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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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나라입니까? 2017년 12월 미국의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2018년 올해 한국의 국민소득이 일인당 3만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는 총 27개국인데,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에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의 6개국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일인당 국민소득이 겨우 67달러로 전 세계 국가 중 꼴찌에서 두 번째였습니다.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처럼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한 전례를 인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듭니다. 피(被)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역전한 유일한 국가며,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유일무이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1966년 미국 언론인 칼 로완(K. Rowan)은 이브닝 포스트(Evening Post)에 1950년대 영국 리더스다이제스트 잡지에 실렸던 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In the 1950’s, a Readers Digest reporter said expecting democracy out of Korea would be looking for a rose among trash.)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최근 사학(森友学園)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아베 총리를 향해 ‘우리도 한국처럼’을 외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21세기 시황제가 되려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가진 채 시진핑(習近平)을 바라보며 ‘한국을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어쩌면 경제성장보다 더 위대한 업적은 바로 한국 민주주의(Korea Democracy)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렇게나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며 자괴(自愧)하고 신음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소문입니다. 작년 3월 닐슨코리아가 실시한 ‘사회공정성에 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8명이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19세에서 29세 응답자는 그 수치가 무려 84퍼센트에 육박했습니다. 작금의 청년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상대적 박탈감을 맛보고 있는데, 문제는 전자가 주는 행복보다 후자가 주는 불행을 더 크게 느낀다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양상이 심리적인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차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문제입니다. 심리학과 경제학이 만나 ‘싸이노믹스(psynomics)’라는 신규어를 만드는 추세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인 바, 결혼기피와 저출산 현상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극적인 민주주의의 뒤안길에 드리워있는 이와 같은 그림자를 어떤 식으로든 지워가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당면한 지상과제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어렵게 취업의 관문을 돌파한 한 젊은이의 목소리입니다. “한국 사회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건물입니다. 계층 간 수직 이동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취업 자체도 너무 힘듭니다.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도 경제적 부담에 걱정부터 앞섭니다. 평생 이렇게 돈을 벌어도 집 한 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하고 화려한 삶이 결코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절약해서 돈을 모아 아담한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해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기를 꿈꿉니다. 지금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쟁을 내려놓고, 그런 젊은이들의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사회의 역량을 집결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하여 다시 한 번 우리나라가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부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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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다시 한 번 위대한 대한민국의 부활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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