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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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가 육십 세를 넘어가는 이들은 <중단 없는 전진>이란 표현을 기억할 것입니다. 새마을운동과 함께 보급된 캠페인이었다고 여겨지는 이 문구는 웬만한 공사장, 심지어 학교 교실에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어떤 이에 의하면 이 문구는 미국의 대륙 횡단 열차 공사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중단 없는 전진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이 문구를 한국교회가 채용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한국교회는 요즘 멈춰 서 있는 기관차와 같습니다. 레일이 끊어진 것인지, 연료가 떨어진 것인지, 성장이 멈춘 지 오래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의기소침해졌고, 성도들도 전도의 열의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안 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는 패배주의는 정말 무서운 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에베소서는 바울 사도를 통해서 주신 서신입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주 안에서 갇힌 내가>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바울 사도께서는 감옥에 계셨기에 에베소서를 옥중서신이라 부릅니다. <갇힌>이란 단어는 바울 사도의 전도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처한 환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분에게는 호조건이란 거의 없었습니다. 수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매를 맞기도 하고, 굶기도 하고, 노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누가 대신 항의를 하거나 도움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노회나 총회도 없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많은 경우에 가난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 안에서 갇힌>이란 표현에 유의해야 합니다. 주 안에 있어도 갇힐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주 안에 있기 때문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주 안에 있지 않다면 갇힐 이유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님을 따르면 복을 받고 편안할 것이라 기대하지만, 오히려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주 안에서>란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께서는 복음을 증거 하는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곤 하는데, 가서 보면 이미 신앙을 가진 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 주님을 믿는 분들이 계신 곳에서 설교하는 게 뭐가 어렵습니까? 그러나 바울 사도께서는 주님을 믿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 곳에서 설교하곤 했습니다. 감옥도, 채찍도, 굶주림도, 비난도, 그 어떤 어려움도 그를 멈춰 세우지 못했습니다. 바울 사도야말로 중단 없는 전진을 계속한 분입니다.
본문은 그가 중단 없는 전진을 하는 모습을 잘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합니다. 그는 감옥에 갇혔지만, 교우들을 말씀으로 권면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말로 할 수 없기에 편지를 썼습니다. 만나서 말로 설교하고 권하는 길이 막혔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글로 시작했습니다. 이건 대단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이 막히면 포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이 막히자, 글로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글들이 오늘까지 신약성경에 남아서 오고 오는 세대에게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께서 말로 전파한 것들은 지금 전해지지 않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귓가를 울린 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악조건에도 멈추지 않고 기록한 서신들은 지금까지 진리를 품고 남아 있으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중단하지 않고, 계속한 복음 사역이 가져온 열매입니다. 그가 처한 악조건은 오히려 더 놀라운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조건에도 포기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포기하지 맙시다. 그리하여 중단 없이 전진합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힘찬 기적소리와 함께 달려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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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결코 중단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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