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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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 민족이 바벨론에서 지낼 때 하나님은 소식이 없었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메시아를 예언하였지만 메시아는 오시지를 않았다. 답답했다. 못 견딜 세월이었다. 이러할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하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렇다.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소망 갖고 있는 자에게, 일을 하려고 준비하는 자에게 주신다. 그러나 기다리지 않고 포기하고 소망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은 떠나신다. 2020년에도 하나님은 우리 와 함께 하실 것이다.
‘지그 지글라’(Zig Ziglar)의 보고서가 있다. 벼룩이 한 마리를 유리 항아리에 넣고 유리 뚜껑을 덮고 지켜보았다. 하루 종일 뛰면서 유리 뚜껑에 머리를 부딪치던 벼룩이는 지쳐 뛰기를 중단했다. 계속 뛰어봤자 머리만 부딪치고 소용없다는 사고의 전환이 되었다. 그 때 유리 뚜껑을 열었을 때 벼룩이가 뛰어 나갔을까? 그렇다고 대답을 한사람보다는 보편적으로 벼룩은 그대로 있다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뛰면 머리만 부딪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의 사고는 이미 부정적으로 전이(轉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뛰기만 하면 얼마든지 뛰어나갈 수 있는데 할 수 없다는 부정적 사고가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폴 마이어’(Paul J. Meyer) 보고서가 있다. 큰 유리 어항에 중간에 유리벽을 만들고 한 쪽에 메기를 한쪽에 송사리를 넣었다. 메기는 송사리를 잡아먹으려고 쏜살같이 가다가 유리벽에 주둥이를 부딪친다. 그렇게 종일 반복하던 메기는 유리벽 앞에서 휙 돌아버리기 시작했다. 송사리 잡으려다가 주둥이만 다치는 반복 때문에 메기는 송사리를 잡아먹을 수 없는 것으로 사고의 전환이 되었다. 역시 이때 유리벽을 뽑아내면 메기가 송사리를 잡아먹을까? 대부분 역시 잡아먹지 않는다고 대답을 한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잡아먹을 수 있지만 메기를 통해 벌써 사고는 부정적으로 전이(轉移)되어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자와 실패자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이다. 어렵다고 생각하여 중단한 사람은 실패자가 되었고 어려워도 다시 한 번 내일을 기대하고 시도한 사람은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중단의 결과는 실패요 인내의 종착역은 성공이다.
우리는 영화 배우 ‘폴 뉴먼’(Paul Newman)을 안다. 그가 한 말이 있다. “나는 추적의 은사를 받았다.” 이 말을 풀이하면 이것저것 쫓아다니는 은사를 받았다는 말인데 우리는 폴 뉴먼의 얼굴이나 연기를 볼 때 재주 있는 사람,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아무 재주도 없이 불우한 환경에서 구질구질한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이었다. 그 자신의 말대로 그가 받은 은사는 추적의 은사, 곧 열심히 쫓아다니고 부지런히 탐구하는 노력의 은사였다. 이것이 소망의 인내다. 소망을 가지고 끈질기게 꾸준히 참고 노력하는 자세는 노력 없이 공짜로 떨어지는 혜택보다 훨씬 값진 하나님의 은사다.
헬렌 켈러, 에이브라함 링컨, 스티븐 호킹, 스웨덴의 레나 마리아, 목사가 된 닉 부이치치 같은 분들의 삶의 여정은 어둠에서 빛으로, 좌절에서 극복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메신저들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자기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약함을 딛고 일어서서 꿈을 향해 달음질하여 다음세대에 희망을 전한 위대한 분들이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한 시각장애 마라토너 송경태씨, 1984년 전기 안전점검을 하다가 2만9000 볼트 전기에 감전된 후 의수에 볼펜을 끼우고 글씨를 연습하여 화가가 된 석창우 화백,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산악인 김홍빈씨, 휠체어 육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홍석만씨, 뇌성마비 발가락 시인 이홍렬씨, 세계인의 희망메신저 송명희씨, 어디 이들 뿐이겠는가? 모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거울이다.
미국의 가수이며 라디오 방송인으로 크게 성공한 에디 켄터 (Eddie Cantor) 씨는 성공을 향하여 정신없이 달리는 전형적인 미국 청년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시골에 사는 어머니로부터 한 문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편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후 에디 켄터는 자기의 성공은 자신이 노력보다는 어머니의 충고 때문이었다고 술회하였다. 그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에디야 너무 빨리 달리지 마라. 그렇게 하면 좋은 경치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단다” 이때부터 에디는 열심히 달리다가도 다음과 같은 4개의 조항을 수첩에 적어 놓고 스스로의 발걸음을 조절하였다고 한다. ①나는 맹목적인 야심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 달리고 있는가? ②나는 나의 경력을 쌓기 위해 달리고 있는가? 나의 가족의 행복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③나는 물질적인 성공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내 인생의 참다운 보물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④나는 나 자신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남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2020년의 새해를 시작한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그리고 시대의 마지막 보루인 종교와 언론에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SNS와 대부분의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시작된 한해지만 우리에게는 단 1분 1초도 절망하지 않고 일어설 메시지가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약속은 신뢰하고 지키는 자의 몫이다.
2020년은 나에게, 우리에게 평행감축(平幸感祝)의 좋은 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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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평행감축(平幸感祝)의 한해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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