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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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시선으로 본 신학과 인문학의 대화
이 책은 작년 932쪽의 대작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이야기’란 부제가 붙은 《신》의 출간을 계기로 저자가 신학과 인문학의 관계를 강연한 내용을 보완하여 펴낸 110쪽 분량의 단행본이다. 신학이라 따분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려도 좋다. 고대의 플라톤부터 최근의 유발 하라리까지 고금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소양과 얇은 두께에 손에 꼭 쥐어지는 소책자에는 22장의 친절한 도표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질적으로 보이는 신학과 인문학이 서로에게 영향을 줘 발전해 왔으며, 따뜻한 시선으로 ‘온전한 신학’을 위하여 인문학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키치kitsch 그 가벼움이 일상이 된 시대, 교양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저자 김용규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후설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몰두했고,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위르겐 몰트만과 에버하르트 융엘의 강의를 들었다. 전업작가로 최근에 출간된 《신》을 비롯하여 《데칼로그》, 《생각의 시대》, 《설득의 논리학》,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영화관 옆 철학카페》 등 다수가 있다.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 있는 성찰에 생동감 있는 문체가 어우러진 다양한 대중철학서와 인문 교양서를 집필하여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신》 김용규 지음 / IVP / 2018
《묻고 답하다》 강영안, 양희송 / 홍성사 / 2012
《서양철학과 신학의 역사》 존 프레일 / 생명의 말씀사 / 2018

20190611_110348.jpg▲ 작은 이야기 없는 큰 이야기는 폭력이다! 그러나 큰 이야기 없는 작은 이야기 역시 폭력이다!(본문 93P 중에서)
 

▌좌담: 김길구 전 부산YMCA 사무총장, 김현호 기쁨의집 대표, 김형기 팔복교회 목사

신학은 통합과 융합의 산물
“기독교신학은 지난 2천년동안 성서의 계시와 시대의 인문학, 신앙과 이성,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즉 서로 이질적이고 때로 상반되는 둘이 만나 빚어낸 이름답고 거대한 정신적 구조물이다.”

믿음은 지성을 배제 안 해
김길구 순서를 바꿔 이번호에는 <신>의 저자 김용규의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란 책에 대하여 얘기해 보죠. 저번 시리즈에서 다뤘던 <신>이 932쪽의 방대한 책이라면 이 책은 100쪽이 조금 넘는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양도 적고 내용도 강의를 바탕으로 쓴 책이라 그런지 평소 신학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쉽게 접할 수 있어 기독교인문학 교재로 좋을 것 같아요.
김형기 최근에 일기 시작한 기독교인문학의 지침서로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겠네요. 4차 산업혁명을 겪고 있는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입니다.
김길구 들어가기에 앞서 교계의 반지성적 정서가 적지 않은 풍토에서 우리의 신앙에서 과연 지성은 필요한가? 하는 문제부터 다루어 보죠.
김형기 성경은 지성을 강조하지도 않고 지식을 통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보지도 않아요. 오히려 지식보다는 체험이나 실천을 우선하지요. 히브리적 전통에서는 하나님을 ‘안다’라고 할 때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체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성이 무시되지도 않아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는데 ‘회개’의 뜻은 지성을 완전히 바꾸라는 뜻이에요. 지성의 변화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갈수 없다는 것이죠.
김현호 사도 바울도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라고 했을 때 ‘마음’은 앎의 능력 즉 지성을 바꿔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라는 의미가 있다고 해요.

인문학의 도움으로 신학도 발전
김길구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면 믿음 안에는 어느 정도 지성이 전제 된다는 의미네요. 그럼 한걸음 더 들어가 보죠. 오늘의 주제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지금 왜 인문학입니까?
김현호 우리사회에 한동안 붐을 이뤘던 인문학 열풍의 영향이 아닐까요? 미미하기는 하지만 저희 서점에도 독서모임 등을 통한 기독교인문학 관련 책들을 찾는 이들이 있고, 평신도 중에도 교양으로서의 신학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김형기 인본주의와 인문학은 구분돼야겠지요. 인문학은 인간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라면 인간 구원을 목표로 하는 우리가 소위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을 도구로 초월적인 신앙을 시대의 사유양식으로 표현하여 대중과 소통하면서 복음사역에 도움을 주려는 의미도 있겠죠.
김길구 저자도 신학이 신 중심사회였던 중세까지 제1학문으로서 지위를 유지하다가 근대에 이르러 인간에게 자리를 내줬는데, 모두가 신이 되어버린 지금 분열과 투쟁과 파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을 알아야 하며, 나아가 문명과 인간을 구원하고 치유하려면 인문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김현호 신학이 하나님 중심적 사유체계라면 인문학은 인간 중심적 사고체계라 대립과 갈등이 늘 있어 왔지만 그럼에도 인문학은 부단히 기독교신학에 새로운 피를 제공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김형기 소책자라 너무 단순화 한 위험이 있지만, 고대신학은 플라톤, 중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철학, 근세에는 개혁신학이 인문주의라는 문예사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근대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현재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치듯이 시대를 불문하고 인문학이 신학에 크든 작든,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영향을 미쳐왔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시대, 그 유동하는 공포
김길구 니체는 1882년 그의 책 《즐거운 학문》에서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라고 외쳤는데 그가 죽인 신은 어떤 신일까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신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누려왔던 신본주의의 몰락을 얘기 합니다. 신의 자리에 이성, 합리성, 객관성, 과학, 계몽, 자유, 평등, 박애, 진보, 혁명 등등 인본주의 가치들이 대신하게 되지요. 니체의 ‘신이 죽었다’는  말은 인간이 신이 되었다는 놀라운 선언이죠. 그 자리를 인간의 이성을 뜻하는 이신교(理神敎), ‘집단적 인류’가 하나님인 인류교. 급기야 인간이 신이 되는 호모 데우스의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그렇다고 인류는 행복할까요?
김현호 그렇지 않죠. 1986년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문명의 자기파괴적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명은 발달하면 할수록 파괴될 위험이 증가하는데 이 문명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 곧 파멸로 이어진다며 우리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했어요. 핵무기, 생화학무기,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사회를 말합니다.
김형기 여기에 2017년에 죽은 유대인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2008년 미국의 서브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보듯 세계화가 낳은 인류의 단일화는 “근본적으로 달아날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뜻이‘라며 신과의 유대를 단절하고 삶을 스스로 통제토록한 근대적 이성이 만들어낸 위험과 공포를 ’유동하는 공포‘라고 했어요.
김현호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이런 불확실의 시대에 바로 이때다!고 나온 종교가 ‘데이터교’입니다.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명명했는데 실리콘밸리가 만들어 이제 막 태어났어요. 유명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예에서 보듯 건강한 유방을 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이유로 수술한 컴퓨터 알고리즘이 곧 ‘신’이고 데이터가 ‘말씀’인 종교입니다.

온전한 가치를 향하여
김길구 요즘은 거대 담론이 사라지고 있어요. 개인의 심리와 성적취향, 다양한 문화와 요리, 놀이, 주거, 관광, 레저 같은 작은 이야기에만 몰두해요. 신문, 방송, 인터넷도 온통 이런 얘기들이에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 인생은 단 한번 뿐 이라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小確幸)과 같은 것인데 그 밑바닥에는 소비를 통해 생존하려는 후기자본주의의 교활한 상술이 도사리고 있어요.
김현호 예로 대형서점의 인문학 코너에는 신, 진리, 사랑, 이성, 계몽, 혁명 같은 거대담론이 거의 사라졌어요. 그 자리를 차츰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추세입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성, 보편성, 객관성, 역사성 등을 내세워 자행된 그동안의 폭력성을 차단할 수 있으니까요.
김형기 그래서 포스트모던니즘을 ‘큰 이야기에 대한 불신’이라고 리오타르는 정의했는데, 저자는 생명, 진리, 선함, 아름다움, 정의, 위대함 같은 전 근대적, 신본주의가치뿐 아니라 이성, 계몽, 혁명, 과학, 진보, 해방과 같은 근대적, 인본주의적 가치와 상대성, 다양성, 개별성, 현재성 등 탈근대적, 개인적 가치들까지 되살려 냄으로써 ‘온전한 가치’가 되게 하자고 합니다.
김길구 저자는 기독교는 거대한 용광로라며, 기독교가 처음부터 물과 기름 같은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사상과 사조들의 숱한 도전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아 마침내 자기 것으로 만듦으로써 더욱 풍성하고 강해진 것처럼 ‘경직된 교리를 뛰어 넘는 사고’의 유연성과 올곧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번호는 토론보다는 책을 요약하여 소개해드렸습니다. 다음호엔 저번에 예고해 드린 김형국목사의 《하나님나라의 도전》을 읽고 얘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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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온전한 가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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