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16~17세기, 국제 문제에 대한 대처법으로 무엇보다 먼저 종교와 전쟁이 이용되었다. 잉글랜드와 그 후의 영국연방, 그리고 미국의 내셔널리즘 성립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6세기에 프로테스탄티즘이 생겨난 이후,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사람들은 다른 서양의 국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자기 나라가 ‘신의 나라’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 영국인은 새로운 ‘선택된 민족’이었다. 그리고 18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은, 보스턴의 설교자에서 버지니아의 담배 농장주에 이르기까지 자신감에 넘쳐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들의 ‘새로운 이스라엘’은 미시시피 강까지, 그리고 그 너머 태평양까지 넓혀질 것이라고.” (케빈 필립스, 『사촌들의 전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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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거스틴의 두 도성론과 루터의 두 왕국론
 
일찍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은 필연적인 것(반드시 일어날 일)을 말하고, 역사는 현실적인 것(이미 일어난 것)을 기록하고, 극시(劇詩)는 개연적인 것(일어날 법한 일)을 모방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이 ‘어순실한’ 정황 속에서 철학은 난무하지만, 역사는 지워지고, 극시가 코미디로 판을 깔고 있다. 이는 정치의 문제로 국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믿는 그리스도인들과 국가와의 관계, 종교와 국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까?
 
로마서 12장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지닐 네 가지 기본적인 관계에 관해 말한 이후(하나님-자기 자신-서로-원수), 13장에서는 ‘국가-율법-시대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특히 국가와 교회의 관계에 있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위는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위는 다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위를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을 거스르는 자가 되고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공동번역 로마서 13:1-2).” 정말 그럴까?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us)은 410년 8월 24일 서고트족이 로마를 침략하자 이방세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자는 뜻으로 『신의 도성(De civitas Dei)』을 저술한다. 여기에서 어거스틴은 신의 도성과 세상도성(civitas terrena)은 인간 역사상 언제나 대립적인 관계를 유지해왔고, 불신자는 인간들의 방법으로 신자는 하나님의 방법에 순종하며 살도록 예정되었으며 이 두 세력이 두 도성으로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어거스틴은 “세상 왕국의 할 일은 땅의 평화(Pax terrena)를 실현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자들은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행동양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거스틴이 말하는 도성(나라)은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세상에 대한 사랑, 자기를 경멸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영을 사랑하는 것’, 즉 두 도성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전자는 의로운 자의 나라요, 후자는 악한 자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 따라서 인간들 가운데 확립된 이 두 도성은 마지막 심판 때에는 서로 갈라지게 될 것이다. 하나는 선한 천사들과 연합하여 그 왕과 함께 영생을 향유하고, 다른 하나는 악한 천사들과 함께 연합하여 그 왕과 함께 영벌에 던져질 것이다.
 
두 도성론은 그 본질상 신비적이며 초자연적인데, 전자는 ‘진리-선-질서-평화의 나라’이며 참된 사회이고, 후자는 전자를 거부하는 사회로 ‘오류-악-무질서-혼란’의 나라인 것이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영향 하에 영적 왕국과 세속적 왕국을 구별하며(분리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와 세상 권력(1522년)’이라는 설교에서 ‘세상 왕국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에 관해 마르틴 루터는 (선별하고 축약하여 정리해 본다면) 이렇게 말한다.
 
“첫째, 이 세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통치방법(세상적, 영적)을 쓰시는데, 세상권력은 세상을 통치하는 군주들의 몫이다. 둘째, 세상통치권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을 징벌하고 경건한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즉 검을 지닌다는 말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타인을 지키고 섬기는데 만 검을 사용한다. 셋째,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세상 통치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롬13장).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그 권세를 통하여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군주는 또한 신실한 보좌관을 선택해야 하며, 악인과 선인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백성의 실수를 눈감아 줄줄 모르는 군주는 다스릴 자격이 없다.”
 
이러한 생각에 근거하여 루터(M. Luther)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한 나라-하늘의 나라-영적 정부’이며 세상의 왕국은 ‘시간의 나라-잠정적인 나라-지상의 정부’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복음과 말씀, 사랑으로 내면적인 영역을 다스린다면, 세상 왕국은 율법과 강제력으로 외면적 영역을 통치한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은 구원을 목표로 하고, 세상 왕국은 유지와 보존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왕국론을 이해하는 근간이 되는 ‘세상권세에 대하여, 세상 권세에 어디까지 복종해야하는가?(1523년)’라는 글을 통해 마르틴 루터는 “첫째, 세상 인간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자와 세상 왕국에 속한 자로 구별할 수 있는데, 만약 모든 세상 사람들이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만 있으면 검이나 권력 따위는 필요치 않다. 따라서 의로운 자들을 다스리려고 법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듯이 율법 아래에서는 죄가 드러날 뿐이다. 따라서 세상 권세는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세워졌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세속 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루터는 “세속 권력이 다스리는 영역은 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영역의 문제들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통제만 받는다. 따라서 비록 로마서 13장에서 세상 권세에 복종할 것을 명령하고 있지만 이것은 인간의 외적 질서에 해당되는 말씀이지 이것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신앙 문제에까지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군주는 어떠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시에 군주로서의 책임을 완수해야하는가? 루터는 “하나님을 향하여는 올바른 신뢰와 진심으로 기도해야 하고 백성들에게는 사랑과 그리스도적인 다스림으로 대해야 하며 신하에게는 이성적으로 맹신하지 않는 이해심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불의에 대하여는 날카로운 엄격함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세속 왕국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검을 사용하여 악을 벌하고 경건한 이들을 보호하며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이룩해야할 목표를 지니지만, 하나님의 영적 왕국은 말씀으로 통치하여 경건한 자들을 종말적인 구원을 향하여 이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세속 왕국은 성경에 언급된 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지만(롬13:1, 벧전2:13), 결코 영적인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루터는 “세속 왕국과 영적인 왕국, 이 두 가지의 통치영역은 절대로 혼합되어서도 안되고 완전히 따로 떼어서도 생각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통치영역의 지배를 받는 시민이다. 그들이 군주든 소시민이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권력이 있다 해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인내와 고난당함으로 대처해야 한다. 세상 권력은 오직 이웃의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는데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이웃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랑으로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임을 가르치려했던 루터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글이다.
 
2. 국가와 교회의 4가지 모델
 
두 왕국론의 시작은 이러했으나, 그 결과는 근대국가의 군주적 통치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오용된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념의 순수성이 국가와 종교의 관계에서 잘못 왜곡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근대 들어 종교개혁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선한 복음적 의도를 넘어 선 강력한 군주들의 교회 개입에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가령 예를 들면, 루터의 서한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보내는 서한」(1520)에서 교권분립의 대전제가 유사시에는 유보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비상주교(Notbischof)’론이 선포되었다.)는 그들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현실적 고려였다. 가톨릭 교회를 지지하는 세속군주들에게 맞서 개혁운동을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 대안은 개혁교회를 지지하는 정치권과의 결탁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교권 장악을 통해 자신들의 통치권을 강화하려는 군주들의 욕구를 암묵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루터파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가 채택한 으뜸 원리는 ‘한 지역의 종교는 그 지역의 통치자가 결정(cuius regio, eius religio)’한다는 것이었다. 종교개혁가들에 따르면 군주의 직위와 권한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늘이 제정한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군주에 대한 복종은 민중의 당연한 의무라는 ‘왕권신수설’에 대한 당연한 보증이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은 결과적으로 국가의 교회장악을 가속시키는 기제로 작동하였고 통치자에 대한 민중의 순응을 강조함으로써 곧이어 유럽사회에 등장하게 되는 절대주의 체제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엥겔스(F. Engels)의 “루터는 절대군주정의 대단한 아첨꾼”이나, 휘기스(J. N. Figgis)의 “만일 루터파가 없었다면 루이 14세도 없었을 것”, 혹은 윌리엄 맥거번(W. McGovern)의 말처럼, “나치의 뿌리가 루터의 정치사상에 있다.”는 말에 쉽게 동조하기는 어렵더라도 일면 역사적으로 타당한 면이 있다. 루터가 폭군에 대해 민중이 취할 수 있는 대항은 고난을 감수하고 탄압을 인내하는 소극적 저항뿐이며, 불의한 군주는 저항의 대상이 아니라 인내의 대상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그의 시대적 한계(혹은 어거스틴을 이어 이후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에 이르는 서구신학의 실존적 한계?)를 엿볼 수 있다.
 
아무튼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존 스토트(John Stott)에 의하면 4가지 모델로 정리할 수 있다. 곧 국가가 교회를 통제한다는 ‘국가 만능론’, 교회가 국가를 통제한다는 ‘신정’, 국가가 교회에게 호의를 베풀고 교회는 그 호의를 계속 받기 위해 국가의 편의를 도모해 주는 타협안인 ‘콘스탄틴 주의’, 그리고 교회와 국가가 건설적인 협력 정신으로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독특한 책임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동반자 관계’가 그것이다.
존 스토트는 로마서 13장 주석을 통해 “우리는 국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유발하기 전까지만 굴복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명하거나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을 금하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명백한 의무는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것, 곧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국가에 불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율법과 반대되어 제정될 때마다 ‘시민 불복종’은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되는 것이다. 바로가 히브리인 산파들에게 갓난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했을 때 순종하기를 거부하고(출 1:17), 느부갓네살 왕이 모든 신하에게 금신상에 엎드려 절하라는 포고를 내렸을 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도 순종하기를 거부했으며(단 3장), 다리오 왕이 삼십 일 동안 아무도 자기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칙령을 내렸을 때, 다니엘도 순종하기를 거부했다(단 장6).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핍박하는 국가(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으로 묘사된)는 자신의 권세를 마귀(붉은 용으로 묘사된)에게 준 사탄의 동맹군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존 스토트는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국가의 권위에 굴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 권위는 특별한 목적 그리고 전체주의적이지 않은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 ‘복음은 폭군과 무정부주의자 모두에게 똑같이 적대적이다.’”
 
사무엘서는 왕을 세움으로 백성들이 입게 되는 여러 가지 불이익을 열거한다. “사무엘은 왕을 세워달라는 백성에게 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낱낱이 일러주었다. 사무엘은 이렇게 일러주었다.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주겠다. 그는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대나 기마대의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을 시키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거나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보병의 무기와 기병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다. 또 너희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를 만들게도 하고 요리나 과자를 굽는 일도 시킬 것이다.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에서 좋은 것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곡식과 포도에서도 십분의 일 세를 거두어 자기의 내시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의 남종 여종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좋은 소와 나귀를 끌어다가 부려먹고 양떼에서도 십분의 일 세를 거두어갈 것이며 너희들마저 종으로 삼으리라. 때에 가서야 너희는 너희들이 스스로 뽑아 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그 날에 야훼께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공동번역 사무엘상 8:10-18)”
오늘날, 고대의 왕과 민주정의 대통령(president)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대통령은 라틴어 ‘주재하다(praesidere)’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그의 지위가 ‘법 위’인지, ‘법 아래’인지를 통해 왕인지, 대통령인지를 알 수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10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 시국을 바라보며 우리는 아직 왕정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게 된다. 120여년 전 1894년 동학혁명 당시 “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丙申)되면 못 가리”라는 민요가 유행했었다. 갑오년(1894년)에 제대로 개혁을 하지 못하면, 을미년(1895년)에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병신년(1896년)이 되면 결국 나라와 백성이 큰일을 당한다는 뜻이다. 2014년 개혁의 실패로 2015년 을미적 거렸고, 2016년은 120년 전 병신년과 같이 역사는 반복되었다.
 
한문 왕(王)자에 관해 중국 전한 시대의 유학자 동중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 개의 가로획은 하늘, 땅, 사람을 뜻하며,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이 왕이다.” 애초에 왕은 지도자가 아닌 지배자였다. 너무 무서워서 신성한 존재였다. 무력의 독점과 잘 조직된 감시기구, 역모에 대한 가혹한 처벌은 왕권에 대한 도전의 싹을 자른다.
 
중세시대는 교황권이 황제의 권력보다 더 거대했다.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에게 카노사의 굴욕을 안겼던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황은 성령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바 있다. 이른바 ‘교황 무오류설’인데, 이와 마찬가지로 동양 역시 중국 왕조시대에 황제가 아무리 잘못을 해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것은, 황제는 하늘이 내린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대 왕들의 ‘무오류에 대한 자기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이 오늘 세계를, 아니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한비자』는 역린(逆鱗)에 관해 이렇게 말한바 있다. “용은 사람이 길들여 능히 올라탈 수도 있지만,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를 죽인다.” 용이 ‘이명박근혜라는 권력’인지? ‘대한민국 국민’인지? 2016년이 다 가기 전에 결정될 것이다.
 
3. 인터레그넘 시대의 교회의 역할
 
현재를 가리켜 영국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 Bauman)은 “지금 세계화 시대는 인터레그넘(interregnum)의 시대”라고 한다. 로마법에서 사용된 용어로 일종의 권력 이양기로 ‘지금까지 통치하던 왕이 사망했는데 아직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이전의 기간’을 의미한다. 사실 세계화는 영토, 국민, 주권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 중심의 질서를 해체했다. 따라서 세계시장과 자본권력이 개인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국민국가의 정치적 제도와 국민의 주권적 힘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인터레그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다.
 
따라서 바우만은 “권력을 잃은 국가의 대안으로 도시를 제안”한다. 국가는 애초에 영토를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성립된 단위이므로 국가보다 빠르고 쉽게 대처할 수 있는 작은 정치단위인 도시가 대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럽은 도시를 기반으로 한 사회 운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가능하나, 오랫동안 국가 중심의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가령, 축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국가대항 경기에 관심이 많은 반면, 유럽은 도시 단위의 클럽 경기에 열광한다.
 
어쨌든 국가의 신용이 무너진 이때, 지역이나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살리려는 노력들이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시국에 대한 촛불집회가 수도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되었지만, 지역별 촛불로 분화되어 지역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교회가 그 지역 마을 공동체의 음성을 듣고 그 마을을 살리는 일에 헌신할 때, ‘타자를 위한 존재’로서 교회가 제 기능을 할 것이며, 인터레그넘 시대의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버지니아 울프(V. Woolf)는 “여성에게 조국은 없다.”라고 말한바 있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K. Marx)와 엥겔스도 “프롤레타리아에게 조국은 없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참다운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은 있을까?’라는 국가와 종교에 관한 4차 방정식에 지역 공동체가 ‘정답 아닌 대답’이라고 말해도 될는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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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학 목사 (남부산용호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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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최병학 목사의 문화펼치기 21 : 종교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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