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03.22 13:17 |
한 집안 3명의 독립유공자 배출 앞둔 박의영 목사
2019/03/07 15:22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구글+로 기사전송 C로그로 기사전송
 
박의영 목사.jpg
 
 
Q. 한 집안에 3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올 수 있어 관심이 큽니다. 부산에는 처음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A. 네. 제 선친 대의 일입니다. 5남매 중 박문희 선생, 박문호 선생, 박차정 의사입니다. 부산 동래에서 태어난 5남매 중 박차정 의사가 지난 1995년 먼저 독립유공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부친인 박문희 선생은 지난해 11월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았고, 삼촌인 박문호 선생은 후손이 없어 제가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보훈처의 공적조서 심사를 거쳐 독립유공자 선정 여부가 결정됩니다. 발표는 보통 3・1절, 광복절, 순국선열의날(11월 17일)을 앞두고 하는데, 아마 올해 순국선열의날에 결정이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Q. 삼남매 중 막내인 박차정 의사가 가장 먼저 독립유공자가 되셨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박차정 의사는 의열단장 김원봉의 아내로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에 소속되어 활동했습니다. 중국 베이징을 오가며 항일 투쟁을 하다가 일본군과 교전 중 다쳐 그 후유증으로 별세하셨습니다.

Q. 부친이신 박문희 선생의 독립유공자 선정이 늦어지셨다고 들었습니다.
A. 박문희 선생은 1925년 의열단 동래청년연맹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1929년 12월 신간회 상무위원으로 항일격문을 배포했습니다. 이후 1932년 8월 김원봉 선생으로부터 남경군관학교 훈련생 모집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국내로 들어와 경상도와 경기도 일원에서 훈련생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과거에 몇 차례 공적 조서를 제출했지만, 사회주의 계열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제외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공산주의가 아닌 사회 계몽운동 계열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보훈처가 사회주의 활동 경력 인사도 북한 정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 방침을 바꾸면서 독립유공자가 되었습니다.

Q. 심사 중인 박문호 선생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박문호 선생은 중국에서 망명 투쟁을 펼쳤습니다. 의열단 간부로 활동하던 중 일제에 검거되어 옥사하는 등 항일운동에 목숨을 바쳤습니다. 박문호 선생 역시 김원봉 선생과 항일투쟁을 해 사회주의 계열과의 연관성 추측으로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박문희 선생의 공훈이 인정을 받게 되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박문호 선생은 직계 후손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이어 삼촌의 선대 업적이 묻히는 안타까운 일이 없어야겠다는 생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부산보훈청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올해 수훈신청을 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Q. 독립운동가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어릴 적 기억이 좋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느라 뿔뿔이 흩어져 지내야 했고, 옥살이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신 어머니께서는 힘들어하셨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시던 아버지께서는 사회 계몽운동에 참여했다며 오랜 세월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사실을 밝히고 재조명할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서울로 가셨던 아버지께서는 6.25전쟁으로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6.25전쟁 중 행방불명 된 이는 독립유공자가 될 수 없다는 방침으로 선정이 거부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도 지키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어리석어 보였고,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저희 가족사를 알게 된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선대의 업적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 드러나기도 싫었고, 관심을 받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나서주시고 도와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Q. 독립유공자 가문이기도 하지만 믿음의 가문이라고 들었습니다.
A. 믿음을 이어온 지 제가 3대째입니다. 제 할머니께서는 기장 교단의 교회를 나오셨습니다. 제 부친은 동래복음전도관(현 온천중앙성결교회 전신)에 다녀 성결 교회 출신이십니다. 한상동 목사님의 사모인 김차숙 여사님이 제 아버님과 고종사촌간입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던 선대들의 삶에는 신앙이 바탕이 되어 있었습니다. 국가관, 철학관, 신앙관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나라가 바로서야 가정이 서고, 가정이 바로서야 개인이 설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나라와 떼려야 뗄 수 없음을 보여주셨기에 그 업적을 잘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 오혜진 ohj1113@hanmail.net ]
오혜진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kcnp1@hanmail.net
한국기독신문(www.kcnp.com) - copyright ⓒ 한국기독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많이본기사
  • 화제의 뉴스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한국기독신문 (http://www.kcnp.com) | 창간일 : 1995년 4월 11일 | 발행인 : 김해옥 | 편집인 : 신이건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신상준 국장 
    602-053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229번길 47-1
    사업자등록번호 : 758-96-00228 | 정기간행물등록 : 부산, 아00259
    대표전화 : 051-245-1235 | 팩스 : 051-245-2763 | kcnp1@hanmail.net
    Copyright 2015. kcnp.com All right reserved.
    한국기독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