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표지.jpg▲ 한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
 이 책은 저자가 강원도 고성 명파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인제-양구-화천-철원-연천을 거쳐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DMZ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는 약 380킬로미터의 길을 열하루 동안 오롯이 걸었던 기록이다. 그것도 유월 하순의 무더위 속에 햇빛 피할 곳도 제대로 없는 아스팔트길을 걸었다. 어떤 때는 생애 최악의 폭우 속에 온몸을 맡기고 걷기도 했다. 생각만으로도 지칠 것 같은 그 고통의 길을, 아름다움을 기도하면서 한발 한발 내디뎠다.
걷는 가운데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길가를 걷는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내달리는 차량을 보면서 ‘무례한 것은 곧 난폭한 것’이라고 느꼈다. 인적 드문 길을 가면서 제 자리에 서 있는 조그마한 표지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한참을 산 뒤에 뒤돌아보아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도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 걸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체득했다.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을 밟고 있다는 느낌과 제대로 된 삶의 속도이다. 내가 사랑해야 할 이 땅을 새롭게 느꼈고, 너무도 빨리 변하고 편한 것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속도는 걷는 속도와 닮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왜 하필이면 DMZ를 걸었느냐고 묻는 분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길을 걷고 싶다는 분도 있으리라. 중요한 것은 그 길이 기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닫는 것이다.
◈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 || 저자 한희철 목사는 현재 부천 성지감리교회를 섬기고 있다. 시인이며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하나님은 머슴도 안 살아봤나》, 동화책 《네가 치는 거미줄은》 등이 있다. 꽃자리, 2018. 17,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작은교회 이야기》 / 한희철 / 포이에마
《어느날의 기도》 / 한희철 / 두리반


▌좌담: 김길구, 김수성 경성대 초빙외래교수, 김현호 기쁨의집 기독교서점 대표
▌특별손님: 한희철 목사

JJ.png▲ 한희철 목사는 DMZ 길을 순례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두 발로 이땅을 밟으면서 현실을 느꼈고, 삶의 적절한 속도를 찾았다고 한다. <’기쁨의 집’에서 오른쪽부터 한희철 목사, 김길구, 김현호, 김수성>
 

하나님께 지고 싶어 순례길을 떠나다
김길구  오늘은 《한 마리 벌레처럼 DMZ를 홀로 걷다》를 쓴 한희철 목사님을 특별손님으로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DMZ 길을 걸었습니까?
한희철  두어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오래 전부터 걷고자 다짐했던 길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산티아고 순례길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만, 우리 산하에도 걸어야 할 순례길이 많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또한 평소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한다고는 했지만, 허리 잘린 조국에 대해 항상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직접 현장을 걸으며 동강난 허리를 ‘호는’ 마음으로 걸었습니다. 이후 다른 분들이 좀 더 촘촘하게 꿰맬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호다’는 ‘헝겊을 겹쳐 바늘땀을 성기게 꿰매다’는 뜻].
김현호  책에 보면, 목사님 스스로도 목회 중 일어난 일로 인한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순례의 길을 나섰다고 하는데….
한희철  맞습니다. 교육관 건축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논어에 ‘군자는 의를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는 구절이 있는데,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돈과 관련된 문제는 소인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안타까웠습니다.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지요. 나 역시방향감각이 무뎌진 것은 아닌가 하고.
김수성  아픔은 아픔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군요?
한희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에, 그가 한 수도사와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그 수도사는 하나님과 싸우고 있는데, 하나님을 이기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고 싶어서 싸우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하나님께 지고 싶어서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김길구  열하루 내내 걸으면서 기도했다, 그것도 태어나서 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 모두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이 감동적이었습니다.
한희철  새해가 되면 전 교인들에게 기도카드를 적게 합니다. 그 카드를 강대상에 올려놓고 매일 새벽기도회를 마친 후 제단 앞에 꿇어앉아 기도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자세를 좋은 기도 자세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번에 걸으면서 기도를 해보니 이 자세도 상당히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여태껏 나와 인연을 맺었던 분들을 떠올리며 기도하니 더욱 좋았습니다.

“기도는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김현호  열하루 동안 걸으면서 모든 분들이 다 생각나던가요? 시간이 모자랐을 것 같은데.
한희철  내가 그렇게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지 않아서 그런지, 열하루 동안 내 기억 속에 있던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다 보니 얼굴이나 이름이 아니라, 먼저 그분들의 아픔과 만나게 되더군요. 즉, 모두가 무엇이든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세상에는 아픔 없는 분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는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와 인연을 맺은 분을 위해서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김수성  걸으면서 기도하는 것 못지않게, 자연과 함께 드린 예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한희철  예배는 내용과 함께 형식도 중요합니다. 얼마 전 미국에 갔을 때 한 수도원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예배시간이었는데, 그레고리안 성가로 이어지는 수도자들의 예배 자세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진솔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걷는 중에 맞이한 주일, 새소리와 계곡 물소리가 찬송하고, 나무가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계곡을 따라 부는 시원한 바람이 축도를 한 예배는 결코 혼자 드린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김길구  준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한희철  사실 갑자기 떠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준비가 소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걷는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코스는 함광복 장로님께서 일일이 적어준 로드맵에 의존함으로써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함 장로님은 DMZ에 관한한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또한 중간 중간 교회 장로님을 비롯해 여러분들이 기꺼이 동행해주셔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김현호  걷는 동안 날씨 때문에 상당히 많은 고생을 하였다고 하던데.
한희철  유월 하순이었는데도 삼복더위 못지않았습니다. 걸핏하면 스마트폰에 무더위 주위보가 날아와 ‘바깥활동은 삼가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복사열은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죠.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걸을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 진부령을 오를 때는 뇌성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나중에는 우박까지 쏟아졌는데,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만났던 가장 심한 악천후였습니다.

걸으면서 ‘삶의 적절한 속도’ 깨달아
김수성  저도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길, 사람보다 차를 중시하는 길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한희철  DMZ 길도 아찔한 곳이 많았습니다. 인도가 아예 없는 길도 여럿 있었고, 있다 하더라도 주행하는 차의 폭력적인 운전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특히 탱크가 내 옆으로 지나갈 때는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이를 피할 곳이 마땅찮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문득 2002년 경기도 양주 마을도로에서 여중생 두 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사건이 떠오르더군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길에 대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김길구  오래 걸음으로써 삶의 적절한 속도를 찾으셨다고 했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우리 사회는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너무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희철  삶의 속도가 빠르다고 해서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저는 우리 인생은 평생 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래 걸으면서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에 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즉,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몸으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참으로 중요한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현호  순례길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무언가 변화가 있었나요? 교인들의 반응 같은….
한희철  특별히 변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지요. 더 이상 상황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비가 되기를 기도하며 한 마리 벌레 같이 걸었지만, 오히려 번데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김수성  그래도 번데기가 되었으니 한 단계는 진전한 셈입니다. 번데기를 거쳐 때가 되어야 나비가 될 수 있으니까요[웃음].
김길구  이 책을 처음에는 편하게 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 등 현실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한사연 목사님의 순교 등과 관련된 ‘바이블루트’는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이렇게 부산까지 오셔서 자리에 함께해주신 한희철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는 안재경 목사의 《십계명, 문화를 입다》(SFC, 2017)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김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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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교양 읽기36] 한 마리 벌레처럼 오래 걸으니 내 발이 비로소 이 땅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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