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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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설악산을 들렀습니다. 속초 쪽에서 들어가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을 오르는 짧은 여정이었습니다. 외적의 침략에 맞서 권 씨와 김 씨 성을 가진 두 사람이 쌓았다고 해서 권금성이라 불리는 바위산에서 바라본 가을의 설악은 소문처럼 단풍이 멋졌습니다. 어느 시인은 단풍을 두고 이렇게 썼습니다. “너의 죽음이 / 국민장이 되는구나 / 기껏 여름 몇 푼의 그늘 / 업적은 미비한데 / 화려한 장례식에 / 명산은 문상하느라 / 온 나라가 북새통이다”(박가월, 「단풍1」) 산을 좋아하다가 산행 중 돌아가신 시인이 남긴 구절처럼 이른 아침부터 단풍객이 문자 그대로 ‘인산(人山)’을 이루었습니다. 불긋노릇한 이파리마냥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보다 더 느린 속도로 따라오는 빨갛고 파랗고 초록초록한 관광버스들이 이루는, 자연의 단풍과 문명의 단풍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절경을 만났습니다.
설악을 지난 발걸음은 고성을 향했습니다. 통일전망대 옆에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통일전망대교회’입니다. “분단된 이 땅의 상흔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교회가 세워졌다. 이번에 신축된 통일전망대교회는 2003년 5월 온천제일교회 이연수 집사(장혜자 권사)가 교회 건축을 위해 목적헌금을 드리면서 시작됐다. 한 때 시공사의 부도로 공사가 중단됐었지만, 2004년 6월 공사를 재개해 원방형의 35평 교회와 23미터 종탑을 완공하게 됐다. 통일전망대교회는 수용인원이 70여 명 정도로 아담한 건물이지만, 전면을 유리로 시공해 철책선 너머 내금강과 외금강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와 ‘세계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교회’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뛰어난 경관을 가지고 있다.”(기독신문 2004.10.19.) 과연 그곳에서 바라본 금강산과 해금강이란! 금강의 가을은 따로 풍악산(楓嶽山)이라 불릴 정도로 단풍이 압권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풍악의 금강은 아직까지는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합니다.
금강의 단풍을 소개하기 바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연일 방송은 평양공동선언 비준 문제로 다투고 있는 국감의 현장을 비추기에 바쁩니다. 평양공동선언이란 지난 9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체결된 합의를 의미합니다. 국회의 동의를 요하는지, 아니면 행정부의 비준으로 족한지가 쟁점입니다. 하지만 정치와 이념 문제를 넘어 이 좋은 계절에 잠시 이런 단상(斷想)에 빠져봅니다. 하루 속히 분단된 조국이 에스겔서 37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가 되어서 가을이 되면 설악으로 금강으로 단풍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또 하나의 단풍이 되어 이루는 장관을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 말입니다. 그 때에는 체제의 우월이나 사상의 경쟁은 사라지고 오직 설악의 단풍이 나으냐 금강의 단풍이 나으냐, 백두에도 단풍이 있는가 한라에도 단풍이 있는가, 이런 아름다운 논쟁만이 온통 이 땅을 가득 채우면 좋겠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인제에서 소문난 황태해장국집을 들렀습니다. 곳곳에 놓인 황태 덕장들은 아직 덩그러니 비었습니다. 12월부터라야 황태를 널 수 있다는 주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겨울 눈과 강풍을 견디고 또 견뎌서 명태는 황태로 거듭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진부령을 넘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또 진부령의 단풍이 그렇게 아름다울지 상상도 못했습니다. 미시령 자락을 지나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미시령 곳곳에 숨어 있는 단풍의 자태가 그토록 눈부실지도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말갛게 보이지만 구수하기 짝이 없는 황태국을 먹으면서 창밖으로 바라보는 단풍은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도 역사도 단풍처럼 황태처럼 멋있게 맛있게 익어가면 좋겠습니다. 교회들도 단풍처럼 황태처럼 아름답게 맛깔나게 성숙해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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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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