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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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복음과 민족을 위해 헌신한 민족의 지도자들 중에는 부산, 경남이 낳은 여성 인물들이 많다. 
양한나 선생은 1893년 3월 3일 출생 부산 동래 북천동 출생. 조국광복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대의원으로 활동했고, 해방 후에는 여권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 부산여자기독교청년회(부산YWCA) 초대회장을 지냈다. 1950년대 부산 사하구 괴정동에 여성노숙자, 고아, 생계형윤락여성, 정신병자 등을 돌보는 ‘자매여숙’을 설립하고 1976년 6월 26일 소천 할 때까지 소외된 여성들을 돌보는데 노력했다. 예수의 사랑을 봉사로 실천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은 희생과 헌신의 공덕으로 용신봉사상과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양한나 여사는 부산진일신여학교 1회 졸업생이다. 현재 부산YWCA의 전신인 부산진일신여학교 청년회의 총무로서 여자기독교청년회 활동에 참여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밀항으로 상해에 가서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상해에서 돌아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고, 1920년대부터 계속 돼 온 부산 지역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호주선교사 에이미 스키너는 양한나와 절친으로 한국에 올 때 양한나와 동행했다. 부산에서 고아원을 운영했던 에이미 선교사는 한국 땅을 밟은 첫 여성이다. 
1946년 7월 1일 부산여자기독교청년회(부산YWCA) 창립 시 총무도 없이 초대회장이 됐다. 농촌 부녀자들에게 농업, 축산, 원예 등의 기술을 교육하고 1984년 회장직을 안음전 권사에게 물려주고 부산여자기독교 청년회를 떠났다. 
부산진교회의 명예권사인 양한나 여사는 부산진교회 기장묘역에 안장됐다. 자매여숙은 양한나 여사의 뒤를 이어 그녀의 조카이자 양아들인 부산진교회 장로 故우창웅 장로가 이사장으로, 그의 부인 윤애리나 권사가 2대 원장을 지내면서 평생토록 헌신했다. 우창웅 장로는 부산YMCA 제6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양한나 여사의 동생 양성봉 장로(초량교회)는 1949년부터 환도할 때까지 경남도지사를 지냈고, 환도 후에는 농림부장관으로 취임했다. 양성봉 장로는 10녀 1남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외동아들이다. 양성봉 장로는 부산진공립보통학교에서 공부한 후 부산상업학교(현 개성고등학교)에 진학, 졸업했다. 이후 부산철도국 서무과에서 일하기도 했고, 울주군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러다가 부산으로 돌아와 미국인 선교사 어을빈의 제약회사에서 일했다. 1929년 초량교회에서 주기철 목사의 집례로 장로 장립을 받았다. 미군정시절인 1945년 11월 26일 부산시 부시장에 취임한 양성봉 장로는 솔직하고 화통한 성격과 아부하거나 잔꾀를 쓰지 않는 인물로 신뢰를 받아 1946년 1월 24일 제1대 부산시장에 취임하게 됐다. 
양한나 여사의 부군은 김우영 변호사이며, 여동생 양봉옥 권사(부산진교회)는 우덕준 장로의 부인으로 부산YWCA 회장을 지냈다. 양한나 여사의 집안은 그야말로 YMCA, YWCA에서 활동한 공로자 집안이다. 그의 후손들은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믿음의 복을 주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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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경남을 빛낸 교계 여성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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