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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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즈먼은 1950년에 『군중 속의 고독』이란 책을 출판했습니다. 리즈먼은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와 그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인간을 꼽았습니다. 리즈먼의 진단대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군중속의 고독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은 넘쳐나지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어 외로움을 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은 많으나 친구는 없습니다. 군중 속에 있지만 사랑을 나누는 이는 적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해체를 들고 있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많은 것만으로 형성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들 상호간에 연결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를 통해 사랑이 흐를 때 사회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주의가 극대화되면서 사회가 해체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든 관심이 없고, 심지어 사람이 죽어나가도 나 몰라라 합니다. 이 와중에서 군중속의 고독은 모든 사람들의 고통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아주 특이한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스로 고독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앞에서 언급한 고독을 외로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남들이 떠나감으로써 홀로 남겨지는 것, 그래서 고통을 받는 것은 외로움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반면에 스스로 떠나감으로써 홀로 있게 되는 것을 고독이라고 구분해서 부르고 싶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를 사람들로부터 격리시키려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만들어내는 말들과 생각들로부터 자신을 떼어 놓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의 소리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킬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세계로부터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당신의 사람들에게 당신의 소리를 들려주시기 위해 그들을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부르시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의 소음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음모가 넘쳐나던 애굽의 궁궐에서 사십 년을 살던 모세를 인적이 없는, 세상의 소리로부터 격리된 미디안 광야로 부르신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모세는 거기서 떨기나무 불꽃 중에 나타나신 하니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엘리야는 호렙산 동굴에 홀로 있던 중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 전에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약대 털옷을 입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한적한 곳으로> 가셨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으로 가신 이유는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그 음성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온갖 소음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직 깨어일어나기 전에,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깨어 일어나셨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야말로 거룩하고 축복된 고독을 찾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새벽 아직 밝기 전에 한적한 곳에 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모습입니다. 도시는 소란스러운 곳이며 소돔과 고모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안에서 하루 종일 만들어지는 죄악의 소음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한 복판에 있습니다. 그 욕망과 욕망이 부딪히는 곳에 살면서 우리의 욕망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없다고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그런 외로움 따위는 초월해야 합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고독을 찾아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외로우십니까? 사람들이 없어 느끼는 외로움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고독으로 바꾸십시요. 외로움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입니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면 지금도 늘 말씀을 걸어오시는 하나님께 귀를 여시기 바랍니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이렇게 함으로 주님을 향해 더 열린 귀와 마음을 가진, 더 깊은 영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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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연구] 외로움에서 고독으로(마가복음 1장 35-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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