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적어 내려가시면서 다음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슬쩍 흘려주시기도 합니다. 마치 드라마 작가가 끄트머리에 기대되거나 불길한 힌트를 주고 끝냄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음 회 방송을 기대나 불안으로 기다리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3장 1절 첫 부분에서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 그 다음에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 간교한 뱀이 사람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하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성경의 어느 한 구절도 무의미한 말씀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그러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브라함의 형제들의 가계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다른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11장 27절을 보면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란이 먼저 죽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조카인 롯을 아들처럼 돌보면서 가나안에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 29절에서는 나홀의 아내가 밀가라고 밝힙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에 대해서만 알면 될 텐데, 왜 나홀의 아내가 밀가라는 것까지 기록했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다 하나님의 치밀한 의도가 있기 때문임을 오늘 본문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본문 20절에서 밀가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집니다. 21-22절은 나홀과 밀가 사이에 여덟 명의 자녀가 태어났음을 밝힙니다. 그리고는 이 여덟 명 중 앞의 일곱 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는 반면에 23절 끝에서 유독 브두엘이 리브가를 낳았다는 언급만 덧붙입니다. 우리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왜 브두엘이 리브가를 낳은 것을 밝혔을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24장을 읽으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바로 그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리브가가 태어날 때 이삭은 가나안에 있었고, 브두엘은 하란에 있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이삭을 위해 그 먼 하란에 이삭의 아내를 준비해 두신 것이고, 24장에서 아브라함의 늙은 종을 보내 두 남녀를 연결시켜 부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였습니다. 이삭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준비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22장에서 리브가의 출생을 슬쩍 흘리신 것입니다. 마치 <이삭, 넌 모르겠지만 난 이미 네 아내를 준비했다. 너를 위해 나는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다. 넌 나만 믿어라>, 이렇게 말씀하는 듯합니다.
이런 신비는 우리네 삶에도 똑같이 진행됩니다. 제 아내가 출생할 때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제 아내가 교회에 다니면서 믿음을 키우고 학교에서 공부할 때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준비된 아내를 제게 보내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선물을 받듯 아내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선물을 수십 년 동안 준비하신 것입니다.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준비하시는 손길>이라는 신비가 숨 쉬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계실까요? 그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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