악의 경우 10년 뒤 10%로 추락할 수 있어!
    목회데이터연구소는 ‘한국인의 종교 현황과 의식’이라는 주제의 조사 결과를 <넘버즈 206호>에서 발표했다. 한국 사회 가파른 속도로 탈종교화! 1998년 ‘한국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한국교회 최초로 ‘한국인의 종교실태와 신앙의식'을 파악하기 위한 종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2012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이 조사를 이어받아 올해로 5번째 조사를 실시하여 출간한 ‘한국 기독교 분석 리포트’는 지난 25년에 걸쳐 한국인의 종교생활과 인식을 추적한 유일한 보고서로서 그 의미가 있다. 2022년 기준 종교인의 비율은 37%로 조사 이후 처음으로 30%대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체적으로 2012년 이후 탈종교화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신교 인구 비율, 최악의 경우 10년 뒤 10%로 추락할 수 있어! 탈종교화 추세에 따라 종교별 인구 비율도 감소하고 있는데, 개신교인의 비율은 2012년도(22.5%)를 정점으로 해서 2022년 15.0%까지 하락하고 있다. 이 추세를 반영하여 10년간 단순 하락 기울기를 반영, 향후 10년 뒤를 예상하면 최악의 경우 10.2%까지 감소할 수 있다. 향후 10년 뒤에는 개신교인이 국민 10명 중 1명에 불과할 수 있다는 추론이다. 종교 다원론 믿는 개신교인, 32%! 다양한 종교 교리에 대해 인식을 물었다. 개신교인의 경우 ‘유일 신앙’을 믿는 비율과 ‘종말론’에 대한 동의율이 50~60%대의 비교적 낮은 비율을 보였다. 또 하나의 종교가 아닌 여러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보는 ‘종교 다원론’을 믿는 경우는 32%로, 개신교인 3명 중 1명꼴로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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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11
  • [소강석칼럼] 엘리멘트 시티를 이룰 수는 없을까
    애니메이션 영화 ‘엘리멘탈’을 아는가. 어린아이뿐 아니라 장년에게도 인기를 얻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불과 물, 공기, 흙 등 4원소가 사는 엘리멘트 시티에서 불인 ‘앰버’와 물인 ‘웨이드’가 만나 특별한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을 담았다. 생각해 보라. 물과 불이 어떻게 사랑을 이룰 수 있겠는가. 물과 불은 상극이다. 불은 물을 끓게 하고 또 아무리 타오르는 불도 물을 부으면 사그라들게 돼 있다. 물과 불은 절대로 하나가 되려야 될 수가 없다. 절대로 사랑할 수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 앰버는 우연히 웨이드를 만난다. 그들은 결코 만나서도 안 되고 하나가 될 수도 없는 존재다. 하지만 웨이드는 앰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꿈을 응원한다. 그러면서 상극인 두 존재가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둘은 “우리가 하나 될 수 없는 이유는 백만 가지지만 나는 널 사랑해”라고 말하며 서로의 손을 붙잡는다. 마침내 불과 물이 만날 때 무지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불의 세계 언어인 ‘디쇽’을 외친다. “영원한 불꽃은 없으니 빛날 때 만끽하라”.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앰버와 웨이드는 사랑을 이루며 새로운 꿈을 향해 떠난다. 엘리멘트 시티는 서로 다른 4원소를 의인화해 다르다는 이유로 다투고 싸우고 분쟁하는 우리 세대를 향해 경종을 울린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해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어떻게 불과 물이 만나 무지갯빛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감탄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한국교회도 엘리멘트 시티를 이룰 수는 없을까” 하고 말이다. 원래 나 또한 교회 성장 지상주의에 빠져 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눈이 뜨였다. 어느 한 교회가 대형화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영국과 미국 교회를 보라. 대형교회가 많았지만 반기독교 악법을 막지 못하지 않았나. 그건 서로 하나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물과 불처럼 상극을 이뤘기 때문이다. 서로 크기를 자랑하는 순간 반기독교 악법이 통과된 것이다. 여기에 눈을 뜬 나는 줄기차게 한국교회 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적과 같은 부흥을 이루며 위상을 떨치던 한국교회가 언제부터 정체되고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는가. 교계가 다투고 분열하면서부터 쇠퇴기를 걷게 된 것이다. 마치 불과 물은 결코 하나 될 수 없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 분열을 위한 분열만을 주장하는 것과 같다. 더 늦기 전에 더 멀어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반드시 하나가 돼야 한다. 유독 한국교회를 향해서만 밀려오는 반기독교 사상과 문화, 정서의 쓰나미를 막기 위해서라도 연합해야 한다. 이유를 불문하고 엘리멘트 시티를 이뤄야 한다. 아무리 선각자가 외쳐도 시대가 선각자의 말을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큰 역사를 이룰 수 없다. 그렇듯이 아무리 연합을 외쳐도 한국교회가 각성하지 못하면 공허한 메아리가 돼 사라질 뿐이다. 지난 주일(13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광복 78주년 기념 및 한기총·한교총 통합 결의 기념예배’를 드렸다. 나는 그곳에서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유는 100만 가지가 넘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한다”고 외쳤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한국교회총연합 광복 78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에서도 “일제강점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나라를 해방하기 위해 다른 종교 지도자와도 손을 잡았는데 한국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우리끼리 어찌 하나 될 수 없는가”라고 외쳤다. 물론 연합만이 능사는 아니다. 연합한 이후 한국교회가 새로운 각성과 부흥·영성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 중 불 같은 사람도 있고 물 같은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될 때 무지갯빛 세계를 이룰 수 있다. 우리 모두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랑을 하자. 영화 속 대사인 ‘디쇽’처럼 빛날 때 하나를 이뤄야 한다. 이를 통해 무지갯빛 찬란한 엘리멘트 시티를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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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성서연구] 편하게 사는 사람들(?)
    최근에 제가 속한 교단의 갈등이 깊어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교회들이 화합하고 평안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사회가 존경할만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의 정치적 합의와 결정이 성경의 정신에 따를 수 있게 되도록 늘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이해타산에 따라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을 막기 위해 몇몇 교회가 나름대로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의견을 제안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어떤 분이 반박문을 내셨는데, 거기 <지금까지 편하게 목회한 이들이 갑자기 나섰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의견은 지금까지 편하게 살고, 편하게 목회한 사람들이 갑자기 나서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의견의 옮고 그름을 말씀드리려는 게 아닙니다. 이 글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서서>란 부분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나선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는 드렸고, 성실히 회원의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나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편하게 목회한 이들>이란 말은 반박할 수 없고, 반박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분의 말씀이 맞기 때문입니다. 함께 의견을 제시한 분들은 규모가 있는 교회의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신학생이 된 이후 신학대학원을 무사히 마쳤고, 부수적인 학업을 이어갈 기회도 있었고, 늦지 않게 결혼하여 가정도 꾸렸습니다. 교육전도사 시절 이후 지금까지 목회지가 없어서 쉰 적도 없고, 목회 과정에서 파국을 경험한 적도 없었습니다. 평탄하게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안정된 교회에서 목회하기 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적도 없었습니다. 성도들의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을 받으면서 배부르게 지난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분의 <편하게 목회한 이들>이란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놀고먹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앉기가 무섭게 책상에 앉아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교회를 떠나 있지 않은 모든 날에 새벽기도회를 직접 인도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휴가를 가 본 적도 없고, 가족과 해외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탄 적도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위해 온 주머니를 털어 건축헌금을 비롯한 다양한 특별헌금을 했습니다. 지금도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매 주일에 다섯 번 설교하고, 평일에도 많이 설교합니다. 어려운 교회들이 요청하는 집회도 시간만 되면 거절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쉴 틈이 없이 분주하게 충성한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변명해도 저는 편하게 사는 사람일 뿐입니다.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힌 적도 없고, 욕을 먹은 적도 없습니다. 굶은 적도 없고, 당장 예배당 임대료를 내지 못해 길거리로 나앉은 적도 없습니다. 어려운 선교지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선교사님이나 농어촌의 힘든 사역지를 온몸으로 지켜내는 분들에 비하면 호사를 누립니다. 그래서 이번 일로 인해 다시 한 번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편하게 사는 사람으로 여겨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을 마음에 담고 더 치열하고 열심히 살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편할 수 있어도 조금 덜 편하게 사는 법을 터득하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웨슬리는 젊었을 때 60불로 한 달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후에 경제적으로 많은 여유가 생긴 후에도 여전히 60불로 살았다고 합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웨슬리는 편하게 사는 목사의 굴레를 벗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 모두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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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시사칼럼] 우아한 거짓말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의 작가로 유명한 김려령이 2009년 쓴 소설이면서 2014년 동명으로 상영된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거짓말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나 ‘선의의 거짓말’같이 조금은 익숙해진 말과 달리 “우아한 거짓말”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소설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여기서 “천지”는 한 소녀의 이름입니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의 둘째로 학교에서 소위 ‘왕따’를 당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엄마에게도 무심하기만 한 언니 만지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속내 한번 털어놓지 못하고 끝없이 ‘난 외롭지 않아, 난 슬프지 않아’ 자신에게 되뇌던 그 말을 작가는 “우아한 거짓말”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발표된 지 꽤 지난 이 작품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최근 서이초등학교를 비롯한 몇몇 젊은 교사들의 비극적인 사건들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요즘에는 교사도 학교를 떠난다. 죽지 않으려면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 농담 같지 않은 시대다.”(방구석도서관) 하지만 죽을 만큼 힘이 들면서도 스스로를 우아한 거짓말로 위로하며 지옥처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어찌 그들뿐이겠습니까? 작품 속에는 화연이란 소녀가 등장합니다. 이 아이는 천지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러나 실제로 화연은 본인을 친구라 믿고 있던 천지를 조정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이 아닌 말을 하며 천지와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고, 자기 외에는 친구가 존재하지 않도록 천지 주변을 정리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천지를 통해 얻고 아예 천지를 소유하고자 합니다. 천성이 악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천지가 죽고 난 후 화연은 자기가 따돌림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천지처럼 힘들어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화연은 어릴 적 아픈 경험(학대)으로 인한 우울증과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천지에게 그랬을까요? 그렇다면 이런 경우도 “우아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최근 일본의 오염물질 해상투기로 나라가 무척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오염수’가 아니라 ‘오염처리수’라고 부르자는 주장을 제기합니다. 국민들을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선동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취지라고 합니다만, 일본의 그릇된 행태에 반대하지 못한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려는 의도는 없을까요? 더군다나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와 안전이 달려있으니 결코 우아한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가 없겠습니다. 또 다른 등장인물들도 있습니다. 천지의 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알려 하지 않았고 무심하게 지나쳤으며 의도적으로 회피했던 이들입니다. 천지의 언니 만지와 엄마 그리고 미라라는 아이가 그러합니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진실을 외면하고 혹은 방관하며 ‘넌 최고야’ 혹은 ‘너희가 내겐 신(神)이야’와 같은 역시 일종의 우아한 거짓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식의 언사는 당사자는 물론 실체적 진실의 규명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독립운동가 논쟁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학교 다니면서 고군분투하셨던 독립군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이 대한민국 군대의 얼굴로 세우기에는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을 교묘한 논리로 뒤엎으려 하는 가운데 온갖 말들이 난무합니다. 누군가 니체에게 거짓말을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지금 자네의 거짓말 때문이 아니라네. 이제부터 자네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야.” 그렇습니다. 신뢰를 파괴하고 진리의 근간을 흔들기 마련인 거짓말은 그 어떤 것이든 우아하게 또는 아름답게 포장될 수 없습니다.(매일경제, 성동찬) 천지는 자기 손으로 소중하게 짠 붉은색 털실로 감싼 다섯 개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언니에게, 엄마에게, 화연에게, 미라에게,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남긴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였습니다. 유일하게 우아한 거짓말을 남기지 않은 사람, 마지막 메시지는 그런 자신에게 남긴 정직한 목소리였지요. “마지막 남은 두툼한 털실 뭉치는, 나에게 주었습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지 않고 가면, 내가 너무 가엾습니다. 그리고 시립도서관 2층 아무도 손대지 않는 책 사이에 끼워놓았습니다. 같이 있어 외로운 것보다 차라리 혼자 있어 외로운 것이 나았던 그런 곳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런저런 합리화로 치장된 우아한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리를 직시하고 말하는 용기를 가지고 용서하며 화해하며 차라리 투박한 진실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진리다’(요 14:6)라고 외치셨던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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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은혜의말씀] 하나님의 계명, 사람의 전통(막 7:1-14)
    오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전통’에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떡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유대교에서는 떡을 뗄 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리는데, 그때는 반드시 먼저 손을 씻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정신은 희미해지고, 손을 씻는 형식만 남게 되었습니다. 형식을 어떻게 지키느냐에 굉장히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전통이 말씀의 본질을 대신할 위험이 있습니다. 전통이 진리로 둔갑해 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참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아있는 전통주의는 없습니까? ‘우리는 옛날에는 다 이렇게 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어떤 삶을 사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성경이 아니라 전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면, 어떻게 하든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1. 내 신앙이 성경적인가 전통적인가 분명히 해야 합니다.(10-13절) 예수님께서 ‘고르반’이라는 제도를 예로 들고 계십니다. ‘고르반’이란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께 연보를 드리는 바람에 부모를 봉양할 돈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해도 양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그 고르반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봉양하기 싫으니까 고르반을 핑계 삼아, 나는 하나님께 연보를 드렸기 때문에 부모를 모시지 않아도 된다고 강변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마음으로 고르반이라는 것을 교묘하게 포장하는 그들의 위선을 엄중하게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전통에 집착하다 보면, 성경의 본 의미를 소홀히 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전통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전통을 강조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전통이 성경보다 더 강조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순간 이것이 “우리 교회 전통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는가?” 입니다. 2. 우리의 내면을 점검해야 합니다.(21-23절)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내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을 다루기보다 외적인 활동에 더 치우쳐 있습니다.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린 죄를 그대로 둔 채 다른 것에 몰두합니다. 그게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마음의 창고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계십니다. 무엇을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겉모양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너무 의식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보다 그 일을 하고 있을 때마다 내면의 동기를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에 서야 합니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경험이 날마다 일어날 때, 사람들로부터 칭송받고자 하는 욕망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추구할 신앙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의 인생이 변하고, 구원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생이 바뀌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날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자유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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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교회음악칼럼] 찬송(예배)하며 사는 사람들 7
    누구나 인정하듯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사회 전반이 다 힘들어 하는 것 같다. 크리스천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다. 무슨 대단한 역할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주의 뜻을 실천하는 그것이다. 그러나 이조차 연약한 우리가 쉬이 감당할 수 없다면 약한 나로 강하게 하시는 주께 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이 땅위에서의 본분을 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지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 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너나 나나 모두 다 미련하다는 것을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이미 늦어도 그런대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잠시 스쳐가는 청춘 훌쩍 가버린 세월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 살다 보면 알게 돼 비운다는 의미를 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철들면 죽는다는 속된 말이 있다. 바꿔 말하면 죽기 전에는 철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네 인간들은 주를 인하여 구원받아 성도가 되고 성화의 길을 걸어간다. 짧은 시간에 성화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가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안타깝지만 사실이고 현실인 것이 분명하다. 위의 시는 한국의 유명 대중가수가 부른 노랫말이다.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잠언서를 비롯한 많은 성경구절들이 저 노랫말과 오버랩 되면서 너무 마음에 와 닿았다. 마지막 가사 꿈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세상적인 욕망과 욕심 그리고 그렇게 놓지 못하고 붙잡으려 몸부림쳤던 그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들이었음을 설명하는 것 같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 땅을 떠나는 많은 세상 사람들의 한결같은 모습은 미련과 회한, 부질없음과 허무함에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며 인생의 덧없음을 온 몸으로 고백하며 생을 마감한다. 그렇지만 우리네 성도들의 결국과는 많이 다르다. 주를 시인하고 믿는 자들의 꿈은 이제껏 놓지 못했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겸손히 주 앞에 내려놓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찬송하며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기에 그렇다. 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축복인가? 우리 입술에 노래가 계속되어야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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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분홍목사의 다음세대이야기] 사춘기 자녀들을 바르게 키우려면
    제가 부모들 교육을 할 때 믿는 부모들이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우리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니까 아이들이 이제 교회에 안 나오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사춘기 부모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교회에도 나와야 하니까 “한 달에 한 번만 예배에 나와라.” 이렇게 정리를 했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잘했죠!”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제발 욕심을 버리시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안 믿는 집 애들은 공부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믿는 집 애들은 공부도 해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사교육도 받아야 하고 공부도 1등 해야 하고 교회까지 와야 합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애가 어디 있습니까? 슈퍼맨입니까? 못합니다. “안 믿는 부모들은 공부만 시키지, 우리는 공부에 신앙까지 시키니 어떻게 애들이 견디겠습니까? 적어도 하나는 포기하셔야 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이 중요하면 이것만 꼭 잡고 나머지 중에 뭔가 하나는 포기해야 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포기를 못하십니다. 학교 공부도, 사교육도, 예체능도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학원을 대여섯 개 보내시면서 교회까지 잘 나오는 그런 자녀로 키우기를 기대하시고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자녀들을 밀어 붙입니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들이 그 욕심에 치를 떨면서 교회 나오기를 거부하고 마는 것입니다. 왜 그럽니까? 부모가 자기 자신을 포기 못 한 겁니다. 내 사회적 체면, 내 지위, 내 계획, 내 꿈을 포기 못 하니까 내 자녀에게 나보다 더 많은 삶을 압박하고 강요하는데 그걸 애들이 어떻게 따라옵니까? 다 넘어지지. 그러니까 사춘기가 되면 교회를 안 나오는 겁니다. 결국 누구 때문에 안 나오는 겁니까? 우리 때문에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래 놓고 분홍목사에게 답을 찾고, 분홍목사에게 솔루션을 내놓으라고 그러면 제가 무슨 수로 내놓습니까? 돌아봅시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왜 내 아이의 미래를 못 맡깁니까? 왜 우리 아이의 진로를 하나님께 못 맡깁니까? 여기서 우리의 믿음이 결정됩니다. 맡기세요. 우리가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 우리 아이의 통치자 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수많은 문제들은 여기에 다 걸립니다. 수많은 케이스가 있는 거 같지만 딱 하나에 걸립니다. 누가 왕인가? 하는 겁니다. 누가 왕인가? 하나님인가, 아닌가? 여기에 모든 문제가 다 걸려있습니다. 하나님이 왕이면 해결되는 문제들이 하나님의 왕이 아니니까 다 걸리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닌 것이 왕일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하나님 아닌 어떤 것이 왕이 됩니까? 당연히 물질, 그리고 나 자신입니다. 물질이라고 말할 때 그게 뭐냐면 이 땅에 썩어질 것을 즐기는 내 습성이 다 묻어나는 게 물질이거든요. 그게 집일 수도 있고, 땅일 수도 있고, 명품일 수도 있고. 이게 다 여기 묻어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은 누구입니까? 내 자녀 때문에 죽고 못 사는 나. 내 명예, 내 인기, 여기에 집착하는 내가 물질이고, 나 자신이고, 결국은 이게 두 개가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집착을 위해 살 때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됩니까? 끊임없이 비교하고, 끊임없이 남과 재고, 그러다가 절망하고 좌절하고 패배하고 마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닌 것이 왕이 될 때 우리 인생의 결론은 패배입니다. 그것도 완전한 패배입니다. 예수 믿고 패배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이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왕이 되시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내가 가진 그 어떤 가치보다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떤 서운함보다 하나님이 더욱 크신 분임을 알고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며 살아가는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내가 가진 그 어떤 가치보다,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떤 서운함보다 훨씬 더 크신 분입니다. 이걸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걸 못 믿으니까 내가 가진 게 커 보이고, 내가 못 가진 게 서운하고 그게 아쉽습니다. “아! 그때 교회를 안 보냈으면 우리 애가 공부를 더 했을까?” 그랬을 리는 없습니다. “그때 그 수련회 안 보냈으면! 그때 그 성경학교 안 보냈으면! 우리 애 등급이 높아졌을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얻은 그 어떤 것보다 우리가 놓친 그 어떤 것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온전히 찬양하며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참된 승리가 찾아오는 겁니다. 승리는 돈 버는 게 아니고, 승리는 1점 더 받는 게 아니고, 승리는 한 번 더 칭찬받는 게 아닙니다. 승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저희 교회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자부심이 있습니다. 적어도 성민교회 아이들은 행복 지수가 전교 1등입니다. 성적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는 합니다. 그런데 행복 지수는 전교 1등입니다. 저는 식사하면서 저희 교회 부교역자 사모님께 그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저희 남편은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스트레스 없는 목사! 저는 그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왜 사역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돼요. 하나님이 왕 되시면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보다, 놓친 것보다 훨씬 더 큰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그분만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왕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선택과 집중으로 우리의 사춘기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하고 그들이 우리의 믿음을 대이어 위대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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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 [다음세대칼럼] 작은 기적의 무대, 둥지극단
    이제 제법 배우 느낌이 나는 둥지아이들. 각자 자신의 대사를 읊조리며 곧 있을 둥지극단 정기공연 “엄마의 바다” 공연을 위해 열심히 연습 중이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디아코노스 김태연 단장님이 아이들과 7년째 호흡을 맞추어 왔다. 이 공연이 있기까지의 첫 시작은 김태연 단장님이었다. 아이들과 연습한 지 딱 두 번 만에 단장님이 따따이에게 놀라운 제안을 했다. “따따이. 우리 둥지아이들로 연극공연 합시다!” 확실한 의지를 보이는 단장님에게 따따이는 공연이 어려운 몇 가지 이유를 댔다. “우선 아이들이 대사를 외울 수가 없어요. 간단한 것도 암기하지 못하는데 연극대사를 외울 수는 있겠습니까?” “외울 수 있습니다. 그냥 외우는 것과 대사암기는 좀 다릅니다” “그리고 배역을 정해 놓으면 뭐합니까? 언제 이탈할지도 모르는데...” “오히려 연극공연이라는 목표가 생기면 이탈 안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어서 정식 공연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압니다. 제가 둥지 아이들과 연습을 해보니깐 이 아이들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끼가 있어요. 다른 고등학교 연극부나 모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게 있다니깐요. 한 번 해 봅시다” 결국 단장님의 설득에 따따이가 이겨낼 수가 없어 연극공연을 하기로 하고 본격적인 연습 중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마음을 여는 시간으로 연극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출발이었다. 그동안 소외된 채 자기 표현을 서툴러하고 눈치를 보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무대에서 숨겨진 재능과 끼를 표현하기만 해도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응을 하고 연기감각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특히 연극의 스토리가 비행과 범죄로 재판까지 받았던 자신들의 살아온 삶의 상황과 비슷한 내용(가족과 갈등, 가출, 연예인 지망 등)을 담고 있어서 더욱 와닿았다. 제목을 ‘엄마의 바다’라고 정하고 동일한 경험과 기억을 가진 가족과 친구, 지인들을 초대하여 회복의 무대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소박하게 하려던 공연이 아이들의 열심에 감동을 받아 더 제대로 된 무대를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에 ‘둥지극단’이라 이름을 정하고 정식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은 따따이의 마음이었다. 연극공연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 비해 아이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함께 생활하는 분위기도 좋아지고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나 작은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의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이탈하거나 무단가출하는 일이 하나도 없이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직까지 많이 부족한 모습이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인생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아이들이기에 가끔은 대견스럽기도 하다. 따따이는 지인들에게 연극공연에 초대하는 문자를 보내면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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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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