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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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호주선교부의 미우라 고아원 출신 김순복 여사2
    호주 장로교의 커를 의사를 따라 진주로 이주하게 된 박순복은 남편 박성애 조사와 함께 커를 의사가 준비한 진주면 성내4동 정경철 씨 소유의 초가에서 거주하게 된다. 이곳이 호주선교부의 첫 거점이 되었고, 바로 이곳에서 교회와 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처음에는 거주지에 주택 한 켠에 서적고를 설치하고 성경 보급을 시작했는데 이것이 시작이 되어 1905년 10월 22일 진주교회가 탄생했다. 이 교회가 진주지방 첫 교회이자 서부경남지방 첫 교회가 된다. 1906년에는 대안면 2동에 8칸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이동하였고, 1916년에는 도동면 옥봉리 비봉산 아래에 예배당을 신축하고 이전했는데, 이때부터 옥봉리교회라고 불리게 된다. 이곳에서 커를 의사를 도와 진주지방 첫 근대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개교식은 1906년 4월 15일 거행되었고, 첫 입학생은 21명이었다. 학교 이름은 안동남학교였다. 설립자 겸 교장은 커를 선교사, 교감은 김경숙, 학감은 박성애, 교사는 안헌이었다. 안헌(安憲, 1886-1946)은 후에 안확(安廓)으로 개명하는데, 후일 그는 마산 창신학교 교사가 된다. 일본에서 유학 한 이후 독립운동에 관여하고, 문명개화론을 주창했던 인물이었다. 또 그는 국문학자이자 역사가로 명성을 얻었다. 이 학교의 교과는 성경, 국어, 산수, 역사, 지리, 한문, 습자, 체조, 창가, 그리고 영어였다. 남학교가 설립된 지 4개월 후인 그해 8월, 커를 선교사 부인 에셀 커를의 주도로 사립 정숙학교라는 이름의 여자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때 김순복은 교사기 되었다. 정식 개교식은 9월 3일 거행되었는데 교과목은 성경과 국어, 산수, 역사, 지리, 한문, 습자, 침공(바느질) 등이었다. 학비가 면제되었기 때문에 진주지역 뿐 만 아니라 인근 고성, 산청, 하동 지역에서 오는 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설립된 안동남학교와 정숙학교는 1909년 2월 통합되어 사립광림학교가 된다. 각종학교로 인가를 받기 위한 조치였다. 비록 학교는 통합하였으나 남자부와 여자부로 나누어 수업했는데, 학급은 심상과(尋常科) 4년, 고등과(高等科) 2년으로 편성하였다. ‘심상 尋常’이라는 말은 평범한 것, 보통의 것이라는 의미인데 일본의 교육제도의 소학교, 곧 초등학교 과정을 의미했다. 1910년 당시 이 광림학교의 교직원은 6명이었고, 학생 정원은 40명이었으나 실제로는 80명 이상 재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자부 사립 광림학교는 재정 문제로 1929년 폐교되고, 여자부는 1921년 시원여학교로 개칭되는데 이 학교는 신사참배 문제로 1939년 7월 31일자로 폐교되고 만다. 진주에서 첫 근대의료 기관인 배도병원이 설립된다. 호주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는 1906년 6월 병원 설립 기금으로 825 파운드를 진주로 보냈고, 커를 의사는 1907년 12월 병원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렇게 되어 현재의 진주교회 뒤편 삼전아파트 자리에 임시 진료소를 설치하였는데, 이것이 진주지방에서의 병원 설립의 시작이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커를의 조사였던 박성애와 부인 김순복 여사가 동역하였다. 1910년 10월에는 병원 건축을 시작하였고, 1913년 11월에는 50개 병상을 갖춘 병원을 설립하게 된다. 이런 학교와 병원 설립의 뒷바라지를 한 이가 김순복 여사였다. 남편 박성애 조사는 1911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15년에는 진주교회 장로가 된다. 1917년에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1월 목사 안수를 받고 진주교회 첫 담임목사가 된다. 따라서 김순복은 남편을 도와 목회자의 아내로 살게 된다. 그런데 광림학교 교사로 일하던 김순복은 평양을 다녀온 남편 박성애 목사의 주선으로 김 마리아 등이 조직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와 ‘대한적십자회’에 가입하여 진주지부 초대 지부장으로 추대되었다. 김순복은 진주지방의 여성동지를 규합하고,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자금 모금과 항일광복운동과 항일사상을 고취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1919년 11월 28일 서울에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이 발각되어 전국 조직 지도자들이 모두 체포, 수감되었는데 진주의 김순복도 박보렴, 박덕실(朴德實)꽈 함께 체포되어 대구 지방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이 때의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에 대해서는 「매일신보」 1919년 12월 19일자 등에 보도된 바 있다. 박순복 여사는 목사의 아내로서 민족과 애국, 독립운동에도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편 박성애 목사가 1920년 창원교회로 이동하게 되자 박손복 또한 창원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창원여자야학교’를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이바지하였다. 이때의 헌신이 널리 알려져 1922년 8월 8일자 「동아일보」는 ‘박순복 여사의 열정’이라는 기사를 게재하여 그의 봉사를 기념하였다. 이상과 같이 독립운동과 애국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김순복 여사는 2021년 3월 1일에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이 처럼 고아 소녀로 성장했으나 호주선교부의 사랑으로 양육을 받았고, 부산과 진주에서 개척자의 길을 가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김순복 여사는 55세를 일기로 1942년 10월 6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 오피니언
    • 칼럼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12-20
  • CBMC부산총연 회장 박남을 장로 “각 지회마다 성장하도록 돌보는데 중점두겠다”
    Q. 신임 회장으로 선출되셨는데, 소감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하나님께서 저를 이끄시고 부르셨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배님들의 뜻을 잘 이어받아 열심히 해서 충실한 회장으로 섬기겠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복음 사역에 힘쓰겠습니다. 우리 비즈니스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Q. CBMC 활동하신지 얼마나 되셨고, 생각나는 분들이 있으신지요? A. 제가 CBMC에 10년 이상 몸을 담고 있으면서 그동안 저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친 분들이 생각납니다. 제일 먼저 정동만 회장님이 계시는데요, 제가 CBMC에 처음 발을 놓도록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박정식 회장님은 제가 동부연합회장을 고사하고 안 한다고 할 때 “왜 축복의 길을 떠나려고 하느냐. 축복의 길에 있어라”는 말씀을 제게 해주셨습니다. 또 성호진 회장님도 생각이 납니다. 제게 해야 한다면서 잘할 거라는 말로 늘 용기를 주셨습니다. 직전 회장님이신 김현수 회장님도 함께 해보자며 붙잡아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제가 있습니다. 김상권 회장님께서 늘 “CBMC는 축복의 통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하나님의 복을 많이 누렸음을 체험하면서 그 뜻을 발견하고 이제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Q. 임기 중 중점을 두고 싶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A. 한 지회, 한 지회마다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보고 기르고 하는 것에 중점을 두겠습니다. Q. 내년엔 CBMC부산총연에서 어떤 사업들을 준비 중입니까? A. 우리가 늘 해오는 사업들인 골프대회, 비즈니스 세계 포럼 등등 이런 행사들이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1월 4일 부산지역CBMC 포럼인도자 세미나를 시작으로 1월 12일부터 13일까지 부산총연합회 및 지회 회장단 워크숍, 6월 3일 CBMC부산총연 VIP초청 골프대회, 11월 30일 기독실업인초청 CBMC-DAY 등을 계획 중입니다. Q. 내년 CBMC한국대회가 근처인 울산에서 개최된다고 들었습니다. A. 네. 2024년 8월 14일(수)부터 16일(금)까지 울산컨벤션센터에서 제50차 CBMC한국대회 및 제12차 CBMC 세계대회가 열립니다. 부산과 가까운 울산에서 한국대회를 하기 때문에 저희 부산총연합에서도 같이 협력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Q. 끝으로 성도님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이 어려운 시기에 경제적으로도 힘든 과정들을 겪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이 시기를 잘 겪을 수 있도록 CBMC부산총연합회가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는 부분들을 찾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뉴스
    • 뉴스종합
    2023-12-19
  • [성탄특별대담] 김태영 목사, "국내외 재난지역에 달려가서 봉사할 것"
    성역 47년 동안 섬기시고, 이번에 은퇴를 하십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 저는 유림의 가문인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집안 최초로 교회를 다니며 많은 핍박을 받는 것을 보고 자랐어요. 모태 신앙인 저도 제사 지내지 않는다고 집안 어른들로부터 구박을 받았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모교회(안동도원교회) 목사님이 ‘태영이는 좋은 목사가 될거야’고 격려와 기도를 해 주셨지요.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가 서원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후에는 모교회 장로님들이 상가에 오셔서 ‘아버지(고 김회식 권찰)가 예배당 터를 기증하셔서 당회에서 어버지 묘를 교회 동산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하도록 결정했다’고 알려주셨어요. 아버지는 철도 공무원이셨고, 유교였지만 예수 믿기 전에 예배당 짓겠다고 하면서 땅을 기증하셨고, 나중에 제가 신학교에 간 후에는 스스로 교회에 나오셔서 세례를 받고 권찰 직분으로 천국 가셨지요. 이렇게 집안 신앙 배경이 없던 제가 목회자가 되어서 만 47년을 주님의 은혜로 목회를 할 수 있었고,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동안 여러 교회를 섬겨 오셨습니다. 교회마다 좋은 추억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 첫 목회는 신학교 2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안동신덕교회 전도사로 갔었어요. 전형적인 농촌교회로 어른 30-40명, 학생 30-40명 정도 모이는 곳이었어요. 한 달 사례비가 만원이었는데, 그 해 추수감사절 후에 연세 많은 여집사님 4 분이 안동시내에서 새 양복을 맞추어 주셨는데, 제가 사양해도 고집을 꺽을 수 없었지요. 그 당시 양복 1벌에 37,000원 이었으니 큰 돈이었어요. 너무 감격스러워서 그때만 해도 양복 안 주머니에 이름을 새겼는데, 4명 집사님 이름을 적어서 양복에 새겨 달라고 했더니 양복점 사장님이 ‘양복 장사 30년 했는데, 4명 이름 새기는 것은 처음이다’고 하셨어요. 그 양복을 입을 때마다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고 했었지요. 신학교 3-4학년 때는 안동동부교회 교육전도사로 섬겼는데, 매 주일 400여명 모이는 교회에서 설교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목요일마다 학교 도서관에서 살았고, 사실 설교라고 보다는 여러 권의 설교를 짜깁기, 혹은 베끼는 수준이었지만 그 덕에 많은 설교를 읽는 기회가 되었지요. 25살 늦은 나이에 입영통지서 나와서 군 입대해서 39사단(창원)에서 군종병으로, 충성교회 전도사로 근무했는데, 병장 때 군복을 입고 휴가를 얻어서 목사고시에 응하여 합격을 하고, 전역 후에는 곧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결혼을 위해 기도했는데, 전역 2개월 앞두고 영남신학교 선배이신 신마산교회 백종완 목사님이 군인 교회에 설교하러 오셨다가 군목님으로부터 목사고시에 합격한 군종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교회장로님이시고, 창신고등학교 교감으로 계셨던 분의 따님을 소개해 주셔서 제대 후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주노좌교회에서 신혼생활과 담임전도사로 교회 건축과 봉헌식, 그리고 딸(백합)을 낳고, 목사안수(1983,3,9)도 받고, 모교인 경안고등학교 성경교사로 학교 강의도 하면서 즐거운 목회를 했습니다. 그 무렵 안동교회(당회장 김기수 목사) 김 목사님이 제 은사이신데, 저를 불러서 ‘부목사로 오라’고 하셨는데, 기도 중에 고향을 떠나서 목회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풍기’라는 경북 제일 북쪽에서 ‘경남 사천 다평’이라는 경남 제일 아랫쪽 바닷가로 시무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동기인 김태곤 목사님이 이웃인 서포면 소재지 서포교회 시무 중이었는데, 저를 소개해 주셔서 서포면 다평리 다평교회에 부임했지요. 다평리는 농사를 지었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서 바다수입(바지락, 고기잡이 등)이 꽤 많은 곳이었어요. 장로님들이 우리 딸 아이를 번갈아 업어서 키워 주셨고, 매일같이 교인들이 사택에 식재료, 간식, 과일 등을 갖다 주셨어요. 많은 사랑을 받은 곳이었어요. 다평교회와 같은 노회안의 진주영락교회에서는 만 18년 2개월을 목회했는데, 제가 부임할 때는 노회회관에 전세 내어서 교인 50여명, 학생들 50여명 정도였지요. 내 인생의 황금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이때, 주님께서는 큰 부흥을 주셨고, 전도운동과 새신자 정착으로 예배당을 신축하고 교인 재적이 어린이부터 청장년까지 1,000여명 될 정도로 진주노회에서 가장 크게 성장한 교회가 되었지요. 그런데 어느날 장로님 몇 분이 부산에서 오셔서 저를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백양로교회 청빙을 타진하러 오신 것이었어요.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지요. 이후 진주노회장 임기를 잘 마치고, 노회와 교회를 위해 더 헌신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다시 백양로교회 장로님들이 이번에는 청빙서를 갖고 찾아 오셨어요. 인사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금식으로 1주일간 기도했고, ‘작은 성공에 취하지 말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나이 50에 다시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으로 2005년 5월에 익숙지 않은 송별예배를 드리고 살붙이 같은 진주의 형제 자매들을 떠나 큰도시 부산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백양로교회, 회고해 보면 하나님의 큰 선물이요 축복이었습니다. 열정을 쏟아서 목회했고,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이 기쁨으로 동역하고 협력해 주셔서 행복한 목회를 했어요. 참 좋은 교회입니다. 예장통합 104회 총회장, 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을 역임하셨고, 한국교회봉사단 대표단장을 맡고 계십니다. 임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들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 부산은 소정교회 김두봉 목사님이 총회장을 하신 이후 40년 동안 총회장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역 교계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당회에서는 백양로교회가 총회장을 배출하자며, 당회원 스스로 사비를 내어 부총회장 등록비 5천 만원을 준비해서 만장일치로 출마를 결의해 주셨습니다. 2019년 9월 23일 포항 기쁨의 교회에서 제104회 총회장으로 취임하였는데, 다음해 1월에 코로나19가 발생하여 소위 ‘코로나 시국’으로 모임과 예배 자체가 어려운 지경이 되었고, 해외를 한 번도 못간 ‘코로나 총회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교회발 코로나 뉴스’ 때문에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이고, 불교와 천주교 등은 선제 대응을 한다면서 문을 닫고 미사도 중단할 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철저한 소독과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가 최고의 백신이다’ 외치면서 예배를 드리자니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거의 매주 문체부 장관, 복지부 장관 면담, 월 1회 총리공관에서 이낙연 총리, 정세균 총리와 종교지도자의 간담회, 한교총 대표회장으로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기독교 지도자 간담회를 했었지요. 나는 그때 대통령께 ‘교회를 영업장 취급하지 말라’며 방역 인증제 도입과 무조건 20명으로 예배인원을 규정하지 말고, 예배당 면적 단위와 좌석수에 따른 예배인원 조정을 건의 하였습니다. 정부와 매우 긴장 관계였어요. 더구나 전광훈 목사가 광화문 집회를 연일 이어가면서 모든 언론과 방송이 기독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그 와중에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통과 하려는 다수당인 민주당 대표, 국가인권위원장 면담을 통해 절대 동성애 합법화는 불가함을 설명하였고, 반대 집회를 열기도 했지요. 그때 20만 명의 반대 성명을 받아 국회로 가서 당시 여당인 민주당 원내대표 이인영 대표와 면담하면서 그 서명지를 원내 대표실에 산 같이 쌓아 두고 왔었어요. 그 분은 ‘기독교계가 절대 반대 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해서 밀고 나갈 수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요’라고 나를 설득했었습니다. 부산교계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이 부분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실 것 같습니다. 이제 원로로서 부산교계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 지금 종교인들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고, 기독교 연합 기관이 하나되어 섬겨도 신뢰 받기 어려운 시기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선배들이 힘을 모으고, 마음을 다해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를 부산시와 중구청, 광복로 상가 번영회와 협력해서 성공적으로 개최해 왔는데, 작은 불신으로 서로를 증오하고 비방하면서 기독교계가 설 자리가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법 다툼과 과거 문제에 대해 종지부를 찍고, 기자회견을 통해 교계와 시민들께 사과하고, 화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주요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분들은 깨끗하게 교회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사임하고, 새얼굴의 새임원과 새 이사진으로 2024년을 새출발 했으면 합니다. 대구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대구로 간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 신학도 시절의 꿈과 추억이 있는 대구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도들도 부산에 있으라고 했지만, 총회장을 역임한 사람으로 교회와 조금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이 되었습니다. 은퇴 후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소개 해 주십시오. - 국내외 재난지역에 가서 봉사하는 한국교회봉사단 대표단장으로 더 열심을 내어 사역 할 생각입니다. 또 제가 대구로 가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모교인 영남신학대에서 명예석좌교수로 임명해 주셔서 지난 가을 학기부터 ‘목회 실제’를 강의하고 있어요.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서 지난 8월에 대통령 지명으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임기 3년)으로 공직을 받아서 매주 정부청사에 가서 공직자들의 청렴지향과 부패척결 그리고 국민들의 억울한 소리를 반영하기 위하여 힘쓰고 있습니다. 은퇴 후 이러한 활동을 더 열심히 해 나갈 생각이에요. 끝으로 한국교회 혹은 후배 목회자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 지금 시대와는 다를 수 있겠지만, 부족한 저는 단 한 번도 이력서를 내지 않았어요. 현재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하니,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 주셨어요. 하나님 만이 아시는 눈물과 충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는 생계를 위해 살지 말고, 사명 위에 살아야 합니다. 목사님들은 기도와 말씀(설교)에 온 힘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진 자리와 마른 자리로 교회와 사회를 품고, 글이 아니라 길인 주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깊은 샘에서 우물을 길러서 마시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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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담/대담
    2023-12-18
  • [성탄특별대담] 안민 장로, "기독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할 것"
    조기은퇴를 하시고 원로장로로 추대 되시는데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 네, 사직동교회의 내규를 따라 65세에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사직동교회는 꽤 오래전부터 담임목사는 70세, 장로는 65세에 은퇴하도록 교회 내규로 정하여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기은퇴는 아니지요. 1986년 1월 1일부터 사직동교회의 가족이 되었고 30세에 안수집사, 34세가 된 1992년 장로로 장립하여 32년간 사직동교회 장로로 시무하였습니다. 부족함이 많았지만 아름다운 사직동교회가 만장일치로 원로장로로 추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의 넘치는 사랑이지요. 사직동교회에서 성도로, 장로로 지나온 37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1986년 지휘자로 초빙되어 20여년 찬양대와 함께 예배와 찬양의 감격을 누리고 부흥의 중심에서 젊음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음악사역자로, 찬양사역자로 지금까지 달려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직동교회의 장로로 긴 세월 섬겨온 것이 결과적으로 교단의 신뢰를 받고 고신대학교의 총장으로도 섬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입니다. 사직동교회에서 오랫동안 시무하시면서 정판술, 김철봉, 복기훈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이분들과 특별한 좋은 추억들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각각 소개 부탁드립니다. - 세분 목사님은 제 모교회의 조긍천 목사님, 대학시절을 비롯한 서울에서의 석원태 목사님과 함께 잊을 수 없는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입니다. 정판술 목사님은 저를 사직동교회로 불러 주시고 집사로 장로로 세워주신 분입니다. 투박하고 경험없는 저를 따뜻하게 훈련시켜 주셨고 무엇보다 깊은 신뢰를 주셨습니다. 멋진 신사셨던 정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장로로서 섬길 수 있던 시절은 신앙 뿐 아니라 촌놈인 저의 품격까지 한 단계 높여 주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정 목사님의 명을 받아 막내장로로 선임장로님을 모시고 김철봉 목사님을 청빙하러 갔었습니다. 그렇게 김 목사님과 만나 23년을 모셨습니다. 부임하실 때 김 목사님보다 젊은 장로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김철봉 목사님께 가장 감사한 한 가지를 든다면 저와 장로님들을 동역자로 생각하시고 존중해 주신 것입니다. 저의 교회 사역뿐 아니라 학교를 비롯한 여러가지 사역에도 깊은 기도와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고신대학교의 부총장과, 총장으로 마음껏 섬길 수 있었던 것도 사직동교회와 함께 힘을 다해 도와주시고 성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교회와 성도들을 너무도 사랑하셨고 설교와 깊은 기도를 통해 저희들을 감화 시키셨습니다. 한때 건강이 많이 좋지 않으실 때도 자신보다 교회와 성도들을 먼저 생각하시고 자신을 던지시는 모습에서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하는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은퇴와 원로목사 추대를 위원장으로 섬기면서 목회자로서 너무도 아름다운 모범을 보여 주셔서 저뿐 아니라 온 교우의 깊은 존경가운데 은퇴하셨고 퇴임후에는 북한 사역과 함께 전국교회의 초청을 받으시며 시무하실 때 못지않은 왕성한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김 목사님의 은퇴를 1년 앞두고 청빙위원회가 구성되고 청빙위원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복기훈 목사님은 청빙위원회가 만장일치로 그리고 원로목사님과 모든 당회원들이 만장일치로, 공동의회는 99%에 가까운 지지로 기쁨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복 목사님께서 부임하실때 시무장로님들이 서른 두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장로님들의 말씀을 참 편안하게 경청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잘 준비되셔서 온 교인들이 은혜를 누리고 안정적으로 빠르게 적응하셨습니다. 지난 3년여 복 목사님과 함께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성도들과, 특히 젊은 청년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시고 장로님들과도 진솔하게 대화하시는 소탈한 모습은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전통을 계승하시면서도 역동적이고 젊은 리더십으로 교회에 영적활력을 일으키시는 균형도 보여 주십니다. 이제 복 목사님과 후배 시무장로님들이 하나되어 새로운 부흥을 향해 나아갈 것을 기대합니다. 사직동교회에서 귀하신 세분의 목사님과 함께 한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고신대에서 4년 동안 총장으로, 40년 동안 교수로서 헌신해 오셨습니다. 그만큼 애정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학교에 계시면서 좋았던 점과 안타까웠던 점들을 소개해 주십시요. - 1982년 25세 고신대학교 음악과의 전임대우로 초빙되어 40년을 섬겼습니다. 34세에 학생처장으로 ,이후에는 학부장, 교무처장, 부총장, 마지막 4년은 총장으로 학교를 섬겼습니다. 고신대학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원색적인 기독교대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40년의 섬김은 제게 주어진 놀라운 은혜요 특권이었습니다. 기독교세계관에 기초하여 마음껏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1992년 학생운동이 격화된 가운데 34세의 나이에 학생처장으로 학교경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동역자들과 함께 대학의 체계들을 잡아가고 더 깊이 학교를 파악하고 신학대학체계를 기독교종합대학의 체계로 세워가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2005년 부총장으로 보임되면서 4년 동안 학교의 놀라운 변화를 최전선에서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와 제3세계유학생을 섬기는 일을 통해 복음의 빚을 갚는 선교중심대학의 비전을 향한 헌신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당시 이 비전으로 처음 뵈었던 김선조 장로님을 통해 월드미션센터 빌딩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나라로부터 선교유학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학교를 섬기며 잊을 수 없는 것은 재정적으로나 여러 상황은 만만치 않았지만 고신대학교가 단순한 직장을 넘어 소명의 현장임을 인지하고 온 삶으로 헌신하는 귀하신 교수님들과 신실한 직원들입니다. 그들의 특공대 같은 헌신이 언제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취업과 입시와 평가 등에서 놀라운 실적들을 창출하였습니다. 그분들의 눈물겨운 헌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총장으로 재임할 동안 대학의 존폐가 걸린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를 두 번 받았습니다. 너무도 감사하게도 두 번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고, 국비지원을 통해 획기적인 교육환경개선을 이룰 수 있었고,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기독교대학 고신대학교에서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했던 40년은 가슴벅찬 감사로 가득합니다. 아쉬운 것은 대학위기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통합적 경영이 필요하고 이를 치열하게 준비해 왔는데 최종적으로 이루지 못하고 임기를 마친 것 입니다. 그리고 학령인구의 급감 등 너무도 어려워진 지방대학, 특히 기독교대학의 상황들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큰 상을 받으셨습니다. - 네, (재)21세기포럼 문화재단으로부터 기독문화대상(교육)을 수상하였습니다. 저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데 재단으로부터 결정을 통보받고 지난 12월7일 시상식을 가졌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재단과 심사하신 분들께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시상식 날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저는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 과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을 받으며 그 의미를 생각하고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이 상은 제 공로가 아니라 사직동교회와 고신대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분들의 사랑과 배려와 헌신이 어우러져 만든 작품이라 고백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 마음으로 상금으로 주신 일천만원은 고신대학교에 기부하기로 하였습니다. 은퇴 후 활동이 궁금합니다. - 퇴임 후 여러 곳에서의 부르심이 있었지만 인도하심을 따라 ‘느헤미야미니스트리’의 대표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느헤미야미니스트리는 찬양과 말씀으로 교회의 부흥과 회복을 섬기는 사역입니다. 이 사역을 위해 제 퇴직금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고 귀한 분들과 함께 펀드를 만들어 작은 교회나 개척교회목회자, 선교사님들을 위한 사역은 펀드를 통해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클래식부터 힙합까지의 탑 아티스트들의 모임인 ‘프레이즈게더링’의 대표로, 클래식과 찬양사역자, 뮤지컬배우 등이 함께한 한국기독음악협회에는 송정미사모님과 공동회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성세대와 다음세대의 핵심적 차이는 문화에 있다고 믿습니다. 기독문화의 시대적 사명이 너무도 막중한데 문화 사역자들을 복음위에 세우고 지원하며 기독문화 확산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후반기의 부르심으로 느끼며 설렘과 감격으로 나아갑니다. 이 시점에 생각나는 고마운 분들은 어떤분이 계실까요? - 올해로 결혼41주년을 맞습니다. 제 아내 정진희 권사에게 마음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92세의 제 아머니를 모시면서 91세 되신 장모님도 돌봐드리고 자녀들을 키워내고 교회의 모든 사역과 함께 저와 느헤미야미니스트리 사역으로 전국을 다니며 찬양하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 주고 있습니다. 정권사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해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싱가폴에서 미국에서 교회와 함께 신실한 믿음을 계승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살아가는 두 아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두 손주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낍니다. 37년간 함께하는 너무도 아름다운 사직동교회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끝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 지난날을 돌아보니 일일이 존함을 거명하기 어려운 너무도 감사한 분들이 참으로 많으십니다. 왜 저를 사랑해 주시고 성원해 주시는지 이유가 없는 과분한 사랑을 주신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 중에 꽤 여러분들이 한국기독신문을 보고 계실 것 입니다. 어쩌면 안민 장로가 나를 생각하는구나 느끼시는 분들도 계실 것 입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평생 감사의 마음을 안고 보은의 삶을 살겠습니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큰 은혜와 복으로 갚아 주시길 기도합니다. 복된 성탄과 은혜로 가득한 새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인물
    • 좌담/대담
    2023-12-18
  • 고신대를 위한 총회특별기도회
    기도의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 고신교단과 고신대학교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자 고신총회(총회장 김홍석 목사) 산하 노회원과 교회의 성도들, 그리고 고신대학교의 교직원이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특히 전국장로회연합회는 오전 11시부터 실행위원회를 개최한 후 2시부터 시작된 기도회에 함께 동참했다. 지난 12월 14일(목) 고신대학교 한상동홀에는 700석에 가까운 좌석이 거의 찰 정도로 많은 인원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간구했다. 사랑이꽃피는교회(담임목사 구빈건) 찬양팀의 찬양으로 시작해 신진수 목사(총회 서기)의 사회로 기도회가 진행됐다. 박영호 장로(장로부총회장)가 기도, 유연수 목사(학교법인고려학원 이사장)가 ‘느헤미야의 길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유연수 학교법인고려학원 이사장은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52일만에 재건했듯, 학교를 회복하고 일으켜 한국의 복음화에 앞장 선 기독교 대학으로 만들자”며 “캠퍼스에 끊이지 않는 기도와 함께, 우리들의 참된 눈물의 기도가 나올 때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선한 손이 고신대학교를 위해 일하실 줄 믿는다”라고 전했다. 이어 김홍석 목사(총회장)의 인도로 기도회를 가졌다. 모두 5가지의 기도제목으로 합심하여 기도했다. 첫째, 고신대학교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이어가도록, 둘째, 고신대학교의 미래를 이끌어 갈 리더십을 위해, 셋째, 고신대학교의 혁신적 변화를 위해, 넷째, 고신대학교 신입생 모집을 위해, 다섯 째, 고신대학교를 위한 모금 운동을 위해 합심하여 온 맘을 쏟아 기도했다. 위의 기도제목을 위해 합심기도 한 후에는 각각의 기도제목을 놓고 박성배 목사(총회 부서기), 김종민 목사(총회 회록서기), 구빈건 목사(총회 부회록서기), 진종신 장로(총회 회계), 김수중 장로(총회 부회계)가 마무리 기도로 섬겼다. 이후 신진수 목사(총회 서기)의 광고와 정태진 목사(목사 부총회장)의 축도로 기도회는 마무리 되었다. 또 고신대학교를 격려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고신대학교의 혁신과 변화를 기대하며 마산동광교회 진종신 장로(총회 회계)가 1억원, 제5영도교회 서일권 장로가 1억5천만원을 학교를 위한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마지막으로 고신대학교 이정기 총장은 ‘담대한 혁신’과 ‘새로운 도전’의 비전 3R을 공유하며, 고신대학교의 자구노력이 자발적이고 힘있게 진행되고 있음을 교단 앞에 설명하며 “고신대학교가 교단과 한국교회의 다음세대 기독인재양성을 위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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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5
  • 교회 출석자 3명 중 1명 이상, ‘나는 교회에서 외롭다!’
    목회데이터연구소는 <넘버즈 219>호를 통해 ‘한국 개신교인의 외로움’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 국민 절반 이상, 외로움 느끼고 있어! 영국은 2018년 ‘외로움’을 ‘사회적 감염병’으로 정의하고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신설했는데, 세계보건기구(WHO)도 최근 ‘외로움’을 긴급한 세계 보건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연결 위원회’를 발족했다. 이처럼 외로움은 전 세계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갤럽 인터내셔널과 메타의 ‘글로벌 사회적 연결 현황’ 보고서에서는 세계인의 절반(51%)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보고서 참조),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2023 외로움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 이상(54%)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교회 출석자 3명 중 1명 이상, ‘나는 교회에서 외롭다’! 이번에 목회데이터연구소가 발간한 ‘한국교회 트렌드 2024’에서는 ‘외로운 크리스천’이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의 심각한 외로움 현상이 교회 안까지 들어와 있음을 주목했다. 출석 교인을 대상으로 교회 내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를 살펴본 결과, ‘교회 안에서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자주+가끔 있다)’고 응답한 성도는 36%로 3명 중 1명 이상이 교회에서도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교회 내 외로움 느끼는 이유,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 없다’! 교회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성도들에게 어떤 상황에서 외로움을 느끼는지 물은 결과, 절반 가까이인 46%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때’를 가장 높게 꼽았고, 이어 ‘교회 활동에 참여하지 못할 때’ 21%, ‘교회에서 같이 식사하거나 차를 마실 사람이 없을 때’ 17% 등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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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5
  • 부산노회장로원로회 32회 정총
    통합 부산노회장로원로회 제32회 정기총회가 지난 12윌 5일(화) 오전 10시 30분 문현중앙교회당에서 58명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새 회장에 양한석 장로(문현중앙교회), 수석부회장에 진장명 장로(항서교회)를 선출했다. 1부 개회예배는 양한석 장로의 사회로 진행돼 기도는 김정기 부회장, 말씀은 정익주 목사(문현중앙교회)가 ‘적절하게 교훈하는 어른’이란 제하의 설교를 통해 “이 시대에 어른이 없다. 있어도 대접하거나 예후하는 교회도 사라져 가고 있다. 어른은 세월의 지혜를 회복하고 갈등과 분쟁을 조정 화합하는 역할을 하는데도 이를 수용하거나 어른으로서 대접하는데 인색하다”고 말했다. 제2부 회무는 회장 우정학 장로의 사회로 진행돼 기도는 이종흔 장로, 신입회원으로는 김원일, 김병구, 김홍석 장로를 소개했다. 그리고 사업보고와 회계보고, 감사보고 후 임원선출을 했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 양한석 장로(문현중앙교회) 직전회장: 우정학 장로(광복교회) 수석부회장: 진장명 장로(항서교회) 부회장: 김달현 장로(산성교회), 진학용 장로(감천교회), 김정기 장로(영도교회), 서영태 장로(김해감천교회) 총무: 박봉석 장로(신광교회) 부총무: 고인광 장로(감천교회) 서기: 김홍석 장로(산성교회) 부서기: 문종만 장로(장유대성교회) 회록서기: 조진구 장로(항서교회)부회록서기: 서심미 장로(항서교회) 회계: 유인상 장로(문현중앙교회) 부회계: 이영섭 장로(산성교회) 감사: 윤태균 장로(송도영광교회), 우준우 장로(장유대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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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5
  • 안민 장로, 원로장로 추대 예배 가져
    고신대 전 총장 안민 장로가 지난 12월 10일(주일) 원로장로로 추대됐다. 사직동교회(복기훈 목사)는 10일 오후 ‘원로 장로 추대 및 직분자 은퇴예배’를 가졌다. 이날 예배는 김철봉 원로목사가 ‘내게 주신 모든 은혜’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김철봉 목사는 설교에서 “찬양의 가사처럼 우리가 살아 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지난 날도 열심히 했지만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힘써 갚는 인생관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성도들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은퇴자는 다음과 같다. •원로장로 : 안 민 •장로은퇴 : 이수호 박창호 우현기 •집사은퇴 : 이영평 박희재 김재우 서성민 박창수A 김봉관B 진영섭 송상현 허영준 장기일 강구일 박건호 •권사은퇴 : 신종열 유청숙 안연옥 최정진 김주희A 이말선 박경희 강동선 조광순 이춘선 최진희B 최수경 송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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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5
  • 부산국제선교회, 41회 국제선교회의 밤
    (사)부산국제선교회(회장 정명식 목사)는 지난 12월 7일(목) 오후 7시 땅끝교회 홀리조이센터에서 제41회 국제선교회의 밤 제1차 선교사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예배는 회장 정명식 목사의 인도로 이사장 정봉익 장로가 기도, 김운성 목사(영락교회)가 ‘선교는 승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이사 한영수 목사가 축도, 부산노회장 조현성 목사와 부산동노회장 최송규 목사가 축사를 전했다. 2부 부산국제선교회 선교보고는 부회장 김종찬 목사의 사회로 파송 및 협력 선교사들의 선교보고에 이어 선교회와 선교지, 선교사를 위해 참석자들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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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5
  • 부산노회장로원로회 32회 정총
    통합 부산노회장로원로회 제32회 정기총회가 지난 12윌 5일(화) 오전 10시 30분 문현중앙교회당에서 58명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새 회장에 양한석 장로(문현중앙교회), 수석부회장에 진장명 장로(항서교회)를 선출했다. 1부 개회예배는 양한석 장로의 사회로 진행돼 기도는 김정기 부회장, 말씀은 정익주 목사(문현중앙교회)가 ‘적절하게 교훈하는 어른’이란 제하의 설교를 통해 “이 시대에 어른이 없다. 있어도 대접하거나 예후하는 교회도 사라져 가고 있다. 어른은 세월의 지혜를 회복하고 갈등과 분쟁을 조정 화합하는 역할을 하는데도 이를 수용하거나 어른으로서 대접하는데 인색하다”고 말했다. 제2부 회무는 회장 우정학 장로의 사회로 진행돼 기도는 이종흔 장로, 신입회원으로는 김원일, 김병구, 김홍석 장로를 소개했다. 그리고 사업보고와 회계보고, 감사보고 후 임원선출을 했다. 이날 선출된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 양한석 장로(문현중앙교회) 직전회장: 우정학 장로(광복교회) 수석부회장: 진장명 장로(항서교회) 부회장: 김달현 장로(산성교회) 진학용 장로(감천교회) 김정기 장로(영도교회) 서영태 장로(김해감천교회) 총무: 박봉석 장로(신광교회) 부총무: 고인광 장로(감천교회) 서기: 김홍석 장로(산성교회) 부서기: 문종만 장로(장유대성교회) 회록서기: 조진구 장로(항서교회) 부회록서기: 서심미 장로(항서교회) 회계: 유인상 장로(문현중앙교회) 부회계: 이영섭 장로(산성교회) 감사: 윤태균 장로(송도영광교회) 우준우 장로(장유대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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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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