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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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선임된 금융감독위원장이 2주 만에 결국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한 시민단체의 활동가로부터 시작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거쳐 장관급인 금융감독위원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던 그의 정치 여정도 잠시 순항(順航)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사태의 발단은 외유성 출장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경비 전액을 자신과 유관한 피감기관이 부담했고, 여비서 한 사람만 동행했으며, 알고 보니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2014년 국회의원 시절 국정감사장에서 그가 남겼던 말이 방점(傍點)을 찍었습니다. “이게 해외 연수라고 하면서 사실상은 해외 관광 여행을 보내고 있어요. 국민 세금으로 이럴 수 있습니까?” 문득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a)』에 나오는 문구가 떠오릅니다. “영웅이나 신처럼 자신보다 더 나은 존재를 모방하려는 노력에서 비극이 발생했고, 더 못한 인간을 모방하려는 데서 비극이 발생했다.”
종전의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너무 심한 조치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왜 정부가 금융감독위원장 자리에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을 선정했겠습니까? 절실한 현안(懸案) 중의 하나인 금융개혁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까? “보이스피싱 및 불법 사금융 근절, 보험사기 강력 처벌, 기업구조개선 시스템 구축,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영업과 서비스 개선” 이들은 종전 정부에서 제시했던 금융개혁 10대 과제 중 몇 가지입니다. 관치금융과 낙후된 금융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데 여야가 따로 없고 보수나 진보나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서 금융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참신한 인사를 찾은 것 아닙니까? 헌법학에서 ‘공적 인물 이론(Public Figure Theory)’이라는 게 있는데,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의 경우 보다 더 강화된 수인(受忍) 한도가 적용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마찬가지로 개혁을 말하고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화된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세상 개혁이 이럴진대 하물며 교회에서 개혁을 말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본래 바리새인들은 부패하고 타락한 교권주의자들을 비판하며 등장한 신진 개혁 세력이었건만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혹독한 비판을 들어야 했던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관련해서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一喝)하셨습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여기서 “낫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리슈오’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구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요 6:13; 골 2:7)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마 5:29, 30)는 무시무시한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만일 개혁을 논하고 개혁을 주도하려면 이런 엄중한 기준을 항상 마음과 품고 손발로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체코 출신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가 1984년 프랑스어로 발표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제목을 직역하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됩니다.(L’insutenable legerete de l’etre)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개혁마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전락합니다. 그러나 또 한 편 교회 안에서도 ‘참을 수 없는 말씀의 가벼움’이 교회의 강단을 채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성도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개혁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마저 난무(亂舞)하고 있지는 않나요? 종교개혁의 이상과 정신을 논한다면, 이제 더 이상 깃털처럼 가벼운 개혁은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혁하지도 않을 개혁이나 오히려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개혁이라면 지금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개혁가였던 예수님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심이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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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참을 수 없는 개혁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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