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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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지 않은 일이나 피하고 싶은 난처한 상황을 만날 때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본문에서 그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를 지나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셔야 했습니다. 사마리아 땅은 남쪽 유대와 북쪽 갈릴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거나 갈릴리에서 유대로 가려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잘 아는 대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조상은 본래 북 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는데, 주전 721년에 앗수르에 멸망한 후 앗수르의 이민 정책에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하고, 이스라엘 땅에는 낯선 이방인들이 와서 살게 되어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피가 섞이고 신앙이 혼합되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망가졌습니다. 남 왕국 유다의 신앙 전승을 이은 사람들은 북 왕국의 수도가 사마리아였기 때문에 이렇게 혼합된 사람들을 사마리아 사람이라 부르며 경멸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짐승처럼 여겨 상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일행은 그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셔야 했습니다. 이 난처한 상황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선 예수님께서는 멀리 우회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을 밟지 않기 위해 멀리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마리아 마을을 들어가셔서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마리아 마을을 가슴에 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물 곁에 앉으셨다고 했는데, 중요한 것은 수가에도 우물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물이 있었다는 것은 거기도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사랑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만의 메시아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의 메시아이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있는 절대적 사랑 앞에서는 역사 과정에서 생긴 미움, 갈등 등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이러하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일반 유대인들과 달리 사마리아인들을 품으셨습니다. 열 사람의 나환자들이 찾아왔을 때, 그 중 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지만 차별하지 않으시고 똑같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후에 오히려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도 강도를 구한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사마리아 사람들 중에서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더 나은 사람도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태도에는 민족, 지역, 혈통, 학연 등으로 온갖 차별을 만들어내는 우리들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사랑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주어진 상황에 정면 대응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신 앞에 사마리아 동네가 막아섰을 때, 피하지 않으시고 동네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셨습니다. 세상에는 피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상대방이 강하다면 부드러움으로, 상대방이 악하다면 선함으로, 거짓에는 정직으로 마주 서야 합니다. 밀려 있는 많은 일들 앞에서 도망하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서류 한 장씩 차근차근 검토해야 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짜증나는 일도 막상 부딪혀보면 의외로 그 속에 기쁨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깊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주어진 상황을 회피하지 말고, 당당하고 침착하게 한 페이지씩 넘기는 마음으로 살길 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 책의 뒷장을 덮을 날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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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사마리아를 통과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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