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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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맹폭(盲爆)하는 무더위를 피해 사람들은 휴가를 떠납니다. 당분간 집도 비우고 거리도 비고 사무실 책상도 잠시 주인을 잃습니다. 그래서 여름휴가를 보통 ‘바캉스(vacance)’라고 합니다. 라틴어 동사 vaco, 형용사 vacuum 등 ‘비움’이라는 뜻의 같은 뿌리를 가진 말에서 유래했지만 현대에 등장한 불어(佛語)입니다. 결국 바캉스를 정의하면 ‘비우고 떠나다’가 되겠습니다. 한 설문조사 결과 프랑스 사람들 약 80%가 바캉스를 떠날 계획이며, 조용히 독서를 즐기며 쉼(rspos)을 누리고 무위안일(無爲安逸, farniente)을 소망했고,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꼽았습니다.
한국사회에도 언제부터인가 바캉스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골프 바캉스, 문화 바캉스, 사이언스 바캉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수준입니다. 최근에는 ‘호캉스’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냉방시설도 잘 되어 있고 식사도 훌륭한 호텔들을 찾아서 더위를 피하고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호텔 바캉스’의 준말입니다. 해외여행만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호텔에서 바캉스 기간을 보내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온라인 여행사나 호텔예약업계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호텔의 한국인 이용객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뿐만 아니라, 잘 갖추어진 운동 시설과 레저 활동 때문에 ‘액티베케이션(Activacation)’이라는 개념까지 등장했습니다. 아무튼 휴가 중에도 잠시도 쉬지 않으려는 한국인들입니다!
지난 7월 1일부터 한국도 주 52시간 근무 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법이나 제도는 본시 변화를 선도하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좇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벌써부터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들은 ‘워라밸’ 즉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성장을 중시하는 분들이나 재계에서는 그리 환영하지 않을지 몰라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大勢)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동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근로시간 1위를 질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바캉스 문화에도 커다란 변화가 예상됩니다. 지금은 4~5주에 걸친 바캉스로 유명한 프랑스도 1936년 6월 7일 주당 40시간 노동시간을 규정한 ‘마뇽 합의(Magnon Agreement)’가 체결되면서 그 해 7월부터 바캉스의 일대 혁신을 이룬 바 있습니다.
바캉스에 호캉스까지 사실 교회로서는 달갑지만은 않은 말들입니다. 하지만 교회도 가만있지 말고 ‘처캉스’라는 말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합니다. 문자 그대로 교회에서 바캉스 시즌을 잘 보내자는 취지입니다. 먼저, 교인들이라면 평소 잘 나오지 못했던 수요일이나 금요일 밤 교회에 모여서 기도하며 열대야를 극복하면 어떻겠습니까? 더위로 잠도 잘 오지 않는다면 새벽 일찍 일어나 평소에는 못하던 새벽기도에 도전해 보면 또 어떨까요? 다음, 일반인들을 위해서라면 교회마다 무더위 쉼터를 운용하는 방안이 있을 겁니다. 교회는 사실 선뜻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곳입니다. 하지만 시원한 공간을 마련해 놓고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서 지역주민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
형편이 어려워 힘겹게 여름을 나고 있는 교회들에게는 냉방기나 선풍기를 지원하거나, 해충 때문에 문을 제대로 열지도 못하고 무더위와 싸우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방충망을 달아주는 선한 사업에 참여하는 처캉스도 멋지지 않겠습니까? 해마다 여름이면 기독교 장애인단체들이 하계수련회를 개최하거나 장애인캠프를 여는데 날이 갈수록 봉사자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거룩한 결단을 하고 휴가를 그런 곳에서 보낸다면 그 얼마나 귀한 처캉스가 되겠습니까? 가족이 함께 해외단기선교에 지원해서 귀한 섬김과 나눔의 시간을 공유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처캉스가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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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처캉스(Chur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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