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김기현 목사.JPG
  뜻하지 않게 자녀 양육 강사 노릇을 하는 중이다. 아들과 함께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SFC)를 쓴 다음, 이곳저곳에서 어떻게 하면 책 읽는 자녀로 키우느냐며 강의를 부탁한다. 그러니까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라고 쓰고는 ‘그런 아들을 어떻게 키워요?’ 로 읽는 형국이다. 아들의 이러저러한 신앙 고민에 대한 신앙 변증서가 자녀 양육서가 되었다고 출판사 편집자랑 같이 웃었다.
 첫째는 태교부터 시작했다. 한의대를 다니던 선배의 조언을 따라 매일 10분가량 아내의 배에 손을 대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게 태담이라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아내는 성경과 잔뜩 빌려온 동화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시편과 잠언, 그리고 신약성경을 반복해서 낭독했다. 나는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예컨대, 월요일에는 철학, 화요일은 신학, 수요일은 문학, 목요일은 역사, 금요일은 음악, 토요일은 성경, 일요일은 예배, 뭐 이런 식이었다. 태아 때부터 온갖 철학자와 신학자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아들은 결국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영문학을 복수전공하여 신나게 놀면서 즐겁게 공부한다.
 둘째, 말을 많이 해 주었다. 아이가 처음 집에 왔을 때, 아들을 가슴에 안고 온 방안을 돌아다녔다. 이 방은 엄마, 아빠의 침실이란다. 여기는 화장실인데 얼굴과 몸을 씻는 곳이고, 네가 여기서 목욕을 할 거야. 아, 저 끝 방은 아빠가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설교를 준비하는 곳이야, 라며 귀에 대고 속삭여주었다. 내 품에 안겨 잠이 들 때는 ‘사랑의 주님이 날 사랑하시네’를 주구장창 불렀고, 잠이 깰 때는 내가 생각한 것, 본 것, 그리고 지금 주변의 풍경과 상황에 대해 내 나름의 관찰과 해석을 곁들여 속살거렸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에서 아들의 어휘력과 문장력에 대해 감탄하는 것을 보면 분명 효과가 있었지 싶다.
 셋째, 입이 아프도록 책을 읽어주었다. 무릎에 앉히고는 다리가 저리도록, 입이 아프도록 읽고 또 읽었다. 예외 없이 경험하지 않는가. 아이들은 반복을 사랑한다. 수십, 수백 번을 읽다보면 나는 지쳐도 아이는 즐겁다. 동화책 속의 인물의 목소리나 동물 소리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며 읽노라니 턱이 얼얼하다. 종종 귀찮다고 짜증을 부렸다. 하도 읽어 달라 졸라 대는 통에 졸곤 했다. 10분만 더 읽자는 것이 한 시간도 되고, 딱 한 권만 더 읽자고 했는데 서너 권이다. 그랬더니 스스로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서 책만 읽는다. 피곤하지도 지치지도 않는가 보다.
 마지막으로 도서관에서 빌려주었다. 가난해서 책을 많이 못 사준 것이 아쉽다. 남들에 비하면 평균 이상이겠지만 말이다. 해서, 도서관을 애용했다. 우리 네 가족 모두 한 사람당 3권씩 12권을 빌렸다. 갖고 오는 족족 읽어대는 통에 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나중에는 각 10권씩, 총 40권을 대출해 주었다. 가파른 언덕 위 도서관을 무려 40권을 양 손 가득 들고 숨을 헐떡거리며 여름이고 겨울이고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다가 도서관의 추천으로 ‘책 읽는 가족’이라는 작은 상도 받았다. 그래서 그런가, 책을 정말 사랑하고 깨끗하게 읽는다. 행여 교회에서 누군가 책을 밟고 지나가거나 책 위를 넘어갈라치면 아들은 이상히 여기곤 했다. 어떤 때는 화를 낼 정도이었으니까.
이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의 일이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는 수천 권은 족히 읽었을 것이다.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수십 번을, 조정래의 「한강」도 탐독했다. 글쓰기 대회에서 상도 곧잘 받았다. 그렇게 책을 끔찍이도 좋아하더니 중학교 들어가서 이러저러한 반항도, 방황도 하고, 음악과 운동에 푹 빠져 지냈다. 그러다가 고등 2학년 때, 그런다. ‘나도 아빠처럼 책 읽고 글 쓰고 가르치는 인문학자가 될래요.’ 내게 방점은 ‘아빠처럼’이었다. 그래, 아빠처럼 말이다. 영리한 녀석은 내가 반대 못하게 그렇게 말했을는지 몰라도 나는 말 안 했지만 속으로 기뻐 울었다. 결국 내 아들, 딸이 책 읽는 자녀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닦달하지 말고 아빠부터 책 먼저 읽기! 그것이 책 읽는 자녀로 자라도록 하는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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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목사] 책 읽는 자녀로 키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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