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홍석진 목사.jpg
 여름이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날이 있으니 바로 복날입니다. 어느덧 초복을 지났습니다. 어떤 분들은 중복·말복에다가 8.15 광복과 9.28 서울 수복을 합쳐서 오복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우깁니다. 보신탕 더 잡숫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고구려 벽화에 개 잡는 모습이 나옵니다. 중국 명나라 시대 편찬한 ‘본초강목(本草綱目)’이라는 책은 개를 쓰임에 따라 사냥개(전견, 田犬), 집 지키는 개(폐견, 吠犬), 잡아먹는 개(食犬) 세 가지로 나누고, 식용개는 구(拘)라는 단어를 많이 써 사냥이나 집 지키는 견(犬)과 구별했습니다. 보신탕 대용으로 먹는 삼계탕도 역사가 만만치 않습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이야기에 벌써 닭이 나오지 않습니까? 추어탕은 고려 말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공식적으로 등장하지만 그 이전부터 서민들의 음식으로 각광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절기상으로는 초복이었던 한 주간은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사건이 많은 주간이기도 했습니다. 1509년 7월 10일, 종교개혁가 존 칼빈(John Calvin)이 태어났습니다. 1789년 7월 14일, 구체제(Ancien regime)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prise de la Bastille) 습격 사건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는 7월의 이 한 주간을 가슴 아픈 사건으로 얼룩진 주간으로 기억하게 생겼습니다. 7월 14일 밤 프랑스 니스(Nice)라는 도시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일축제가 열려 해변가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트럭 한 대가 나타나 축제 현장을 그대로 돌진해서 무방비로 있던 사람들을 덮쳐, 아이들 포함한 84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중태입니다(17일 현재). 7월 15일 밤 터키에서는 군부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불과 하루 사이에 265명이 사망하고 1440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대부분이 무고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음식으로 더위를 물리칠 수는 있지만, 무더위 속에서 일어난 이런 사건들은 그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가 없겠습니다.
  일찍이 성(聖)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i, 1182-1226) 또한 이런 기도문을 남겼습니다.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도록 나를 도와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여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종교의 이름으로 박해와 살육이 자행되고, 교권은 타락했으며, 교회는 날로 세속화되어 가던 시절입니다. 한 사람의 절규에 찬 기도였지만, 당시 교회와 세상에 주는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참극들을 바라보면서, 어째서 이런 일들이 자꾸만 일어납니까 반문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럴 때마다 주님을 더욱 바라보게 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라고 하셨고,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내가 세상에 빛이라”(요 9:5)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나 혼탁합니다. 테러와 전쟁과 억압과 분노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흑암의 권세를 물리칠 이 그 누가 있겠습니까? 그저 주님 앞에 기도할 뿐입니다.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신 주님, 이 캄캄하고 혼탁한 세상에 평화의 생명의 빛을 비추어 주시옵소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대신 평화의 광채를, 죽음의 음침한 기운 대신 생명의 광선을 내려주소서.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하옵소서.>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사칼럼] 주여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