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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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년 영국은 국왕과 백성 사이에 일종의 협약을 체결합니다. 이를 마그나 카르타, 즉 대헌장(大憲章)이라 부르고 많은 사가(史家)들은 이를 서구 민주주의의 시작으로 봅니다. 그 후 대헌장이란 말은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산상수훈을 ‘하나님 나라(천국)의 대헌장’이라 부릅니다.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라고 부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부터 18까지의 말씀, 즉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기독교인의 대헌장’이라고 합니다. ‘기독교 대헌장’도 있습니다(YWAM). 그러나 기독교시민대헌장이란 말은 잘 쓰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는 로마서 13장 1절과 5절을 일종의 기독교시민대헌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여기서 “권세”에 정치권력이 포함됨은 물론입니다. 2절 이하를 보면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위임 받은 통치권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정치적 시민으로서 기독교인의 첫 번째 성경적 자세는 ‘복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끝까지 개인적인 복수를 하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권세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권에 대한 복종이 무비판적인 굴종(屈從)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3장 5절은 그리스도인시민대헌장의 두 번째 중요한 원칙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양심을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로마서 2장 15절은 사람에게 양심이 있어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도행전 23:1에서 바울은 공회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오늘까지 아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범사에’란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개인적 양심도 중요했지만, 세상의 정치적·종교적 권력과 싸울 때의 사회적 양심도 중요했습니다.
사드(THAAD) 배치, 종교인 과세, 양성평등과 성평등, 국가인권위원회의 헌법 기관화를 비롯한 일련의 헌법 개정의 움직임, 그리고 최근 북한의 핵탄두개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첨예한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문제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관과 생각하는 이상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합니다. 사회적 현안마다 일일이 교회가 대응하고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반면에 전 국민이 걱정하고 논쟁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교회가 철저하게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 현안에 대해 적어도 기도할 수 있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기도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속적 가치관이나 관점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관점과 기준으로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시민으로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 세속적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가를 담대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무엇이 가장 옳은 방향성인가를 정직하게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무조건적인 불복종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선한 양심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리스도인시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모든 판단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여기며 분별할 수 있고 또한 실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시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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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그리스도인 시민대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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