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N)가정호 목사.JPG
 
천재적인 예술가들 중 어떤 이들이 이데아를 작품으로 실현해내기 위해 빠져드는 것이 마약, 섹스, 술, 도박이었다. 마약, 섹스, 도박을 하고 나면 더 탁월한 예술적 심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욕망이 피워낸 꽃을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이었다. 대부분의 천재 예술가들은 ‘질료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 지나고 보면 그 ‘질료의 저항’이 그의 욕망을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가 되었던 점이 오히려 돋보인다.
뉴욕, 푸동, 명동, 해운대, 남포동... 이런 곳들은 인간의 욕망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꽃핀 곳들이다. 계시록에는 두 여인이 나온다. 한 여인은 정결을 추구하는 여인으로, 한 여인은 화려함과 욕망을 꽃피워낸 여인으로 등장한다. 도시의 이야기들이 즐비한 공간이 계시록이다. 이미 인류가 맞이하게 될 종말의 모습이 어떻게 끝장나는지 잘 보여주는 말씀이 요한의 계시록이다.
국가와 시민들이 정치행위와 경제 확장에 있어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결코 그 이상을 이룰 수는 없다. 이미 고대 바벨론과 로마제국이 좋은 샘플이 되었었다. 요한이 쓴 계시록은 이 내용을 잘 보여준다. 사람의 영혼까지 팔고 사는 맘몬숭배는 세속국가의 필연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게 해야만 했던 것은 아니다.
교회된 목사나 성도들이 국가와 정부, 지도자들에게 이 짓을 잘하지 못한다고 서슴없이 몰아붙이는 모습을 본다. 어떤 정부가 들어섰을 때든 시민들은 그 정부를 향하여 욕찌거리 해댄다. 사실 그 욕찌거리의 핵심은 ‘맘몬; 돈’이다. 그 기저에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제 부모가 돈을 벌어주지 못한다고 패대기치는 패륜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말과 글, 토론에서 국가나 정치지도자들을 무한경쟁에 내모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역지사지 해 보면 좋을 것이다. 계시록은 예루살렘과 바벨론이 극단의 맘몬숭배에 빠져들어 심판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사람을 종으로 만들고, 그 종을 사고팔 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사고팔며 거래하는 인신매매 행위까지 요구한다. (계18:13)
이는 원형적 아름다움, 본래 존재했던 이데아에 대한 능동적이고도 적극적인 파괴행위이다. 자발적 가난까지는 아니라도 자발적 절제는 절실하다. 국가도, 교회도, 가정도 모두 자발적 절제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먹고, 어느 정도 쓰고, 어느 정도껏 소비해야 한다. 무한 욕망 무한 편리추구는 공멸이다. 먹방이 꽃핀 방송을 보노라면 국가적 종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미 미세 플라스틱이 어류나 동물에서 인체에 쌓이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도 종말시계가 12시 3분전이다. 소득이 무한대가 되어 년 수십, 수백억씩 벌어들이는 이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짓이 무엇인지 살펴서 알아야 한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이 늘어간다는 말은 극단의 양극화가 결말을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이 알바를 하는 것은 학교생활에 도움을 얻기 위함인데, 졸업을 하고도 알바를 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은 비극 그 자체라는 말이다. 정부의 잘못이거나 정치의 잘못이 아니라 (이건 어떤 정부도 이겨낼 수 없다.) 인간의 탐욕에 잠금장치가 없도록 풀어놓은 것, 맘몬종교가 가져다준 비극이라는 말이다. 시장자유화라는 말이 아주 멋져 보이지만, 맘몬은 자신의 자유를 위해 시민을 학살한다. 이는 계시록 일곱천사 일곱 금대접 환상에 잘 나타난다.
‘자살 권하는 사회, 죽음 권하는 사회’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본다. ‘레밍_딜레마’에 빠져 버린 세속사회에 교회도, 성도들도 편승하여 허우적거린다. 성도들의 헌금을 이자로 거반 쏟아 부으면서도 과도하게 큰 건물을 올리고, 삐까뻔쩍 뽀대내기 바쁜 이 시대의 건물숭배자들을 바라보면 그 비극의 미래를 가늠해 본다. 이미 이자 갚다 종말을 고한 교회당 매물이 지천인 시대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것을 합리화 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것이 자신이 만든 정의로움이 되어 사람들을 비난하고 따지고 신경질 낸다. 나는 그저 한마디 하고 싶을 뿐이다. “욕망이라는 전차는 브레이크가 없다.” 과도한 욕망탐지 기능, 적정한 욕망 제어장치, 욕망버블 센서를 장착하는 일이 아주 중요한 시대적 요구이다. 한마디 더 하고 싶다. ‘마이 헤무긋다 아이가, 이자 고마 해 무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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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호 목사]"질료의 저항" 이 차라리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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