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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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인도차이나 문제로 강대국의 총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 중국의 주은래가 제일 먼저 도착하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팰래스 장관은 시간이 급해서 제일 늦게 도착을 했다. 그가 도착하자 주은래가 반갑다고 악수를 청했다. 그런데 팰래스는 “나는 지독한 공산주의자와는 악수를 나눌 수가 없다”고 하면서 매몰차게 악수를 거절해 버렸다. 그 때 주은래가 얼마나 무안했는지 모른다. 낮이 뜨거워서 회의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 일로 인해 주은래는 앙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앙심은 펠래스에 대한 개인적인 앙심이 아니라 미국을 향한 앙심으로 비화되었다. 
그래서 주은래는 중국을 20년 동안이나 다스리면서 미국과 원수를 안 맺을 사소한 것을 가지고도 꼬투리를 잡아서 원수를 맺었다. 그리고 마침내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주은래였다. 이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얼마나 많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소비했는가? 마침내 미국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가 되었다. 이유도 없는 전쟁, 이윤도 없는 전쟁을 끝내는 실패한 전쟁으로 마감해야 했다. 
훗날 역사가들은 미국과 중국의 단절과 앙숙관계가 주은래의 호위를 받을 줄 몰랐던 펠래스 때문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주은래와 펠래스가 그 때 반갑게 악수를 하고 호의를 베풀었다면 미국과 중국의 단절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두 사람이 화해하지 못해서 나라는 불화하게 되었고 월남전쟁의 파국까지 몰고 간 것이다. 이는 지도자 한 두 사람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한 두 사람의 갈등과 오해 때문에 집단의 오해과 사회적 갈등으로 빚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 문제도 큰 문제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문제, 한 두 사람의 오해와 갈등이 교회의 큰 갈등으로 번진다. 한 사람의 목사와 한 사람의 장로와의 갈등, 한 사람의 장로와 장로의 오해, 집사와 집사의 불화가 온 교회의 갈등과 불화의 요인이 되고 만다. 
20세기가 분열과 반목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합과 화해로 가는 한몸 시대다. 그만큼 우리 시대는 화해와 통합의 정신과 사상이 중요하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실 때 평강의 왕으로 오셨지 않는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또 이웃과 이웃 사이를 화해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아기 예수님이 낮고 천한 말구유에 누우셨다. 그리고 비천하게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렇게 해야만 진정한 화해자요, 평강의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도 그냥 화해자가 될 수 없다. 그냥 피스메이커가 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낮은 곳에 오신 예수님의 정신과 비천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영성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여야 한다. 성탄절을 맞으면서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이 시대의 화해자가 되자. 금번의 성탄 선물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화해의 선물을 건네자. 그래서 신년에는 모든 이들과 더불어 화목관계를 이루고 애틋한 하나됨을 이루자. 진정한 성탄 선물, 그것은 바로 화해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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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진정한 성탄 선물,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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