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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칼럼] 바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2018/10/15 15:01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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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기간에 오산리 집회를 마치고 곤지암 기도원으로 향했다. 기도원은 내 영혼의 안식처요, 은빛포구와도 같다. 그곳에만 가면 마음이 평안해 잠도 잘 오고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이튿날 저녁 자녀들과 손녀, 찾아온 장로님들마저 모두 내려가고 나니 갑자기 쓸쓸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잠시 기도원 마당에서 둥근 달을 쳐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산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제법 쌀쌀한 가을바람이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확연히 들렸다.
오늘은 바람의 소리 속에 바람의 언어가 있는 듯하다. 바람의 소리는 들었지만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지금이 처음인 듯 했다. “네 인생도 이젠 가을이 왔다고, 아니, 가을산을 닮았다”고 말이다. 달빛이 차갑고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밤, 기도원 뒤쪽 산에서는 성하의 푸른 계절을 회상하는 노목들도 아쉽게 가을을 맞는 듯하였다. 아직 가을이 문턱에 서 있는데 기도원 앞산 쪽에서는 벌써 단풍을 만들어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그리고 그 바람의 이야기를 듣고 옆산에서는 동글동글 여문 알밤들이 톡톡 떨어지고 있었다.
머지않아 가을바람에 가랑잎들이 우수수 떨어질 텐데 그 잎새들은 가을의 흔적을 새기며 아련한 애수에 젖어 알밤들 위로 소복소복 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람의 언어는 수많은 밤알 중 꿈을 꾸는 알밤들에게만 내년 봄새싹으로 다시 태동하라고 속삭여 줄 것이다. 나는 그 날 밤에야 바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떨어지는 알밤과 도토리, 그리고 바람에 굴러가는 마른 잎새들 모두가 나의 삶이었다.
마침내 나도 바람에게 속삭였다. “생명은 순환을 해야 살아남고 순환이 없으면 생명도 없죠. 초록의 생명 또한 봄에서 시작하여 겨울에 이르며, 땅에서 시작하지만 하늘에 이르고요. 그리고 하늘에서 땅으로, 다시 생명으로 이르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순환이 사계를 잇게 하고 우리의 삶의 질서를 유지하며 보존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것을 움직이는 동력이 바로 그대 바람이지요.”
그러자 바람은 다시 내게 이야기를 하는 듯하였다. “진정한 바람의 근원이 뭔지 아시나요? 그것은 루아흐, 하나님의 바람이요 생기지요. 그 근원의 바람, 생기의 바람을 받는 자가 진정한 생명의 순환을 일으키는 자이지요.” 이런 상념에 잠겨 있었는데 가을바람이 너무 차게 불어와 온 몸에 추위를 느끼며 코에서는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이런 생각을 해 봤다. “그래, 바람의 말마따나 내 인생도 가을이 시작되었어.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사계가 수십 번을 바뀌면 나 역시 저 산 위에 노목의 모습이 되겠지. 겨울이 오면 다시 기도원으로 와서 바람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악수를 하는 겨울 끝자락에도 다시 바람의 새 이야기를 듣고 저 산 너머 그리고 또 그 너머에 있는 새로운 영토에서 다시 태어나는 부활의 꿈을 꾸리라.”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이런 상념에 잠겨보질 못했다. 그러나 모처럼 연휴를 맞이하여 기도원에 와서 이런 상념에 잠기고 머리를 식히는 것이 참 좋았다. 그래서 책상에 앉아 낮에 봤던 기도원 길가 언덕과 산 주변에 피어있는 들꽃들이 우리의 인생과 같다고 생각하며 얼른 펜을 잡고 ‘들꽃의 추억’이라는 시를 썼다. “그저 넓은 들녘에서 피었다 지고 마는 / 덧없는 운명 같지만 / 우리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있어요 / 봄의 향연 / 여름의 잔인함 / 가을의 향기 / 그러나 그 추억들은 마른 꽃으로 걸려있을 때만 간직될 수 있지요 / 지금 우리를 베어 정성껏 엮어 햇빛에 말린 다음 / 그대 가슴 속벽에 매달아두어 보세요 / 꽃잎도 빛바래고 향기도 사라졌지만 / 그대 가슴 속에서 한 토막 삶의 추억만큼은 / 소중한 향수로 영원히 남도록 해 드릴게요”
아무리 시인이래도 목사는 목사일 수밖에 없다. 목사의 시심이 들꽃과 일치가 되고 설령 제 자신이 들꽃이 된다 해도 항상 사람들의 가슴 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고 향수로 남고 싶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작은 위로와 소중한 향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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