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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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이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순풍에 돛 달고 노래할 때도 있지만
비바람과 풍랑에 배가 흔들릴 때도 있고, 때로는 암초를 만나 배가 파선되는 것과 같은 때도 있다. 그것이 인생여정이다. 정치도 기업도 신앙도 그것은 동일하다. 목회라고 그리 다를 것도 없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좋은 일만 있겠는가? 아니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도 있다. 그럴 때 어찌하겠는가? 우리는 이미 요셉, 다윗, 바울을 통하여 그 대답을 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으로 속상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이르게 될 때는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흐르는 물을 통해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며 또 나아가는 지혜를 얻기도 한다. 물은 흐르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그것을 돌아서 간다. 그 어떤 원망도, 불평도 없다. 노자의 도덕경에 上善若水 水善 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상선약수 수선 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라는 말이 있다. ‘최상의 선이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의 선함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고 있지만 다투지 아니하며,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위치에 처신한다.’는 뜻이다.
“35년 동안 예수 믿으면서 단 한 번도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입에 원망은 없습니다. 불평도 없습니다. 제 입으로 남의 말을 나쁘게 한 기억은 없습니다. 남을 비판한 말이 내 입에는 없었습니다.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켰습니다.” 은퇴를 하고 난 후 언론에 보도된 <서임중 목사가 35년 목회 중 누구와도 충돌이 없었던 비결>의 한 내용이다. 나는 그렇게 현장 목회를 마무리 했다.
그렇게 목회 현장에서는 평행감축(平幸感祝)의 날들을 노래했는데 은퇴를 하고 후임목사님에게 바톤을 넘겨 준 이후에 겪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 막히는 것들이다. 내 걸음을 가로막는 것과 걸고넘어짐, 그리고 짖이겨짐으로 인해 너덜너덜 헤어진 걸레 같은 마음자리, 이러한 것들로 극심한 고난의 날들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인간적인 배신과 억울함, 그로인한 분노와 좌절감으로 어찌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하는 당혹스러움에 잠깐 방향감각을 잃고 휘청거리다가 성역 30주년 칼럼집의 제목을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이라고 했던 나의 목회 철학을 상기하고 다시 흐르는 물처럼 여전히 하루를 열고 닫는다.
지극히 보편적인 진리이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흐르다가 막히면 멈춘다. 그러나 그 멈춤은 기실 멈춤이 아니라 막힘을 극복하기 위한 채워짐이다. 그 조용한 채워짐이 다하면 일시에 막힌 것을 넘어서 무서운 속도로 낮은 곳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때로는 흐르다가 걸림돌이 있으면 돌아가는, 그러면서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끝없이 물은 흐른다. 그리고 더 내려갈 데가 없으면 거기서 조용히 머문다. 물은 결코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다. 당연한 말 같으나 깊은 삶의 이치와 진리가 숨어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나의 목회 기본 틀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이었다.
너와 내가 더불어 살아가노라면 말 없는 대화도 가능하다. 이것이 무언의 대화이다. 심심상인(心心相印)이요 불립문자(不立文字)요 염화미소(拈華微笑)이며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이런 깊은 묵언의 대화까지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삶에는 노여움과 분개함, 고루한 따짐 같은 것이 있을수가 없다. 그것이 이해와 관용과 용서와 사랑이라는 행복메뉴. 이것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갈 때 생겨나는 지고한 삶의 가치이다. 물을 넉넉히 흠뻑 먹지 못한 콩나물에 잔발이 돋아나듯, 사랑이 메말라 목마른 사람에게는 언제나 상념의 잔뿌리가 돋는다. 의심의 잔뿌리, 불평의 잔뿌리, 원망의 잔뿌리, 회의의 잔뿌리... 그런 것들이 빽빽하게 달리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처럼 복잡한 의식과 삶의 자리에 물을 주어 감사가 노래 되게 하는, 아름다운 인생의 정원을 가꾸는 것이다. 이것 또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겸손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모두의 만류를 뒤로하고 나는 65세에 조기은퇴를 했다. 그리고 부르심의 은총을 감사하면서 뜻한바 대로 농어촌과 산골교회, 그리고 개척교회들의 부흥사경회를 인도하면서 벌써 4년이 지나고 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아픔과 고난의 삭풍을 맞으면서도 흐르는 물처럼 여기까지 왔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은 앞을 가로막는 바위가 있으면 돌아가고, 흐르지 못하도록 댐을 쌓으면 멈춰 서서 채워지기까지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다하면 흘러넘쳐 멈췄던 시간보다 더 빠르게 맹렬한 속력으로 흐른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이라고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구름도 같이 가고 낙엽도 같이 동행한다. 때로는 온갖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찌꺼기들도 속도를 맞추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해준다. 그것은 흐르는 물의 기쁨이며 행복이다. 은퇴 후 나는 그것을 경험한다. 그렇게 낮은 곳으로 흐름이 계속되다보면 힘들고 지치고 아프고 외롭다. 그러나 여전히 동행해 주시는 성령님과 함께 나는 오늘도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하루를 연다.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갈 때 맺히는 열매라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다.
고 방지일 목사님이 101세의 연세에 포항중앙교회에 오셔서 주일 설교를 하셨다. 설교 후 목양실에서 기도해 주시며 교훈하신 한 마디를 나는 오늘도 주님으로 옷 입으며 함께 옷 입듯한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번갈아 차를 운전하면서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복음순례길, 어제의 그 여정을 마치고, 오늘 또 다음 마을을 향해 간다.
목사는 녹슬어 사용 못하면 안 돼! 닳아서 사용 못해야지. 서목사는 그렇게 사용되는 것이 축복이야.” 운전을 하면서도 그 말씀이 묵상되면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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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 칼럼]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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