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금년 구정 명절은 유난히도 매서운 바람에 추운 겨울을 실감하게 했다. 새벽 4시 핸드폰 알람소리에 일어나 교회로 향한다. 고요히 새벽기도 시간은 자신을 뒤돌아보고 세속에 물들었던 과거의 죄상을 떠올리게 하여 하나님께 회개한다. 주홍같이 붉은 나의 죄를 흰 눈같이 되기를 바라며 나의 죄성을 뿌리 뽑기 위한 회개는 천만번해도 모자란다. 하지만 나는, 나의 처한 직업의 현실 앞에 서 있을 때는 빈들에 서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정의 앞에는 소리쳐야 하고, 글을 써야하는 충동이 습관처럼 되어 글을 쓰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가 않는다. 교계 안에서 지탄을 받고 욕을 먹는다고 스스로 자인하며 살아 온지 4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글쓰기는 치매도 예방된다. 고 장성만 목사는 소천하기 몇 달 전까지 글을 썼다.
△故 강원용 목사의 삶과 사상
“사람들이 ‘당신은 누구요? 종교인이요?’하고 물을 때,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사회 개혁가요?’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도 ‘아니요’라고 답하면 ‘그러면 정치가요?’라고 묻는다. 아니라는 내 대답에 ‘그러면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어온다. 나는 대답하기를 ‘나는 한국이란 빈들에서 외치는 광야의 소리요’라고 답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故 강원용 목사다. 광야의 소리로써 살아 온 삶의 전부였다.
고인은 일제시대였던 1917년 함경남도 이원에서 태어났다. 1935년 당시18세 되던 해에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농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만주 용정으로 건너갔다. 그곳 은진중학교에서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와 함께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 은진중학교 교사였던 김재준 목사로부터 역사의식을 배웠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받았다. 실제 필자는 은진중학교기념관에 전시된 선각자들, 특히 목사로 배출된 분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라고 눈여겨보았고, 김재준 목사가 제자들에게 국가관과 기독교 가치관을 심어준 결과라고 느낌을 받았다.
강원용 목사는 1945년 서울로 내려와 사회운동과 종교운동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좌우 합작위원회 청년 대표로서 김규식 ,여운형 등이 주도하는 건국운동에 참여했다. 여기서 그는 인생의 고내와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그 후 1956년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 라인 홀드 니버 교수를 만나면서 자신의 신앙과 사상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는 기독교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사이와 너머”라는 양극의 대립과 갈등의 지점에서 어느 한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이해와 대화를 통해 중용의 길을 걸어 간 한국사회 갈등을 치유하는 ‘대화의 광장’으로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한명숙 전 여성 국무총리도 강 박사 밑에서 간사로 일했다. 강 목사는 한국정치에도 독재정권을 향하여 광야의 소리를 외치며 전국을 돌며 강연했다. 젊은 대학생과 청년들이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몰려왔고, 강연이 있었던 부산YMCA 강당은 자리가 없어 복도까지 꽉 찰만큼 인기가 좋았다. 그의 언변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그의 글은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교계기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종교 간의 대화, 인간화운동을 펼쳤던 그의 신앙사상은 기독교적 사랑이 스며들어 있었다. 화해와 대화로서 갈등을 헤쳐 나가자는 그의 박애정신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 두고 있는 광야에 외치는 소리이었지만 안으로는 사랑이 녹여주는 대화와 화평 그 중심 사상이 그의 전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역사의 한 가운데서 민중과 더불어 불의와 맞서며 사회정의를 위해 광야의 외치는, 빈들의 소리가 우리 귀전을 맴돌며 우리 삶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원로 강원용 목사는 한 세기를 밝혔던 위대한 스승이자 역사 앞에서 온 몸을 던진 시대의 소금과 횃불이었다.
향년 89세의 일기로 하늘나라에 간 여해 강원용 목사와 같은 기독교적 지도자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다. 점점 더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옛말로 흘려 가버리고 말런지 이 어지러운 대선정국과 한국사회, 한국교회에 불을 밝혀 줄 인물이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는 심정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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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대선 정국에 기독교적 영웅은 나타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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