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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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카드놀이 한 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겁니다. 1(A)부터 10까지의 숫자와 J, Q, K 세 영문자가 각기 다른 문양 4종류씩 해서 도합 52장으로 이루어진 흔히 트럼프라 부르는 카드 말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유래해서 유럽으로 건너갔다는 설도 있고, 스페이드와 하트와 다이아몬드와 클로버의 네 가지 문양은 각각 중세 시대 네 계층 즉 군주와 성직자와 상인과 농민을 상징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카드를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게임만 해도 포커(poker)나 블랙잭(blackjack)을 비롯한 수백 종류라고 합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지닌 공통적인 묘미는 뭐니 해도 자기 패(牌)의 일부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비장의 카드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방이 간직하고 있는 마지막 카드가 무엇일까, 이 과정에서 추론과 직관과 용기와 만용이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칠 때가 많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을 가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현재 워싱턴포스트 부국장이면서 그 옛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전설적인 필명을 날린 밥 우드워드(Bob Woodward)가 쓴 책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Fear: Trump in the White House)』의 내용 일부가 미리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곧 이어 정권 초기에는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 대통령을 제거하는 복잡한 절차에 착수하자는 말도 나왔었다는 익명의 행정부 고위관계자가 쓴 칼럼이 뉴욕타임스에 등장하면서 또 다시 파란이 일었습니다. 수정 25조는 부통령과 장관 과반수가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절차를 규정한 조항입니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자랑하던 경제도 점차 역풍을 맞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위기의 순간마다 승부사처럼 비장의 카드를 꺼내서 전세를 뒤집곤 했습니다.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회담은 트럼프가 꺼내든 히든카드(숨겨진 카드)의 백미였습니다. 당시 러시아 스캔들, 언론과의 전쟁, 중국과의 무역 마찰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입지가 흔들리던 트럼프는 북한과의 평화회담이라고 하는 비장의 카드를 선보임으로써 분위기를 반전시켰음은 물론 일약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정상회담의 여운이 사라지려는 무렵이던 8월 초에는 극적인 미군유해송환식(Repatriation Ceremony)을 연출하고 북한 당국자에 “곧 다시 만나기를 고대한다(I look forward to seeing you soon).”라는 글을 개인 인터넷 통신망에 올림으로써 특유의 ‘트위터 정치(Twitter politics)’를 또 한 번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영국 BBC는 “트럼프와 북한 대화: 21세기 정치적 도박”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트럼프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묘한 뉘앙스를 염두에 두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은 복잡합니다.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민족 통일’이라고 하는 절대상수(絶對常數)가 존재하는 특수한 사정 때문입니다.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을 떠나서 트럼프가 통일의 대망을 이루는 절묘한 카드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을 정벌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켰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도 페르시아의 고레스 대제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악의(惡意)의 도구에 불과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트럼프 카드의 스페이드 킹(K) 속 인물은 성경 속 다윗 왕, 그리고 다이아몬드 퀸(Q)은 야곱의 아내 라헬이 그 모델입니다. 우연과 확률의 게임인 트럼프에조차 절대주권자의 흔적을 심었습니다. 자, 이제 우리에게도 비장의 카드가 필요하다면, 만일 우리에게 단 한 장의 히든카드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이면서 셋이요 셋이면서 하나인 하나님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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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트럼프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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