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6면-강진구교수, 신은 죽지 않았다3.jpg
 
기독교 변증 영화의 전성기
최근 미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기독교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간증이 아닌 변증의 성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를 둘러싼 세속적 사회는 기독교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사실을 부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고 기독교영화는 이에 대해서 논리적이며 또한 신앙적으로 방어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즉 기독교 변증영화는 현 시대의 교회를 향한 무신론적이며 세속적인 사회의 공격적 태도를 보여주는 한편으로, 그래도
<신은 죽지 않았다1,2>(2014, 2016)와 <예수는 역사다>(2017)는 기독교변증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영화들이다. <신은 죽지 않았다> 1편에서 대학 신입생 조쉬 휘튼(쉐인 하퍼)은 무신론 교수의 철학수업시간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라는 교수의 요구에 대해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면서도 또한 지성적인 대응을 함으로써 서구 대학세계에 만연한 무신론적 상황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었고, 한편으로 대학캠퍼스에서 크리스천 대학생들이 순교자적 신앙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학 강의실에서 모든 권력을 소유한 무신론 교수와 이제 갓 들어온 크리스천 신입생의 대결 구도는 오늘날 기독교가 서구 지성인 사회에서 처해 있는 어려운 형국을 압축해서 보여준 것에 다름 아니었다.
<신은 죽지 않았다> 2편은 공교육 현장에서 기독교신앙이 처한 위기와 위협적인 상황을 매우 밀도 높게 보여주었다. 공립학교 역사수업시간에 간디의 비폭력저항운동에 예수의 사상이 영향을 주었는지를 묻는 학생의 질문에 크리스천 역사교사 그레이스(멜리사 조앤 하트)는 예수가 역사적인 인물, 다시 말해서 기독교 믿음의 중심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실성을 근거로 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를 스마트폰으로 녹음한 학생이 공교육의 현장에서 특정 종교를 선전한다는 이유를 들어 학교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크리스천 교사는 실직의 위기에 처하게 되는 상황을 통해 영화는 기독교신앙과 공교육과의 갈등 상황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영화 <예수는 역사다>는 언론계에 만연한 무신론적이며 비기독교적 정서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무신론자이며 미국 중부 최대 일간신문인 시카고 트리뷴지의 인정받는 기자 리 스트로벨(마이클 보겔)은 자신의 아내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는 것을 지켜보며 불만을 품게 된다. 객관적 사실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 기자생활에 익숙한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아내가 믿는 기독교는 비합리적이며 미신적인 사고방식으로 가득한 구시대적 유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스트로벨 기자는 특종을 내겠다는 직업정신과 교회에 빼앗긴 아내를 되찾겠다는 사적인 감정이 결합된 가운데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기 위해 예수의 부활이 거짓임을 밝혀내는 일에 착수한다.
 
세상이 교회에 바라는 것은?
다시 <신은 죽지 않았다> 시리즈의 차례가 돌아왔다. 마이클 메이슨 감독의 최신작 <신은 죽지 않았다3:어둠 속의 빛>(God's Not Dead: A Light in Darkness, 2018)은 반기독교적인 미국사회의 정서에 대해 충실한 신앙적 답변을 보여주며 기독교 변증영화의 흐름을 이어나가고 있다. <신은 죽지 않았다1,2>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데이브 목사(데이비드 A. R. 화이트)는 대학 캠퍼스 안에 위치한 150년 전통의 세인트 제임스 교회의 담임목사로 등장한다. 전편에서와 달리 이번 영화에서 데이브 목사는 심각한 고난과 갈등에 직면하고 만다.
무신론 분위기가 팽배한 대학의 학생들은 예배당이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것에 불만을 갖고 퇴출되기를 강하게 희망한다. 더군다나 교회에 불만을 가진 대학생 아담 리처드슨(마이크 매닝)은 우발적이긴 하지만 교회에 벽돌을 집어 던져버리는 바람에 지하실에 있던 가스파이프가 터지고 이를 알지 못한 채 지하실에서 전등을 켜던 데이브 목사의 절친 주드(벤자민 오치엥) 목사는 가스 폭발로 인해 사망에 이르는 가슴 아픈 사건을 맞이하고 만다. 불타버린 교회를 바라보는 대학생들은 이 기회에 교회가 대학에서 떠나기를 바라지만 데이브 목사와 크리스천 학생들은 어떻게든 교회를 지키기 위해 격앙된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영화는 사회적 갈등이 있다면 이를 법정에서 푸는 일반적인 미국사회의 풍속으로부터 시작한다. 누가 교회에 불을 냈는지 알지 못한 채 데이브 목사와 학교 당국 그리고 학생들 간의 대결은 사뭇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한다. 데이브 목사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변호사인 자신의 동생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는지 신앙적 갈등 또한 겪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갈등을 푸는 방법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교회와 학생 그리고 학교당국과의 대치 국면을 해결하는 방안은 교회를 내쫓으려는 학생들 머리 위로 천둥벼락이 내리기를 기도하는데 있지 않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렇다고 타락한 학교당국의 처사에 낙담만 하는 것으로 끝내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문제 해결방안은 캠퍼스 내 교회가 있다면 학생들이 교회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학생들을 위한 교회의 존재목적을 다시 한 번 정립하는 일이다.

무신론자는 기독교인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무신론자들이 원하는 것은 기독교인이 무신론자로 변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 즉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가치관을 기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있다.
교회에 벽돌을 던진 리처드슨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데이브 목사의 휴대폰에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때 리처드슨이 기대했던 것은 데이브 목사를 통해 예수가 보여준 사랑과 용서의 모습이 실현되는 것이었다.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친구가 죽고 예배당이 불타 버린 현실에서도 과연 목사는 문제 많은 자신을 품을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교회의 예배당이 세속적인 사회에서 그 가치를 존중받을 수는 없음을 영화는 은연중 보여준다. 교회의 가치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교회가 세상과 똑 같이 자신의 이권만을 주장하고 전도의 대상인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무시해 버린다면 교회의 본래 역할을 감당하기란 결코 쉬울 수 없는 일이다.
데이브 목사는 불타버린 예배당을 포기하는 대신 대학 당국의 지원을 받아 외곽에 새로운 교회를 지을 수 있도록 지원 약속을 받는다. 예배당이 있던 자리에는 학생들이 모여 활동할 수 있는 학생회관이 들어서게 되고 그 안에 학생들의 영혼을 돌볼 수 있는 센터 설립 또한 약속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세속적인 학생들과 대학당국의 요구에 교회가 무릎 꿇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생들이 원하고 필요에 응답하며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은 오히려 학생들을 감동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다. 왜냐하면 세상이 교회에 원하는 것은 자신들처럼 스스로의 주장과 이익을 싸우고 상대방을 뭉개버리는 일이 아니라 자신과는 뭔가 다른 행동을 원하는 기대감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현장에서는 세상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교회는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기독교 변증적 성격을 지닌 이 영화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세상 가치에 대한 예수님의 역설에 있다. 현대의 크리스천은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워서 그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른 뺨을 맞을 때 왼 뺨을 대어주고, 고소당해서 속옷을 빼앗길 때 겉옷까지도 내어주고,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강요받을 때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해주는 일(마5:39-41)을 요구받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들 위하여 기도할 것(마5:44)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세상 사람들일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강진구 교수.png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영화] 최고의 기독교 변증은 용서와 사랑이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