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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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 꽤 긴 유행어가 한참 세상에 회자 된 적이 있었다.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제침체로 인해 청년 실업이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외우게 된 이 긴 유행어 속에는 당시 취업을 위해 발버둥치는 청년들의 삶의 고민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었다. 그렇다면 15년이 지난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한가? 여전히 청년기는 ‘아파야 청춘’이라는 말이 당연시 되고 있다. 여전히 우리의 청춘들은 삶의 문제로 고민하고 스펙을 쌓느라 바쁘고 직업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쓴다. 청년들의 뇌구조를 들여다보면 온통 세상 속에서의 일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 역시 유아, 아동, 청소년기와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머무는 시간이 극히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한 가지 문제적 상황은 아직도 청년기를 수동적인 시기로 보는 데 있다. 필자가 아는 어느 교회는 청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담임교사가 일일이 청년들을 관리하기도 한다. 성인이 되었으나 성인으로 간주되지 못하고 여전히 아이처럼 신앙조차 떠먹여주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적 상황과도 연관이 된다. 우리나라는 모든 초점이 대입 입시에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부모들은 입버릇처럼 “대학가면 너 하고 싶은 대로 다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다보니 청소년기에 마땅히 겪어야 할 정체성의 위기와 그 위기를 통한 확고한 정체성의 정립이라는 인생의 과제는 뒤로 미뤄지고 오로지 입시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청년이 되면 확고한 정체성 없이 사회생활이 확대되면서 때늦은 반항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 그 늦은 반항기와 방황기가 중년기까지 연장되는 경우도 많다. 인생의 각 시기 마다 겪어야 할 통과의례와 넘어야 할 과제들이 있는데 청소년, 청년들이 그 소중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뒤로 미루고 미루게 되면 결국은 더 큰 문제로 터지게 된다는 사실을 자꾸 잊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현상 속에서 교회 안에 있는 청년들의 삶은 자꾸만 쪼그라들고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 청년들이 많은 시기에는 청년부 담당 교역자와 교육부 담당 교역자가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청년부 담당 교역자는 청년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청년들을 교회 안에서 봉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고, 교육부 담당 교역자는 성인이면 마땅히 찬양대나 교회학교에서 봉사를 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주장하였다. 훈련이냐 봉사냐를 놓고 늘 교회 마다 상반된 그룹이 있어왔다. 그 사이에서 청년들은 훈련을 받든 봉사를 하든 아니면 둘 다 하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러한 주장들도 무색하리만큼 청년들이 훈련도 안 받고 봉사도 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간신히 예배만 드리고 사라지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고, 주일성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간간히 교회만 나와 줘도 고맙게 여겨야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으며,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프로그램이 전무하거나 교회학교나 찬양대 등에 봉사하는 청년의 비율도 계속 낮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오늘날 국가가 건강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듯이 교회와 교회학교도 건강한 훈련과 봉사의 자리를 확대하고 초대해야 한다. 청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성인으로서의 기여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교회학교에서는 청년들의 모습이 성인의 눈에 보기에는 못마땅할 지라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주고 격려하며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사명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청년부에서는 자체적으로 봉사활동이나 체험여행, 단기선교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중등부 교역자로 섬길 때, 한 중년 교사가 청년교사를 청소년교사라고 부르는 말실수를 하여 그 곳에 있던 모든 교사들이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사실, 지금이나 그때나 청년교사들은 청소년교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숙한 점도 많고 지각, 결석도 많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교사들의 애정과 사랑으로 인해 성장하는 기회를 가졌고, 성인교사들 역시 그들을 돌보면서 성숙해졌다. 청년들이 성인의 눈에는 청소년인지 청년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 많겠지만, 사랑으로 함께 할 때 그들도 어느덧 성숙한 신앙인으로 교회 안에서 든든한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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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학교를살린다] “신앙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 청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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