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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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이것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후에 있었던 역사적 아픔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사마리아 사람을 품으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에 가셔서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과의 대화 중 일부입니다.
처음엔 물을 중심으로 대화가 전개되었습니다. 여인은 처음에는 예수님을 낯선 유대인 남자 정도로 대했으나, 대화가 진행되면서 예수님께서 목마르지 않는 물에 대해 말씀하시자 호기심을 보이면서 그 물을 자신에게도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여인은 여전히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아킬레스건인 남편 문제를 꺼내셔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심으로써 그녀의 두꺼운 영혼의 껍질에 구멍을 내셨습니다. 영혼의 껍질에 구멍이 나거나 균열이 생기기 전에는 은혜가 스며들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남편 이야기만 나오면 부끄러워 숨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과거에도 다섯 남자와 살았고, 현재도 한 남자와 살고 있었지만, 모두 그녀의 정상적인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다>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과거를 정확히 꿰뚫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본문 19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인정하게 되는데,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비록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기는 했으나, 아직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시는 선지자의 사역을 하시기는 했으나, 사실은 선지자 이상의 존재, 즉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셨기 때문입니다. 아직 여인은 예수님을 더 알아가야 했습니다.
자신의 과거가 드러난 여인은 갑자기 주제를 예배로 돌립니다. 20절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되어 있지요. 여인이 예배로 화제를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비록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살지 못했지만, 제 마음에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마음이 있답니다. 저를 너무 무시하지는 마세요.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던데, 우리 조상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가르쳤지요. 당신 생각에는 어떤 게 맞는 것 같습니까?>라는 식의 말이었습니다.
요즘도 많은 이들이 신앙인이라 자처하면서, 여인처럼 예배 장소, 예배 의식, 교회 직제와 제도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것들이 신앙의 본질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이런 주제들은 종교적 논의에 불과할 뿐, 신앙의 참된 핵심은 아닙니다. 여인이 예배에 대해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신앙의 핵심을 한 마디로 말씀하셨습니다. 21절 앞부분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믿으라>고 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웅장한 예배당, 화려하고 정교한 의식, 제도와 조직, 재정과 인적 자원 등은 신앙의 핵심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야말로 핵심입니다. 여인은 처음엔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되고, 후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오직 성경으로!>라고 외쳐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우리는 예배 후에는 사람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그러기에 아직 말씀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말씀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의 여부에 한국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기억할 것은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을 기울여 말씀을 믿도록 기도하며 힘씁시다. 그 때 우리는 은혜의 전당 안으로 깊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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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진정한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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