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김충만 목사.JPG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나는... 사람은 밥과 고기와 물과 나물을 먹으며 살아간다. 단지 이것들만 먹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뭔가를 먹어야 하고, 그래야 기력을 얻어 건강을 유지하며 삶의 호흡을 신바람 나게 이어갈 수 있다. 혹여 며칠은 굶거나 물만 먹는 것으로 연명하거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응급 상태만으로 계속해서 살 수는 없다. 어떻든 살기 위해서라도 뭐든 먹어야 한다. 사람은 그리 만들어졌으니까.
그럼 반전인데 사랑 2그램(2g), 기쁨 한 접시, 여기에 행복 한 공기와 감사국 한 그릇을 은혜라는 반찬과 함께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사랑과 행복과 기쁨과 감사와 은혜 같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으로 쥘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무게를 달 수도, 색깔을 볼 수도, 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더욱 아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공기만 보아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가.
이렇듯 오감(五感)에 잡히지 않거나 경험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암(癌)에 걸려보지 않았어도 암은 있고, 내가 달나라에 가보지 않았어도 달은 존재하고, 내가 저 깊은 바닷 속 심해(深海)에 발을 딛고 서보지 않았어도 바다의 바닥은 단지 끝없는 물로 되어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니까 경험하고, 맛보고, 잡아보고, 눈으로 봐야만 그런 것들만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노라면 밥도 먹고 또 그런 게 자연스럽게 늘 곁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도 먹고 이를 나누고 흐르게 하며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에 그렇다. 아쉬운 것은 세상이 언젠가부터 서서히 보이지는 않지만 있는, 그런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또 잊혀져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그저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힘이 되어주고 자신을 지켜줄 것 같은 그런 감각할 수 있는 것들에 소망을 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그런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모르기에 말이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랑으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렵다. 예수님에게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요4.32)이 있으셨지만 그럼에도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구운 생선 한 토막’(눅24.42-43)으로 식사를 하셨다. 앞서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5, 신8.3 참조) 친히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 둘 사이에 낀 게 인생 행로가 아닐까. 그래도 떡으로만이 아닌 사랑으로도 살도록 지어졌음을, 동시에 사랑만이 아닌 떡으로도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이것이 육신을 입은 인생인 것을 날마다 깨닫게 하시는 게 아닐까 싶다.
예수님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보이는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저 천국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세상은 이 비밀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을 위해, 이 땅 너머의 저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소망이 어리석고 무가치해 보이는 것 아닐까.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떡으로만이 아닌 사랑 2그램으로도 살아가는 자임을 세상에 보여주며 사는 것 아닐까. 세상은 지금 자신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것이 교회이고 그리스도인이어야 이 시대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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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만 목사] 사랑 2그램(2g) 먹고도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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