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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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예수님께서 한 집에 계실 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채로 메고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집에 사람이 너무 많아 입구로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는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어 침상을 달아 내리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병자를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자 그 자리에 있던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지신 분인데, 예수님께서 마치 하나님이라도 되는양 말씀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이시고, 얼마든지 죄를 사할 권세가 있다는 실이었습니다. 이때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한 가지 독특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질문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죄를 사해주는 것과 병을 고쳐주는 것 중 어느 것이 쉽겠습니까? 서기관들의 생각대로라면 죄를 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소관이니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에 반해 병을 고치는 것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를 보면 가능한 일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병을 고치는 것이 죄를 사하는 것보다 쉬운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예수님께는 둘 다 쉽지만, 인간에게는 둘 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린 예가 있었지만, 이것 역시 그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는 두 가지가 다 쉽지만, 사람에게는 두 가지 다 불가능합니다. 어느 날 저는 이 질문을 제게 적용해 보았습니다. 목사인 저는 이 둘 중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게는 두 가지 다 불가능합니다. 저는 죄를 사해 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없고, 병을 고쳐주겠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가지를 다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중세교회였습니다. 교황을 대표로 하는 중세교회는 면죄부를 사면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천주교회는 고해성사를 통해 사죄의 선언을 합니다. 또 성인들은 얼마든지 병을 고쳐준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중세교회는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을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중세교회의 교만을 깨뜨렸습니다. 죄의 용서도, 질병의 치유도인간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까아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무능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가지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믿음>입니다. 5절 앞부분을보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란 대목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죄를 사할 수도없고, 병을 고칠 수도 없지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릴 수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믿음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진리는 오직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겸손히 엎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죄의 용서도 받고, 질병의 치유도 받을 것입니다. 믿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질 제3의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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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제3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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