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이상규교수 copy.jpg
부산에 거주하던 윌리엄 베어드는 1893년 4월 14일부터 5월 20일까지 경상도 북부의 상주 예천 안동 의성 등 내륙지방까지 순회 전도했는데 이때를 보통 제2차 순회전도여행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전도여행 기간인 4월 28일, 경상북도 상주에 들리게 되는데 이 날 일기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우리는 어제 아침 낙동을 떠나 상주에 이르는 길 중간쯤 갔다. 여기서 우리는 김 서방이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 가 보았는데, 그는 아주 작은 집에서 궁핍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부산을 떠나서 칠 일 만에 백원(白元)에 도착했고, 며칠 전까지는 아파서 누워 있었다. 도중에 자신의 주사기가 부서져 자신의 상처를 씻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앉을 공간이 있는 이웃집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갔다.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우리를 약 15채의 집이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자기 친척들에게 소개했다. 그는 우리에게 함께 식사하자고 거듭 청했다. 그는 가난했지만 우리는 그의 거듭된 간청을 거절하지 못해 그의 요구에 응했다. 그와 함께 성경을 읽고 말씀을 나눈 후에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그는 우리를 언덕 비탈까지 따라와서 배웅했다. 불쌍한 형제! 그는 오래 살 수 없다.”
 
이 일기에서 언급된 김 서방이 누구일가? 이 일기를 보면 베어드는 김서방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김서방은 부산을 방문한바 있고, 육신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치료차 부산을 방문하여 치료를 받았고, 병세가 중하여 베어드는 그가 오래 살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김서방은 어떤 인물일까? 그가 바로 경북지방 첫 장로교 교인으로 불리는 김재수(金在洙)였다. 다행히 그가 걸어갔던 삶의 여정마다 희미한 흔적이 남아 있어 그가 누구인가를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한 가지 흔적이 이 순례여행에 동참했던 서경조의 기록이다. “徐景祚의 傳道와 松川敎會 設立歷史”에서 서경조는 이렇게 썼다. “디명은 미샹나 부산셔 밋기로 작졍 一人을 차즈니 셩명은 김긔원이라. 죵쳐병이 즁 것을 보고 위로를 고 셥섭이 나니라.”
김재수는 경북 상주군 낙동면 화산리에서 출생했는데, 8살 때 고향 화산리 사숙에서 공부하였고, 18살 때는 조승장(趙承章)과 혼인하여 2남을 두었다. 그런데 그는 심한 종창을 앓던 중 절망가운데 지냈으나 부산에 외국인 의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부산으로 찾아갔다. 이때 그는 부산에 거주하던 하디 의사(Dr R. Hardie)를 만나게 된다. 그는 치료를 받았으나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 이 무렵 김기원은 부산에 체재하던 윌리엄 베어드도 만나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에서 김기원은 선교사들로부터 전도를 받았고 신앙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무렵 전도여행 차 상주를 방문했던 베어드 일행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때의 일이 위의 베어드 일기의 내용이다. 그런데 김기원은 후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호주선교사 손안로(Andrew Adamson)에게 세례를 받았다. 대구제일교회에 접수된 그의 이명서에 '빅토리아장로교 손 목사에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손안로 선교사가 내한한 때가 1894년 5월 20일이었음으로 그의 수세는 1894년 6월 이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기원은 다시 부산으로 내려간 것 같고, 이 때 1895년 아담스 목사(Rev James Adams)를 만나게 된다. 이런 어간에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보았던 그가 건강을 회복했다. 베어드는 생활의 어려움을 겪던 김재수를 아담스의 어학선생으로 천거했고, 후일 아담스가 부산을 떠나 대구지부로 이동할 때 김재수도 동행하여 아담슨의 조사가 된다. 김재수는 이 무렵 김기원(金基源)으로 개명했다. 1897년 겨울 아담스가 가족들과 존슨 의사와 함께 처음 예배드리기 시작했을 때 이 예배에 참석한 유일한 한국인이 바로 김기원이었다. 이 예배가 대구제일교회의 시작이었다. 1907년에는 선산 부지동교회에서 장로장립을 받았고, 선교사를 도와 선산군 일대에서 사역했다. 1909년에는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13년 제6회로 졸업하고 1914년 1월 14일 경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경북지방 첫 목사가 되었다. 그는 경남 진해의 웅천교회 목사를 시작으로 경산사월교회(1915), 경남 진영(1920), 대구중앙교회(1925), 구미 상모교회를 거쳐 1931-36년 어간에는 대구제일교회 최재화 목사 시무중 동사목사로 봉사했고, 1941년 1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이상규 교수의 부산기독교이야기 11] 베어드가 말하는 ‘김 서방’은 누구일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