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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벌거벗은 임금님
2019/11/12 10: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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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만 하더라도 국정감사로 인한 온갖 문제가 뉴스를 통해 안방에 전달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작금에 시중에 회자되는 말처럼 ‘이게 정말 나라냐?,라는 자괴감에 헛기침만 나왔다. 야당 법사위원장이 여당의원을 향하여 욕하는 장면이나, 야당 원내대표가 국회연설을 하는데 도떼기시장처럼 여당의원들이 소리 지르고 야유하는 장면이나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하는데 돌아앉고 거부표현을 노골적으로 하는 것, 이런 것은 대한민국 여의도 1번지에서 항상 보아온 슬픈 이야기지만 대한민국 심장이라는 청와대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진 상황이 안방에 뉴스로 전달되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안보실장을 향해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에 관한 질문에 답을 한 안보실장의 내용은 대한민국의 국방의 실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상황에 정무수석의 돌발 상황은 기가 막혀 입을 다물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비서실장을 향한 질의응답이 진행되는 가운데 내용은 덮어두고라도 비서실장 뒤에 앉아 있는 정무수석이 웃음을 참지 못한 장면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정잡배들도 기본 예의는 마지막 선으로 지킨다는데 피감기관인 청와대 국감시간에 야당의원의 질문이 설사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을지라도 안보실장을 향해 질의하는 가운데 정무수석이 일어나 질의하는 야당원내대표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장면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슬픈 코미디 같았다. 더 나아가 경제수석을 향하여 경제성장율에 관한 질문 과정에서 초등학생이라도 조금만 국가재정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을 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자료 좀 보고 답하겠다는 기막힌 장면을 보면서 저러니 나라가 이 모양이 되어가는 것 아니냐는 더 슬픈 코미디 같은 장면이 소설이 아닌 이 나라 대한민국 청와대 국감장면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TV를 끄고 깊은 묵상을 하다가 어릴 적 누구나 한두 번쯤 읽어봤을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생각이 났다. 작금의 정치 지도자나 교회 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너나없이 아파하는 상황에 ‘벌거벗은 임금님’이 생각났던 것이다.
사기꾼 2명이 궁궐 앞에서 “우리는 바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을 짭니다.”라고 외치게 되었고 임금님은 귀가 솔깃하여 이런 옷 한번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 마음에 그 두 사람을 궁으로 불러들여 옷을 만들라고 명령을 했다. 사기꾼 두 사람은 베틀을 놓고 옷 짜는 시늉만 하다가 드디어 옷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임금 앞에서 옷을 입어보라는 것이다. 임금의 눈에는 옷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바보임금 소리 듣지 않으려고 옷을 입혀주는 시늉을 하는 상황에 ‘이렇게 좋은 옷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싱글벙글 했고, 신하들은 놀라움에 기절할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온갖 아양을 떨며 색도 무늬도 이렇게 좋을 수 없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의기양양한 임금님은 거리를 활보하고 싶어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옷에 대한 소문을 들은 백성들은 벌거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임금님을 보고도 모두가 하나같이 좋은 옷이라고 칭찬을 하는 가운데 한 어린아이가 외쳤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라는 소리에 그제야 백성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옷자락을 받쳐 든 시종들과 신하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행진을 계속했다. 이것이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다.  
다시 ‘벌거벗은 임금님’을 읽어보니 지금 우리 현실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이 동화가 1837년에 발표되었으니 182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에서 이 이야기가 재현되는 상황을 보면서 아픔도 슬픔도 아닌 절망과 좌절감에 한숨만 나왔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라며 본 대로 말한 사람은 왕따가 되는 세상이다.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서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별별 부끄러운 언행을 통해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신하들이 득실거린다. 눈감고 귀 막고 사는 것이 편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을 방관하는 백성들이 되어간다. 그 사이 나라는 서서히 좀먹듯 허물어지고 있다. 붉은 신호등이 켜졌는데도 무시하고 내달리는 반칙이 비일비재하다. 뭐가 뭔지 몰라서 그런 것 아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다’라고 외치는 정직과 진실, 공정과 정의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슨 일을 기획하고 시행하고 결정된 후에는 그 결과에 대하여 ‘누구 때문에’가 아닌 ‘무엇 때문에’를 거울처럼 세워놓고 나의 삶을 정리한다. 누구 때문에는 언제나 원인행위가 ‘너에게’ 있지만 무엇 때문에는 항상 원인행위가 ‘나에게’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리할 때 잘되어도 교만할 일이 없고 기막힌 아픈 일을 당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의 원인행위를 찾아 반성하고 새로운 기획과 시행을 한다.
선량(選良)이든 삯 값도 못하는 의원이든 의회로 보낸 원인 행위는 국민인 나에게 있다. 세종대왕 같던 연산군 같던 청와대로 보낸 원인행위는 국민에게 있다. 이순신 같던 이완용 같던 임명 원인행위는 임금에게 있다. 그러기에 내년 4.15 총선은 어느 때보다 소중한 주권행사가 되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책무를 느낀다.
작금에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좋은 결과는 ‘내 탓’이며 좋지 않은 결과는 ‘네 탓’이 되어버린 것은 ‘무엇 때문에’가 아닌 ‘누구 때문’로 귀결되다 보니 여기저기 살맛을 잃어버린 아우성이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금의 우리 모두는 벌거벗은 임금님 동화책의 주인공들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천주교의 아름다운 캠페인이었던 ‘내 탓이오’가 새삼 생각되고 그립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실한 천주교인이라 하는데..... 그 캠페인은 유행가처럼 흘러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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