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홍석진 목사.jpg
일본을 방문하기에는 마땅치 않아 보이는 계절 삼월에 우연한 기회로 나고야 성(城)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우선은 고구려성의 흔적이 있어 놀랐습니다. 성은 굉장히 높았는데, 들어가자마자 세 사람의 초상화가 나타났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카와 이에야스, 일본을 통일한 이들 고향이 나고야라고 합니다. 성 꼭대기에 서니 사방으로 창이 나있는데 인근 일대가 다 보였습니다. 멀리서도 성이 보이도록 높이 만들었고, 백성들은 그 성을 바라보면서 막부(幕府)의 지배자들에게 머리를 숙인 것이지요. 나고야와 교토와 나라로 이어지는, 일본의 심장이라도 해도 좋을 땅을 바라보면서 무엇보다도 실감한 사실은, 저들의 가슴 속에는 아직도 그 옛날 나고야와 오사카 성의 위용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1909~1967)쓴 <깃발>입니다. 거제에서 태어났다는 설도 있고, 본시 통영 출신이지만 동래고보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교편을 잡고 살았으니 우리 고장과도 관련이 좀 있는 사람입니다. 청마가 이 시를 남긴 해가 1939년이었습니다. 일본이 전쟁의 광기에 휩싸였을 때였습니다. 시인은 높다랗게 세워진 푯대와 거기에 매달려 어쩌면 육풍(陸風)에 기대어 바다를 향해 나풀거리는 깃발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으로 이 시를 남겼을까요?
청마가 남긴 이 시에서는 기독교적인 향기가 느껴집니다.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는 바울을 떠올리게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사도를 매개로 삼지 않아도, 오로지 맑고 곧은 주 예수의 십자가를 생각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는 또 어떻습니까? “애수(哀愁)”가 아니라 마치 음독(音讀)이라도 한 것인 마냥 “예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로 들리지 않습니까?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시인은 선문답처럼 질문만 던지고 말았지만, 그 답을 알 것도 같습니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공중에 높이 들리게 해서, 그를 쳐다보는 자마다 승리를 얻고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아니면 누구시겠습니까?
유치환은 어릴 때 일본 도쿄에 있는 도요야마 중학교에서 수학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관동대지진이 일어났고, 어린 소년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빚어낸 참상(慘狀)을 목격합니다. 이때 고국의 교회주일학교 벗이었던 소녀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써 보냈고, 귀국해서는 결국 그녀와 결혼했는데 이 때 화동(花童)으로 섰던 어린이 중 한 명이 훗날 김춘수 시인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결국 주일학교 학생이었을지도 모르는 유치환의 깃발은 빼앗긴 조국의 들판에 세워진 구원의 열망이었고, 망국의 아픔을 곱씹고 살던 백성들의 눈에 우뚝 세워진 기치(旗幟)였습니다(사 11:10). 그때로부터 이제 희년(稀年)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드(THAAD) 하나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법적으로는 빼앗긴 땅이었으나 정신만은 시퍼렇게 살아있었던 그때와 반대의 형편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 가슴 속에 휘날리는 깃발은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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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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