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김충만 목사.JPG
 다윗은 그의 70년 생애에서 세 번의 기름부음을 받는다. 약관 10대 후반에 예선(豫選)된 왕으로 처음(삼상 16:1-13), 이어 십 수 년이 지난 후 30세에 두 번째 기름부음을 받아 유다지파의 왕으로 7년 반을(삼하 2:1-11), 그리고 세 번째 기름부음을 받아 통일왕국의 왕으로 33년을(삼하 5:1-5), 이렇게 총 40년 동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린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첫 번째 기름부음에서다: 하나님은 왜 10대 후반에 -오늘로 하면 대학 1학년쯤이다- 불과한 자를, 아무 것으로도 검증된 게 없고, 그 어떤 자격이나 조건도 없어 보이는 무명의 양치기 소년을 이스라엘 두 번째 왕으로 부르시는 것일까. 성경은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첫 번 기름부음을 받는 사무엘상 16장을 전후한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눈에 찾아진바 된, 그리하여 사울의 뒤를 잇는 통일왕국의 왕으로 세워지는 이유들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준비된 사람이었다. 비록 십대 소년이었고 양치는 목동이었지만 골리앗 앞에 나아가기 이전, 이미 그는 준비되어 있었다. 언제나 반복되는 시골(베들레헴)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결코 적당히 해치우는 식으로 일하지 않았다. 양들에게 생명을 걸만큼 충성했다는 뜻이다.
골리앗의 이마에 물매돌이 박히게 하는 실력을 생각해 보자(삼상 17:49). 그는 무수한 연습을 했을 것이다. 시간만 나면 그는 목표물을 정해 놓고 물매를 던졌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전혀 딴 방향으로 돌이 날아가서 떨어지곤 했지 싶다. 어느 때는 양의 머리에 돌이 날아가 양이 뇌진탕으로 쓰러져 그날 밤 양고기를 먹는 행운(?)도 있었을 것이고, 오늘 식으로 말하면 유리창도 깨뜨렸을 것이고, 아마 크고 작은 물맷돌 사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를 하루, 한 주, 한 달, 1년 …, 마침내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기도 하고, 또한 그의 고백에서처럼 “사자와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따라가서 … 그것을 쳐죽였”을 것이다(삼상 17:34-37). 하지만, 그럼 그가 왕이 되려고 그랬는가? 결코 아니다.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 했을 뿐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생각하면서 몰매를 연습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단지 성실하게 준비했던 것이 –첫 번 기름부음 받기 이전이다- 때가 되매 쓰이는 도구가 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준비’가 갖는 최고의 가치다.
수금을 연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첫 번 기름부음을 받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예배자로 깊은 호흡을 토해내고 있었다(삼상 16:23). 하나님이 선지자 사무엘을 이새의 집에 보내실 때 아무도 다윗의 존재를 알지 못한, 바로 그러한 십대 후반의 소년의 때에도 그는 날마다의 일상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다윗에게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기름을 부으신다(삼상 16:13a). 이어 그는 여호와의 신에게 감동된다(삼상 16:13b). 그는 왕이 되기 위해 이것들을 준비하거나, 먼저 기름부음을 받아놓고서 후에 왕위수업을 받은 게 아니다. 단지 자기에게 주어진 양치기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물매를 던지는 실력을, 아버지의 양을 훔쳐가는 사자와 곰과 씨름할 능력을, 동시에 수금을 타며 연주 잘하는 수준을 넘어 귀신이 물러가는 영감 넘치는 예배자로서의 일상을 겸손과 열정과 성실과 마음을 다해 묵묵히 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이 주목하셨다(시 78:70-72). 아버지 이새의 양무리를 이처럼 사랑한다면 이스라엘이라는 목장을 맡겨도 충분하리라 보셨다. 하나님은 다윗의 오늘을 그의 어제에서 자란 열매로 드러내신 것이다. 이 어찌 다윗만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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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만 목사] 다윗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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