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홍석진 목사.jpg
 1973년 에른스트 슈마허(E. F. Schumacher, 1911-1978)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라는 책에서 세계화와 경쟁력을 부르짖으며 줄곧 ‘큰 것이 좋다’를 외쳐왔던 세태를 비판합니다. 끊임없이 성장해야만 한다는 주장과 오직 수치에 의해서만 정당화되는 성공은 결국 환경에 대한 무지와 함께 인간 스스로에게도 좌절과 불안과 우울증과 소외만 안겼을 뿐이라는 그의 지적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깊은 반향을 일으킵니다.
  기원전 4년, 유대의 통치자 헤롯 왕은 관료들에게 물었습니다. “유대의 왕이 나신다니 그곳이 어디냐?” 그는 어쩌면 다른 대답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입니다.” 다른 여지를 고려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고 단호하게 성경이 예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베들레헴은 라헬의 묘소가 있고 다윗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유서 깊은 동네이기는 하지만 10리 인근의 예루살렘과 비교하면 작은 마을에 불과합니다. 하기는 베들레헴을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예언한 미가서 자체도 작은 선지서에 불과합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와 같이 가문 좋고 학식과 식견이 뛰어나고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던 예언자가 아니라 무명소졸이나 다름없는 미가를 통해 메시아 탄생지가 계시되었다는 사실도 생각해 보면 참 기이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성탄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소위 <마리아 노래 신학(magnificat theory)>에 따르면 하나님은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시며 비천한 자를 높이십니다”(눅 1:52).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포함해서 믿음의 조상들은 대개 애를 못 낳은 여인들에게서 우여곡절 끝에 태어났고(사라, 라헬, 한나, 엘리사벳), 장자보다는 차자나 막내가 선택된 경우가 많고(아벨, 야곱, 요셉, 에브라임, 모세, 다윗),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셨으며(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와 같은 강대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른 다섯 여인을 보더라도 참으로 기구한 인생을 살았던 여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다말,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 구원의 도구 십자가는 인류 최악의 형벌이었고 이를 통해 결국 세상에서 작은 자와 고난당하고 핍박 받던 자들이 천국에서 높임을 받게 된다는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계 7장).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세상을 구원할 구주(救主)가 나셨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기적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베들레헴 작은 마을의 기적은 날마다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탄절 때만 노래와 연극과 축제를 통해서만 되살아나는 추억의 이야기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의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교회입니다. 교회를 만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지배하고 다스리실 때,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가 다시 드러나십니다. 크리스마스마저도 세상에 뺏기고 교회도 언제부터인가 세속에 물들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셔야 합니다. 교회에서 예수만 나와야 합니다. 또한 오늘날의 베들레헴 에브라다는 성도입니다. 예수께서 내 삶의 주인으로 나를 다스리셔야 합니다. 내 말과 행동을 통해 오직 예수만 드러나야 합니다. 내 생활의 태도와 습관을 통해 예수만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판 베들레헴 에브라다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작은 마을의 기적입니다. 올 성탄절에는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이러한 작은 마을의 기적이 교회마다 가정마다 성도들 각자의 삶을 통해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시공을 초월해서 인류를 다스리시는 절대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크리스마스는 물론이요 언제 어디서나 만민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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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작은 마을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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