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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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만큼 역설적인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예가 성경 여러 곳에 나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후서 4장 8절 이하에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또 고린도후서 6장 8절 중간부터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런 표현들은 어법상으로는 맞지 않으나 영적으로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거할수록 이런 역설과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잘 사는 법을 알려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즉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절 후반부를 보면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초점이 하나님 나라에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선을 하나님 나라에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 우리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는 인간의 나라, 땅의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나라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하고, 땅의 나라에 살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이중적, 혹은 역설적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해야 할 삶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우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셨는데,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말씀입니다. 희끄무레한 성벽이 있고, 로마 군인들이 길거기를 행진하고, 성전이 버티고 있는, 그러면서 죄악이 자행되는 복잡한 도시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거기도 가난과 고통, 질병과 죽음, 음모와 악행, 수탈과 속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눈앞의 예루살렘을 회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눈앞의 것만 보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다림의 대상은 아직 눈앞에 없는 것들이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눈앞의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 살면서, 동시에 눈앞에 없는 것을 바라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그 후 우리 선배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살지 않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로마 제국 아래 살았지만, 로마 제국의 영광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제국의 억압에 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제국인 하나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면서도 자기들보다 더 가난한 자들을 도왔습니다. 그들은 순교하면서도 영생을 바라보며 찬송했습니다. 그들은 자유인이었습니다. 외부적 억압으로부터 자유했고, 내부적 욕망으로부터 자유했습니다. 훨훨 나는 새처럼 살았습니다. 이들은 오늘이라는 로마 제국 안의 시간을 살면서도 내일이라는 천국의 영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슬픔 중에서 기뻐했고, 감옥 안에서도 찬송했으며, 가난 중에서도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부활의 주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이 역설의 능력을 체험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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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내일을 보는 오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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