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3-05-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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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0대 인생 후반전에 성악가로 도전한 목사와 장로 이야기
    올해 나이 일흔(70세). 성결교단 목회자로 시작하여 목회 45년, 이미 2년 전에 조기은퇴하여 인생 후반전을 살고 있는 목사가 있다. 평소 취미로 불렀던 노래였지만 이제 성악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고신대 음악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늦깎이 학생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름하여 최훈조 목사, 그를 칭하여 6개 국어로 의사소통하는 만불 인사, 시인, 부흥사, 성악가, 교도소 선교, 세진회 부산지회장 등의 네임이 뒤따르고 있는 만능 목회자이다. 아직도 음대 학생들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몸은 70대이지만 음성은 아직 20대라고 한다. 그의 생애는 파란만장한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충남 부여가 출생지이지만 일찍이 어머니를 여위고 새 엄마에게 쫓겨난 그는 고아가 되다싶이 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먹고 살 수가 있었다. 고학으로 백제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 고입,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성결교단 신학교 서울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수학, 한남대학교에 47세 되던 해에 다시 정규 1학년으로 입학했다. 영문학과, 일문학 전공 졸업하여 한남대학원에서 다시 영시 전공 시인으로 등단하여 창조문예, 시집 3권 출간 등 이미 학교에서 졸업할시 대통령상 수상과 한남대학교 가요제 최우수상 수상, 개인 콘서트 2회, 목련가요제 인기상 등을 수상했다. 45년간 부산 재송동에서 목회를 마치고 교도소 선교로 매달 구치소 방문, 소년원, 노인대학, 요양병원, 노숙자 선교 센터 방문 등 10여 차례 문화 예술 공연 봉사를 한 만능 박사로 헌신함으로서 교파를 초월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 2021년 고신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에 1학년 장학생으로 합격하여 현재 3학년 하이 c 테너로 재학하고 있다. 이태리 유학을 준비 중에 있는 최훈조 목사는 요즘 순풍적으로 불타오르는 트로트 가수로도 한번 도전하고 싶어했다. 성악가이자 트로트 가수인 김호중 가수를 닮아가고 싶어 한다. 무엇보다 최목사는 6개 국어(영어, 중국어, 독일어, 이태리어, 라틴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만능 재능꾼 목사다. 주일이 되면 수영로교회 영어 설교로 예배드리고 매일 체력 단련으로 훈련하는 젊은 노인 성악가이다. 아마도 한국교회 내에 이런 만능 재능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목사가 있을까? 일찍이 한남대 입학시절 등록비가 없어 필자에게 찾아왔길래 한번 은성교회 이성만 장로에게 찾아가 보아라고 하여 이 장로로부터 학비 전액을 도움 받은 적이 있다. 언젠가 최 목사는 한국기독신문에 꼭 이사장이 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목사이다. 요즘 매우 젊어지려고 입고 다니는 옷, 신발, 모자까지 컬러풀한 패션으로 젊어 지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누가 그를 70대 노인이라고 말하겠는가. 음성은 20대이고 모양은 40대이고 생김은 젊은 갓 50대로 보여진다. 손에 마이크만 쥐면 아나운서, 앵커 못지않을 정도로 달변가이다. 진작 목회 길을 잘못 온 것 아닐까 싶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기 위해 성악을 전공했다”며 변치않는 믿음을 고백했다. 또 한분은 60대 후반 넘은 성악가이자 작곡, 오페라 작사로 늦게 데뷔한 시무장로이다. 부산노회 서부시찰 안에 광성교회에서 시무하는 김영근 장로. 그는 이미 2022년 12월에 제5회 바리톤 김영근 독창회를 갖는 등 커리어가 충만한 성악가이자 작사가이다. 직접 시도 쓰고 곡을 만들고 마인강 3대의 노래 중 두 번째 ‘별 내리는 마인강’을 직접 작사하여 부르기도 했다. 또 오페라 ‘룻’의 대본을 만들기도 했다. 교회 신앙인답게 믿음으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게 되니 순수 교회 음악 세계를 넘나 들고 싶은 것이 그의 비전이자 꿈이었다. 왜 음악 전공도 안하고 늘그막이 성악을 시작하게 되었는가?라고 질문하자 “나 역시 잘 모르지만 어느 날 성악의 나래에서 한번 도약하고 싶어졌다”며 “음악은 찬양에서 나와 가사로 엮어 노래로 부르는 장르로서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으로 교회 음악에서 출발 되어졌다”고 출발 동기는 단순했다. 평소 조그만한 옷 디자인 작은 가내 기업을 하면서 성악에 취미를 붙이고 여러 성악가들의 틈에서 노래로 승화하는 것이 마음에 기쁨이 온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얼굴은 욕심이 없고 마음을 비워서 사는 어린 소년이 바닷가에서 조용히 피리 부는 소년같아 보였다. 한마디로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순진한 늙은 소년으로 보였다. 때론 장로들 모임에 특송으로 찬양할 때가 있어 들을 수가 있는데 “나이든 장로가 어찌 그렇게 음을 낼 수 있을까?” 대단한 도전이다. 무슨 명예나 감투는 아예 사양하는 맑고 순진한 장로였다. 이제 얼마 있으면 70세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인생 후반전에 성악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아름답게 늙어가는 여정의 길을 밟고 있어 참 아름다웠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 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노래로 아름답게 연주할 지다”(시편 33:2~3) ▲최훈조 목사 ▲김영근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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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9
  • [목회자칼럼] 그도 예수의 제자라
    살다보면 기대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받기도 한다. 반면에 기대 밖의 고마운 사람, 기대 이상으로 멋진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병든 자식이 효도하고, 굽은 가지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좋고 친구가 많고 추억이 많고,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행복하다. 반면에 인간이 싫고 세상이 싫어서 왕따요 외톨이인 사람이 소외감을 느낀다.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사람이지만, 세상에 끔찍한 것이 인간이다. 기적 중의 기적은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예수님을 만날 때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이다. 괴팍한 성격과 인색한 마음, 거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맛보아 알고 나면 사람이 변화된다. 예수님을 만나서 자기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지를 깨닫고 나면 까칠한 사람이 순해진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나면 격한 감정선에서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이 순한 양처럼 변해진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인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인가?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은 사람인가?를 보아야 된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이다. 만남의 축복이 있다. 복 있는 사람은 인복이 많다. 은혜 입은 사람은 사방에서 돕는 자들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던 사람이 있다. 어떤 인간은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할 악연도 있다. 마태복음 마지막 부분인 마27~28장에는 예수님의 부활 후에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군중과 무리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스치고 지나가는 피상적인 만남으로 여겼기 때문에 호산나라고 찬송하던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폭도가 되고 말았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복음을 듣고도, 소귀에 경 읽기 하듯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는 사람은 멸망당한다. 그러나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예수님을 지키던 이방인 백부장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놀라운 고백을 한다. 구약시대에 믿음 좋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을 저버리고 타락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피가 더러운, 모압 여인 룻과, 여리고의 기생 라합 같은 신앙세계와 전혀 관계없는 이방 여인들을 들어서 다윗의 왕통을 열고 메시야의 족보를 만드셨다. 크리스천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 어떤 경우에는 이방인들이 진리를 외친다. 그야말로 돌들이 소리 지르는 것이다. 또한 갈릴리에서부터 골고다까지 따라온 많은 여자들이 나온다. 믿었던 남자 제자들은 의리도 없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연약한 여인들은 십자가를 끝까지 따라붙었다. 그 중에서도 귀신같이 살았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난 후 낙차 큰 변화구처럼! 최악에서 최상으로 변화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최초로 목도하는 특권을 누리고, 이 복된 부활의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달하는 사명을 가졌다. 하나님 나라에는 이력서가 필요 없다. 오늘 믿으면 구원 받는 것이다. 가장 특별한 사람은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인데, 그를 소개하는 말이 "그도 예수의 제자라"는 표현이다. 요19:38을 보면 아리마대사람 요셉은 숨겨진 제자였다. 그는 “내가 예수 믿는 것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는 소위, 이순신 신앙이다. 소심하고 겁쟁이였지만, 그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였다. 시1편에 복있는 사람은 판단력과 위치선정이 남다르듯이 눅23:50~51을 보면 아리마대사람 요셉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결의하거나 동참하지 않았다. 사람 죽이고 악한 일에, 나서지도 말고, 동참하지도 말고, 함께 하지도 마라. 그는 참된 소망인, 하나님나라, 천국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겁쟁이요 소심한 사람이었던 그가 여기에서는 당돌히 빌라도에게 나아갔다(막15:43). 소심한 사람이 복음을 접하면 담대해진다. 그는 존경받는 공회원으로 정치하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자기에게 큰 피해가 올지라도 담대히 나섰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마27:57) 예수님은 운명하시고 날은 저물었으니 모든 것이 끝장난 것 같은 그 결정적인 시간에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 등장한다. 그는 보아스처럼 유력한 부자였기에 세마포 흰옷과 새 무덤을 가지고 예수님의 장례식을 잘 모실 수 있었다. 사사시대에, 소 모는 막대기를 가지고,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사람 육백 명을 죽인 사사 삼갈을,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삿3:31). 모세의 지팡이, 다윗의 물맷돌, 기드온의 보리, 엘리야의 손 만한 구름, 라합의 붉은 천 조각처럼 주께서는 작은 것을 가지고 위대한 구원역사를 이루셨다. 그도 우리의 구원자이다.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교회에 보내놓고 정중하게 부탁하였다. 디모데는 누구보다도 병약하고 심약하고 허약해서 비실거렸기 때문에 그가 두려움 없이 사역하도록 배려하였다.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에 힘쓰는 자이다. 그도 사역자다. 그도 일꾼이다(고전16:10). 눅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 집에 들어가시니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군거렸다. 이때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그도 우리 가족이다. 그도 한 식구다. 사람을 속단하지 마라. 사람을 무시하지 마라. 그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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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9
  • [이상규 교수의 역사탐색] 만주의 사도바울 한경희 목사의 순교
    공산주의자에 의해 만주에서 죽임을 당한 대표적인 인물이 장로교의 한경희 목사였다. 한경희(韓敬禧, 1881-1935) 목사가 북만주의 호림현에서 순행 전도하던 중 오소리강에서 공산 공비 40여명을 만나 목사임이 드러나자 총에 맞아 죽었고 얼어붙은 강에 던져졌다. 1935년 1월 4일이었다. 일제가 우리 민족 말살을 의도했다고 하지만 같은 민족의 공산당이 더 악독했다. 이 참화를 듣고 총회 전도국은 송창근 박사를 보내 북만교회를 시찰했는데 그 보고를 받은 김인서는 다음과 같이 썼다. “북만주교회는 순교의 피로 쌓은 교회다. 우리는 북만의 순교자라면 한경희 목사만을 알되, 한 목사 이외에도 순교한 신자의 이름은 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잔악을 극(極)한 공산당에게 몽치에 맞아 죽은 순교자, 정수리에 못 박혀 죽은 순교자, 머리 가죽이 벗겨 죽은 순교자, 말 못할 학살을 당한 여 순교자, 기십 기백에 달하였다 한다. ...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여서도 김현점(金炫漸) 목사와 같이 공산당에게 살을 찢어내는 핍박을 당하는 등 여러번 사경에 출입하는 이가 많다. ... 만주에는 교회가50여 처, 교인이 3천여 인에 달하였다. 그리하여 7목사, 20여 장로의 아름다운 노회를 이루어 전진도상에 있다하니 이는 눈물로 땀으로 땀으로 터 밖은 교회요, 피로, 순교의 피로 세우는 교회이다. 하나님의 성신이 사도 대와 같이 역사하는 교회이다. 만주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자, 만주교회를 위하여 연보하자. 만주에 전도하자.” 한경희 목사는 1881년 음력 11월 5일 (양력은 12월 25일) 평안북도 용천군 외상면 남시리(구 의주군 양광면 송정리)에서 아버지 한승주(韓承周)와 달성(達成) 서(徐)씨 어머니 사이의 3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탐관오리들에 의해 수탈을 당하자 가세가 기울어 져 4세가 되던 1885년 가족들은 양서면(楊西面)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수재(水災)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평안도 북부지방을 전전하며 지내 던 중 한경희는 19세가 되던 1900년 신효정(申孝正)의 장녀 경원(敬元)과 혼인했다. 그러던 중 1903년 동문외교회(東門外敎會) 전도인 송문정(宋文正)이 전해 준 『구세론(救世論)』을 읽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고 그해 10월 첫 주일부터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가 신앙생활을 하게 되자 가문으로부터 핍박을 받았지만 믿음으로 인내하였고, 후에는 자신을 핍박하던 맏형 한찬희(韓燦禧)도 회심하였고 후에는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한경희는 23세가 되던 1904년 6월 22일 동문외교회에서 학습을 받았고, 그 해 11월에는 서리집사로 임명되었다. 1905년 11월 16일에는 이 교회에서 선교사 계인수(Carl E. Kearns, 桂仁秀) 목사로부터 부인과 함께 세례를 받고 동시에 집사로 피택 되었다. 이후 그와 함께 전도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07년 7월에는 동문외교회의 영수로 선출되었다. 영수가 된 그는 자신의 부족을 생각하고 창신학교(昌新學校) 속성반에 입학하여 6개월 후에 졸업했다. 이듬해인 1908년에는 이 학교 교장이 되었다고 한다. 인근 주민과 학교 직원들ㅢ 신뢰를 받고 교장으로 추대된 것이다. 한경희는 1909년부터는 고난 속에 살아가던 만주로 눈을 돌려 훌루투(葫蘆套)와 자피구(夾彼溝)에서 전도하여 두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1910년에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고, 1914년 5월 15일 동료 17명과 함께 제7회로 졸업했다. 33세 때였다. 그해 8월 7일에는 양전백(梁甸伯, 1869-1933) 목사에 의해 중국 길림성(吉林省) 중동선(中東線) 지역 전도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이후 그는 만주 지방 전도자로 활동하게 되는데,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쿡(Welling T. Cook, 鞠裕致, 1878-1952)의 기록에 의하면 1920년 당시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은 50만 명에 달했다. 한경희 목사는 마적(馬賊)의 출몰하고 일제의 위협과 수탈, 조선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는 마주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전도자로 활동하게 되는데, 영안현(寧安縣) 신안촌(新安村), 석두하자(石頭河子), 위하현(葦河縣) 일면파(一面派), 목릉현(穆稜縣) 목릉(穆稜), 팔면통(八面通), 그리고 밀산현(密山縣) 백포자(白泡子), 십리와(十里窪) 등 일곱 곳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1915년 후반 한경희 목사는 서간도(西間島)의 전도목사로 임명되어 온가족이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로 이사하여 삼원포, 해룡(海龍), 동풍(東豊), 서풍(西豊), 휘남현(輝南縣)의 5개현을 담당하였다. 개척 전도자 한경희 목사는 고결한 인품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고, 나중에는 방기전(方基典, 1861-1920)이 1912년 10월 설립한 은양학교(恩養學校)의 2대 교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는 교회 개척과 전도 외에도 교육사업에 관여하였고,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9년 3월에는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3년 2월 간 신의주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이때 ‘아리랑’이란 소설로 유명한 김산도 신의주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고 한다. 1932년 1월 29일 출옥한 이후 창성읍(昌城邑) 교회와 평로동(坪路洞) 교회에서 임시목사로 시무하였다. 한경희 목사는 길림성 동북쪽에 위치한 호림(虎林), 요하(饒河), 수원현(綏遠縣) 등에서 사역자를 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접하고 이곳으로 자원하여 갔다. 친구들은 그곳은 공산당과 비적들이 많아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만류했으나 “나라를 잃고 해외에 망명하여 슬퍼하는 동포에게 복음을 전하여 새 생명을 주고 위로하며 독립정신을 키워주는 만주선교가 나의 사명이다”라고 여기고 1933년 북만주로 파견되었다. 이곳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던 그는 1935년 1월 1일, 교인 4명과 함께 북만주 호림현 지방교회 순방길을 떠났는데, 1월 4일 오소리강(烏蘇里江) 소목하(小木河) 지점에서 40여 명의 공산당원들에게 잡혔다. 그들은 한경희 목사에게 일본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2시간 동안 구타하고 그와 4명의 교인을 총살하고 시체를 얼어붙은 강 속에 던졌다. 한경희 목사의 순교는 조선 전역의 기독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후에 손양원 목사는 설교하면서 한경희 목사를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그가 신사참배 거부로 1941년 11월 4일 피체되어 광주 지방법원에서 재판 받을 때, 판결문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중략) 참 신앙은 고난이라 시련을 겪은 다음에 비로소 얻는 것인 고로 우리들은 이 고난을 이기고 신앙을 점점 공고히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런 때를 당하여 현하(現下) 교회는 사랑과 지혜와 용맹을 가지고 일하는 교역자를 요구한다. 우리 조선 기독교 교역자는 모두들 순교자 한경희 목사와 같이 순교 정신으로 선교에 종사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한경희 목사는 공산주의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 ‘만주의 사도바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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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규교수의 역사탐색
    2023-05-19
  • [송길원 목사] 내면의 배고픔, ‘외로움과 고립’
    6월 23일은 유엔이 정한 ‘국제 과부(寡婦)의 날’이다. 국제 과부의 날은 2010년 유엔이 정했다. 인도 펀잡 지방 출신 기업인 라즈 룸바(Raj Loomba, 1943~)가 자신의 어머니를 기려 만들었다. 과부였던 어머니는 자신을 비롯 7남매를 길러냈다. 그가 설립한 ‘룸바 재단’에 따르면 설립 당시인 2015년 기준, 전 세계 과부가 2억 5,900만 명이었다. 그들의 손에 의해 5억 8,500만 명의 자녀들이 양육을 받았다. 그들 과부 중 1억 1,500만 명이 가난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당한다. 이들 과부를 넘어서 지구촌은 또 다른 가난, ‘내면의 배고픔(외로움과 고립)’을 겪고 있다. 고령층이 그들이다. 거기에다 1인 가구도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30% 가까운 사람들이 항상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는 통계가 여럿이다. 세상은 초연결사회로 치닫고 있지만 여전히 모든 인간은 ‘외딴섬’처럼 살아가고 있다. 알베르 코엔은 장편소설〈내 어머니의 책>의 첫 문장을 이렇게 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이고, 남의 일에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저마다의 괴로움은 황량하고 쓸쓸한 섬과도 같다.” 미국 공중보건 서비스단의 보고에 의하면 외로움과 고립에 시달리는 이들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29% 더 높다. 뇌졸중은 32%, 치매는 50% 더 크다. 노화 속도는 1년 8개월 더 빨랐고 인지능력은 20% 더 빨리 저하됐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비벡 머시 단장은 외로움이 하루 담배 15개비만큼 해롭다며 외로움과 고립을 공중보건 정책의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외로움과 고립으로 인한 ‘내면의 배고픔’은 개인의 몫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외로움으로 인한 치매 등 건강 문제가 증가되었다. 업무 효율 저하를 넘어서 자살 및 고독사가 증가하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국가 차원의 국민 돌봄이 필요해졌다. 영국은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직을 신설했다. 인간이 가진 고독과 소외에서 비롯되는 외로움을 줄이는 일이 의료비는 물론 교통사고와 범죄를 줄인다. 자살 예방의 최선책이 된다. 2021년 일본은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총리관저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실을 출범시켰다. 외로움 시장이 커지면서 반려 로봇 상용화도 눈앞에 다가와 있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궁극의 공감기계’라 불리는 VR로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한마디로 하면 세상은 ‘외로움’과 전쟁 중이다. 반려동물이 늘고 있다. 위로에 대한 갈망이다. 위로를 준 반려동물도 천국에 같이 갈 수 있느냐는 질문과 상담이 늘었다고 한다. 이런 세태 속에서 교회는 이들의 외로움과 고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믿음 없는 소리라고만 치부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약성경 신명기에서는 ‘3대 약자’가 자주 언급된다. ‘고아’, ‘과부’, ‘나그네’가 그들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학대하지 말고 돌봐야 할 것을 강조한다. 율법서만이 아니다. 예언자들 메시지에도 이런 정신은 자주 언급된다. 4계명의 안식일 법은 대표적인 약자 보호법이나 다를 바 없다. 요즘 말로 하면 ‘약자와의 동행’이다. 신약성경으로 눈길을 돌리면 과부들에게도 적극적인 주문을 한다.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딤전 5:5)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외로움을 ‘몸과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기는 질병’으로 정의했다. 하나님은 이 질병에 대해 어떤 차방을 가지고 계신 걸까? “하나님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가정을 이루시고 사슬에 묶인 사람들을 풀어 주신다.”(시 68:6, 우리말) 개역개정은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로 번역했다. 가정의 달이다. ‘가정을 교회처럼, 교회를 가정처럼’이 헛구호가 되지 않도록 저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자. 저들의 요구는 딱 하나다. “외로운 영혼을 품어다오.” 오늘따라 시편 기자의 간구가 가슴을 울린다. “주님, 나를 돌아다보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는 외롭고 괴롭습니다. 원수가 내 마음에 고통을 더하니, 나를 이 아픔에서 건져 주십시오. 내 괴로움과 근심을 살펴 주십시오.”(시 25:16~22, 표준새번역)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부부 주일... 교회의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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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론
    2023-05-19
  • 부산장신대학생생활상담소-김해시정신건강복지센터 업무협약 체결
    부산장신대학교(총장 천병석) 학생생활상담소는 지난 15일 김해시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대학생의 생명존중 및 정신건강증진과 안정망 구축을 위한 지원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상호 업무협력체계를 구축하기위해 마련됐다. 양 기관은 협약에 따라 대학생의 정신건강·자살 고위험군 발굴 및 적극 연계, 고위험군 발견에 따른 정신건강서비스 연계 체계 구축 및 전문적 자문, 부산장신대학교 재학생 및 교직원의 정신건강교육, 상담, 공동사업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 협력해 나갈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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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9
  • ‘차별금지법 반대’ 위한 목회자 3천인 대회, 6월 13일 영락교회에서
    지난해 9월 진평연(진정한 평등을 바라며 나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전국연합) 대표회장이자 영락교회 담임 김운성 목사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김운성 목사를 시작으로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오륜교회 김은호 목사,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 예장합동 총회장 권순웅 목사 등이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참여로 화제가 됐던 1인 시위가 확대되어 대규모 목회자 대회를 연다. 오는 6월 13일(화) 오후 2시 서울 영락교회(김운성 목사)에서 3천인 목회자 대회 ‘희망의 대한민국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를 개최한다. 서울차반연, 차반연전국목임, 서기총 외 다수 목회자연합단체들이 연합해 주관하고 희대연대회준비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대회는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주제로 진행된다. 주강사는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 김운성 목사(영락교회),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이며, 오프닝 특강은 길원평 교수(진평연 집행위원장)와 조영길 변호사(법무법인 아이앤에스 대표)가 강사로 나선다. 지난 5월 18일(목)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1인 시위로 나선 예장합동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차별금지법과 유사한 법을 통과시켰던 서구교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묵과했기에 교회와 가정이 해체 되었다. 동성애를 정당화하는 차별금지법은 종교의 자유와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입법을 반대한다”면서 “동성애를 인정한 나라들을 보면 남녀구분 없이 모든 성을 인정하는 문제로 다음세대가 가치관 정립에 혼란을 겪고, 동성애로 인해 여러 질병 등으로 피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서울차반연 공동대표)는 “차별금지법은 결코 바꿔서는 안 되는 사회의 근간이 되는 양성질서를 무너뜨림으로 혼란한 세상을 조장한다. 불안정하고 왜곡된 느낌을 기준으로 성을 규정한다는 것은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되는 반사회적 혁명이기에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회 참여는 https://forms.gle/CXXH2yEw6WQNp1CJ8를 통해 접수 가능하다. 문의) 서울차반연 상임총무 안석문 목사 010-874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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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9
  • 포도원교회, 덕천성전 입당
    포도원교회(담임 김문훈 목사)가 교회 첫 예배당이었던 덕천성전을 새롭게 건축하고 지난 5월 17일(수) 입당감사예배를 가졌다. 1981년 3월 22일 창립예배를 갖고 1983년 덕천동교회로 개명, 1991년 포도원교회로 개명했다. 1999년 김문훈 목사가 3대 당회장으로 부임한 이후 2004년 9월 화명동 신시가지내 화명예배당을 완공하여 입당, 화명성전과 덕천성전에서 함께 예배를 드려왔다. 이후 2014년 9월 금곡동에 본당 3500석 규모의 드림센터를 완공해 입당해 예배를 드리고 있다. 포도원교회는 덕천성전을 재건축하기로 결의하고 지난해 3월 24일 착공예배를 가졌다. 1년간 공사 끝에 지난 5월 9일 사용승인을 받고 지난 17일 오후 7시 30분 덕천성전 본당에서 입당감사예배를 가졌다. 이날 설교에서 김문훈 목사는 “덕천성전은 포도원교회의 첫사랑 같은 곳이다. 이곳이 우리의 뿌리가 되고 시발점이 되었고, 40년간 복을 받았다. 덕천성전에서 폭발적인 성장이 시작되어 화명성전으로, 드림센터로 옮기게 됐다. 덕천성전에서 몇백명으로, 화명성전에서 몇천명으로, 드림센터에서 만명으로 성장한 교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또 “덕천성전, 화명성전, 양산선교센터도 각각 다른 목사님들이 맡아 앞으로 점차 교회가 분리하기로 당회에서 결의했다. 복음은 변질이 되지 않고 사랑은 변하지 않지만 이를 전달하는 교회는 혁신적인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덕천성전은 강소교회다. 친정처럼 편안하며 추억의 교회, 은혜의 동산, 기적의 현장이었던 역사가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도읍 국회의원은 축사를 통해 “사람이 근본과 기본을 잊으면 안되듯이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포도원교회가 부흥한 것은 덕천성전에서 시작하여 날로 부흥하였듯이 포도원의 뿌리인 덕천성전을 잊지 않고 새 예배당을 마련한 것은 포도원교회 성도들의 전통과 사랑의 깊이가 남다르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덕천성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포도원교회 덕천성전은 117평 대지 위에 건축면적 67평, 연면적 332평 규모의 건물이다. 지하 1층에서 지상 6층으로 예배당은 220석 규모로 건축됐고, 건축비 약 34억원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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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9
  • 박창제 장로 “60년 넘게 새벽기도를 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내 새벽기도가 끝나는 날 내 인생도 끝난다> 이 책을 받은 한 목사는 “책 제목이 무섭다. 제목을 왜 이렇게 했냐?”며 책장 한구석에 두고 잊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 중 이 책이 생각나면서 책의 겉이 아닌 내용을 보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곧장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2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에 책을 다 읽은 후 아내에게도 책을 읽어보길 권했다. 그리고 부부는 책을 읽으며 받은 소감을 나누고 저자를 교회에 초청해 간증집회를 열기로 했다. 그렇게 전국을 다니고 있는 박창제 장로(부산성산교회 원로)가 지난 4월 신앙간증집 <내 새벽기도가 끝나는 날 내 인생도 끝난다>(에스라출판사) 14쇄를 발행했다. 코로나가 종료되고 교회들도 예배를 회복하면서 간증집회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유창한 언변은 아니더라도 박창제 장로의 삶에 녹아든 진솔한 신앙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교회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다. 박 장로는 “교회 규모와 상관없이 한명의 성도라도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간다”면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전국을 다니고 있다. 1950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한 박창제 장로는 1957년 의령마산교회에 출석하고 1961년 12세때 새벽기도를 출석하기 시작했다. 60년이 넘도록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했다. 매일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해 4시부터 6시까지 교회에서 기도를 했더니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됐다. 그 이야기들을 엮어 책을 출간하게 됐고 150여 회 이상의 간증집회를 인도했다. 박창제 장로는 “책 제목이 무섭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새벽기도를 하면 복을 받는다 혹은 기도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써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고백이자 다짐이다. 인생이 끝날 때까지 새벽 제단을 쌓으며 기도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 “이 책을 우연히 접하고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개척교회인데 새벽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등 전국 각처에서 들려오는 후기를 들으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60년이 넘도록 새벽기도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것도, 기도의 응답을 보게 된 것도, 부족한 글 솜씨로 출간한 책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다. 결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고백했다. 문의) 010-8525-5141 박창제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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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7
  • 호주선교기념관 준공 감사예배
    130년 전 부산과 경남에 복음을 들고 선교, 의료 구제, 교육사업을 펼쳤던 호주선교사들의 역사와 공덕을 기리기 위해 착공한 호주선교기념관이 15일 오전 11시 창신기독학원에서 건물 준공 감사예배를 드렸다. 박시영 목사(건설본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감사예배는 박동철 장로(경남기독문화원 이사)의 대표기도와 강대열 목사(경남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의 말씀이 있었다. 이후 강병도 학원장(창신기독학원)의 기념사와 이종승 목사(경남성시화 이사장), 지태영 목사(호주, 원로목사)의 내빈축사, 감사패 전달 등이 진행됐다. 호주선교기념관은 창신중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부지 약 80평에 4층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부지 매입비 및 건축비 20억원은 전액 창신기독학원에서 부담했고, 현재 내부 Display 공사비 1억 5천만원은 교계에서 모금을 하여 진행중이다. 호주선교기념관은 호주선교사 선교 당시 업적과 사진, 유물 및 기념품 등이 담긴 전시관과 후손들에게 호주선교사들의 선교정신과 희생정신을 가르치기 위한 다양한 교육적인 프로그램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정식개관은 7월 22일(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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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6
  • 석포교회, 대연4동 행정복지센터에 성품 전달
    예장합동 석포교회(채문식 목사)는 최근 대연4동 행정복지센터에 온누리상품권과 건강보조식품 등(300만 원 상당)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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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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