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이현희목사 copy.jpg
 
느헤미야는 에스라와 더불어 재건 이스라엘의 유대교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자입니다. 그의 이름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위로하신다'라는 뜻으로서, 포로귀환 시대에 예루살렘을 재건하려는 당시의 분위기를 반영합니다.
느헤미야는 바사 제국 아닥사스다 왕의 술관원장이었습니다. B. C. 464-424기간 동안 바사 제국의 왕위에 있던 아닥사스다 1세의 겨울 궁전에서 왕의 술잔을 드는 지위에 올랐던 것입니다. 왕의 술 관원장이라는 직책은 본래 내시가 맡았던 것으로서 명예스럽지 못한 관직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이 직책이 갖는 불리한 점보다 유리한 점을 십분 활용하여 왕의 측근인물로 신임을 얻고, 권력자에 가까운 신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왕이 먹을 음식이나 술을 먼저 시음함으로써 왕이 입을 해를 사전에 방지하는 직책이었습니다. 정적이나 반란 음모자에 의해 왕이 살해되는 일이 다반사였던 고대 군주 사회에서 술 관원장의 이 같은 기능은 매우 중요하였으며, 자연히 왕과 가까운 친분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왕비와 더불어 왕에게 가장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관리로서 술 관원 장을 들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으로 보면 비서와 같은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느헤미야는 왕의 깊은 신임을 얻고 있었으며, 재건 이스라엘에의 열망을 왕께 고하여 유다 지역 총독으로 임명받을 정도였습니다. B. C. 445년경에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궁에서 패망한 조국 예루살렘에 대한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도성이 훼파되었고 남은 유대인들이 능욕과 갖은 시련을 당한다는 소식은 그로 하여금 금식케 하였고, 마침내 왕께 간청하여 예루살렘 귀향길에 오르도록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지역의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귀향 목적은 도성 재건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느헤미야의 재건 사업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그의 파견으로 위협을 느낀 예루살렘 인근의 지도자들, 특히 사마리아총독 산발랏과 건너편 암몬의 통치자 도비야의 방해 책동 등은 재건 사업의 큰 장애였습니다. 그럼에도 굴하지 않은 지도자 느헤미야는 자신의 뛰어난 토목 지식과 인화력을 발휘하여 조직적이고 단계적으로 재건 사업을 이루어 나가게 했습니다. 그의 굽힐 줄 모르는 의지와 조직 관리의 탁월한 기술은 마침내 공사 52일 만에 성대한 봉헌식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래, 느헤미야는 정치적 지도자이지 종교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종교 지도자 에스라와 더불어 이스라엘 사회를 바로잡고 종교 조직을 새롭게 개편한 사항은 결과적으로 그의 종교 개혁적 이미지를 부각시켰습니다. 예루살렘에 귀향한 느헤미야는 성전의 도비야를 몰아내고 성전 봉사자들을 위한 십일조 제도를 고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레위 인들의 직무를 부활시켜 세속 직업을 갖지 못하도록 함과 아울러 이방인과의 잡혼 금지, 안식일의 거룩한 준수 등 모세 이래로 흐트러져 있던 율법 기강을 그 정신에서부터 바로잡음으로써 근본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결단과 리더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기에 자신을 드리는 용기 있는 행동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성경인물탐구] 종교지도자 느헤미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