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홍석진 목사.jpg
 
작년 12월 12일부터 중국에서 시작된 일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질환 때문에 최초 발원지로 추정되는 중국의 우한(武漢)에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도 ‘중국의 배꼽’이라 불리던 지역이 갑자기 세상의 중심이 된 느낌입니다. 인구 1,000만이 넘는 이 거대도시는 이로써 <우한 폐렴>이라고 하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족적을 역사에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우한 일대는 양쯔강(장강)과 한수(한강)가 만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흐르는 강물은 말이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수천 년 동안 일어났을까요? 얼마나 많은 민족이 명멸을 거듭하고,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전장(戰場)이 벌어졌다가 치워지고를 반복해 왔을까요? 도도한 물줄기는 그 모든 기억을 품고 흘렀습니다. 땅도 강을 닮아서인지 일체 말이 없습니다. 땅은 강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억을 저장합니다. 무너진 성곽 바위와 고색이 창연한 한적한 거리 어딘가에 분명히 품고 있을 그 기억 속에서, 우한은 말이 없습니다.   
본래 우한은 하나의 도시가 아닙니다. 무창(武昌), 한구(漢口), 한양(漢陽)의 세 지명이 홀연 합쳐져서 탄생한 메가시티(megacity)입니다. 천재지변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하나 된 것이 아닙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세워진 일종의 정치적 기념비 같은 상징이 우한입니다. 아직도 각각의 도시들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창(武昌)하면 청나라 왕조를 무너뜨린 1911년 신해혁명의 도화선이 된 곳으로 유명합니다. 1927년 무렵에는 국공합작과 국민당 파벌 투쟁의 진원지였습니다. 우리와 관련된 도시도 있습니다. 한구(한커우)입니다. 1932년 윤봉길의 의거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대장정을 떠나면서 잠시 정착했던 도시 중 하나가 한구입니다. 1938년 동래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 박차정 여사가 부군 김원봉과 함께 조선의용대를 창립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한양과 한수(한강)는 조선의 한양과 한강을 연상시키는데, 그 옛날 어디가 어디에 먼저 영향을 주었는지, 우한은 역시 말이 없습니다.
우한 일대는 중국 기독교 역사에서 있어서도 중요한 지역입니다. 공산화 이전 이 일대에서 허드슨 테일러의 내지선교회(CIM)가 심혈을 기울인 결과 조선의 평양과 같이 중국 복음의 중심지 역할을 감당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50년대 반기독교 정책으로 말미암아 삼자교회 몇 곳(救世堂, 荣光堂, 武昌堂, 青山堂)을 제외한 나머지 교회는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중국이 개혁개방노선을 취하면서 우한 일대는 다시 한 번 복음의 저력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선교사들이 다시 들어왔고 수십 개의 교회들이 생겨나면서 신도 수가 급증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2019년 우한은 종교정책 시범지로 지정되어 지하교회 폐쇄, 교회당 파괴, 성경 소각, 십자가 철거, 교회당 내 CCTV 설치와 국가 주석 사진 게양, 집회 봉쇄, 지도자 수감, 선교사 추방 등 일련의 조치들이 내려졌습니다. 불과 100년 동안 일어났던 복음의 밀물과 썰물을 오늘도 우한은 말없이 그저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산하(山河)는 백년도 못살 인생들이 일으키는 삶의 급류를 그저 말없이 굽어봅니다. 산하조차 그러하다면 산하의 주인은 어떠하겠습니까? 무한은 유한을 그저 바라볼 뿐이고, 영원은 순간을 그저 품을 뿐입니다. 이 땅에 친히 오신 산하의 주가 보여주신 모습이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 많은 사람이 떠나가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셨고(요 6:66), 빌라도의 법정에서 대제사장들이 각종 죄목을 들어 고발할 때도 아무 대답 없이 그저 침묵하셨고(막 15:5),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까지 형장의 모든 이들을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 계셨습니다(눅 23:34-35). 삼국시대의 전투들, 20세기의 순교, 부흥과 박해, 그리고 코로나(왕관) 바이러스, 우한이라는 땅을 무대로 벌어졌던 이 모든 역사 가운데 왕의 왕께서는 말이 없으시지만, 모든 일은 결국 주의 섭리와 경륜을 따라 흘러가게 되지 않겠습니까? 우한이 말이 없는 까닭입니다. 격류가 일고 있는 이 산하 또한 말이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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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우한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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