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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임중칼럼] 우리도 갈릴리로 가야한다
2019/04/19 11:12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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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관광’이라는 것을 나는 많이 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해외 집회 초청이 많아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어 그야말로 ‘주님의 은혜’로 많은 곳을 본 것도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살아있는 여행을 꼽으라면 당연 성지순례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 물고기를 먹은 후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건너갔던 시간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감동이었다. 베드로 기념교회 옆에는 동상이 있다. “Do You Love Me?”라고 하시며 베드로를 향해 손을 내미시는 주님과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든 베드로의 동상! 그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평생 주님을 사랑하리라’ 결심을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포항중앙교회 예배당 마당 입구에도 기념비가 하나 세워져있다. 그 돌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글귀를 새긴 이유도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갈릴리로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부쩍 간절해졌다. 비단 지리적인 이유만으로 그런 것이 아니다. 성경이 교훈하는 깊은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14:28절에 성만찬 후 주님이 감람산으로 오르셔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리고 마태복음 28장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보고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주님의 몸에 바를 향품을 준비했다가 안식 후 첫 날, 곧 오늘날 주일 새벽에 일찍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사건이 있다. 그 때 흰 옷 입은 천사가 달려온 여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고 했다. 왜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큰 흐름이 있다. 하나는 ‘지리적인 갈릴리’이며 다른 하나는 ‘복음적인 갈릴리’이다.
지리적인 갈릴리 호수는 맑고 아름답다. 생명이 있는 호수다. 그곳에서 만나자는 주님의 메시지는 맑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부활한 심령으로 만나자는 메시지가 있다(마 5:8). 사해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못하지만 갈릴리 호수에서는 많은 물고기가 산다. 주님이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것은 거듭난 사람, 곧 생명을 주는 사람으로서 만나자는 것이다(요14:6). 헬몬산에서 흘러내리는 지류들이 모여 큰 호를 이룬 것이 바로 이 갈릴리 호수다. 이곳은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호수다. 이 물은 요단강을 따라 사해(死海)로 흘러들어간다. 갈릴리 호수는 계속 물을 받아 내보내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어 주고받는 원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주님이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것은 바로 이런 메시지가 담겨있다. 움켜잡는 것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것을 다시 나누어줌으로써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거듭난 사람으로서 만나자는 것이다.
복음적인 측면의 갈릴리는 성경말씀을 이루는 거룩한 뜻이 있고(사 9:1) 복음의 삶을 통한 구원사역의 메시지가 있다. 그곳에서 주님은 제자들을 양육하셨고 복음을 전하셨으며 병자들을 고치셨다. 산상 설교도 갈릴리에서 하셨고 그물이 찢어지도록 베드로에게 고기를 잡게 해 주신 곳도 갈릴리였다. 풍랑 이는 물결 위를 걸으신 곳도 갈릴리였으며 5병 2어의 기적을 행하신 곳도 갈릴리였다. 갈릴리는 곧 주님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이며 복음전파의 무대였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이 아니다. 부활신앙으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가자는 뜻이다.
 
우리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뜻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갈릴리라면 단순히 지리적인 갈릴리에서의 만남이 아님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예배를 드리며 병든 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곳이 바로 갈릴리라는 말씀이다. 이를 위해 주님이 죽으셨고 이를 위해 주님이 부활하셨다. 만일 누구든지 부활하신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으시고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깊은 의미를 깨달으면 거기서 진정한 복음의 삶이 시작될 것이다.
예루살렘! 주님에게 있어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논쟁과 대결의 도성이 예루살렘이다. 수치와 고난의 상징인 도시,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신이 있었고, 치욕적인 채찍질과 수치로 얼룩진 십자가의 죽음이 있는 곳,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사랑과 미움, 개혁과 전통, 생과 사가 공존하며 대결했던 곳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예루살렘서 만나자.”고 하셨다면, 그리고 실제로 갈릴리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셨다면 천지가 개벽하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빌라도는 어떤 표정이며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어떠했을까? 모진 채찍질을 하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후려치면서 쾌감을 느꼈을 군병들은? 살인자 바라바는 놓아주고 의로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던 군중들은 또 어떻게 예수님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로 가서 만나자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세상적인 승리나 복수나 영광이 아니다. 부활의 복음은 철저하게 구원이다. 이것이 갈릴리에서 만나자는 진정한 의미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며 십자가에서 고초당하시고 죽으신 것과 부활하신 것도 이것 때문이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승리나 복수가 아닌 일치와 연합을 통한 구원의 역사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갈릴리는 어디인가? 지리적인 갈릴리와 복음적인 갈릴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곳으로 갈 수 있다. 아름답고 맑은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일하는 곳, 사랑을 주고 생명을 주는 삶을 엮는 곳, 나를 희생함으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곳, 이것이 지리적인 의미의 갈릴리가 주는 교훈이다.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복음적인 삶을 통해 구원 사역을 이루는 삶, 이것이 복음적인 갈릴리가 주는 교훈이다. 부활의 아침에, 부활 신앙으로, 우리 모두는 기필코 갈릴리로 가야 한다 성도(聖徒)이기에.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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