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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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당 밑의 분당’이라는 지역에서 사역할 때 일이다. 당시 필자는 어린이 부서를 맡았기에 토요일이면 초등학교 앞에 전도를 나갔다. 그런데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거웠다.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토요일에 마음껏 놀 수 있는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부모가 짜놓은 학원 스케줄에 맞추어 보통 3-4개, 많은 아이들은 5개 이상의 학원을 다녀야만 했다.
초기 사역 때의 이 경험은 사육과 교육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차이라고는 ‘사’(飼)와 ‘교’(敎)의 차이인데, 사육과 교육은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사육은 동물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 동물을 키우고, 적정한 시점에 도축을 통해 잡아먹는 것이 사육이다. 그러나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특별히 기독교교육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독교적 가치로 훈련하여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정이 중요하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한다. 물론 이 말은 사실이다. 전도가 되지 않고,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선교 130년 만에 이런 교회의 침체는 교회지도자들의 탈선과 교회가 세상을 잘 섬기지 못한 이유가 클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적으로 볼 때 이것은 교회의 위기라기보다 가정의 위기이다. 축소된 교회인 가정이 위기를 맞이하면서 큰 가정인 교회가 힘을 잃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예는 영국교회가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영국교회는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인구 100명 중 80명이 교회에 출석하는 소위 기독교 국가였다. 영국의 중심 건물은 교회 건물이었다. 그뿐 아니라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를 통해 중국, 윌리엄 케리(William Carey)를 통해 인도,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을 통해 아프리카를 선교했고, 조선 땅에 와서 최초의 순교자가 된 토마스 목사도 영국 출신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인구 100명 당 7.5명만이 교회에 출석할 뿐이다. 교회당 유지가 힘들어 창고나 식당, 술집으로 변화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 2015년 1월 3일)에 의하면 한때 1000명이 넘는 교회당이 스케이트보드 연습장으로 바뀌고, 브리스톨의 성 바울 교회는 서커스양성소로 바뀌었다고 보고한다. 학자들에 의하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말씀의 소중한 가치를 가르치기보다 세상의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실이 암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그 답이 가정에 있다. 가정에서 자녀를 사육하지 않고 교육해야 한다. 좋은 음식을 주고, 좋은 학원에 보내고, 좋은 선생을 붙여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밖에 있는 불쌍한 민족이지만 바로 유대인들이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된다. 이들은 세계 인구의 0.2%밖에 되지 않는 민족이다. 그런데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을 자랑하는 하바드대학의 2만 명의 학생 중 유대인의 비율이 30%라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의 22%가 유대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비결이 무엇일까? 그것은 유대인 어머니에게 있다. 유대인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쉐마본문으로 알려진 신명기 6장 4-9절을 늘 읽어준다고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자녀의 침실을 지켜주고, 그 시간에 하루 중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한다. 그리고는 성경을 읽어준다. 금요일 저녁이면 가족 수만큼 등불을 켜서는 아이들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양육과 돌봄의 교육이 결국 자녀들을 지혜롭게 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들에게는 없는 복음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방식으로 사육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교육한다면 다시 일어서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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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철 목사] 사육(飼育)과 교육(敎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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