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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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을 좋아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교회 뒷산을 오른다. 그런데 그런 작은 산 말고 정말 높은 산을 오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번은 장로님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 등반에 도전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하필 그때 내가 너무 무리한 목회 일정을 소화하다 몸에 탈진이 와 버렸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고 속이 거북하여 오바이트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장로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리산 노고단 등반에 나섰다. 나는 산을 그렇게 좋아하지만 몸 상태도 좋지 않고 특히 거칠고 가파른 돌길이라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수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결국 정상에 올라가서 보니 골짜기가 그렇게 깊을 수 없었다. 그 깊고 푸른 지리산 골짜기의 수려한 경관 앞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깊은 사상과 지혜는 시설 좋은 호텔이나 고급 저택에서 나오지 않는다. 역사를 보면 사상과 지혜는 궁궐이나 공작, 백작 집에서 나온 게 아니라 사막이나 광야, 수도원 같은 곳에서 나왔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꿈이 높으면 시련도 많다. 골짜기가 없는 산이 어디 있는가. 골짜기를 통과해야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낮은 산을 올라가면 골짜기를 힘들지 않게 통과한다. 그러나 높은 산을 올라가려면 그만큼 깊고 험한 골짜기를 올라야 한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 수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고 강연을 하고 집필 활동을 하는 화려한 모습만을 바라보며 동경한다. 그러나 나의 인생에도 깊은 골짜기가 있었다. 아니 그 골짜기는 너무나 깊고 어두웠다. 내가 그 골짜기에서 쓰러져버렸다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였을까. 지리산 산자락의 무명의 시골 소년이 예수 믿는다고 집에서 쫓겨나와 홀로 고학으로 신학교를 다니며 온갖 고생을 다하였다. 
아무런 빛도, 희망도 보이지 않던 나날이었다. 그러나 나의 가슴에는 꿈이 있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20대 청년 시절, 모두가 다 반대하던 화순 백암리에 들어가서 교회를 개척했다. 또한 맨몸으로 서울로 올라와 가락동 23평 지하상가에서 개척을 하여 오늘날 교회 부흥을 이루었다. 
나는 깊은 골짜기에서 포기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아니 불가능에 타협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걸었다. 백암교회 개척 시절, 눈밭 위에서도 무릎을 꿇고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며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아냥대던 그 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의 꽃씨를 심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꿈의 정상에만 오르려고 하지 골짜기를 통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조금만 힘들어도 절망하고 포기한다. 그러면 결코 정상에 오를 수 없다. 
내가 20대 청년시절 첫 교회 개척을 실패했다면, 오늘과 같은 큰 목회를 할 수 없었으리라. 그 험한 골짜기의 연단과 훈련이 있었기에 나의 꿈은 더 불타올랐고 영성은 금강석처럼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유연한 리더십과 사랑과 섬김의 포용력을 갖추게 되었다. 꿈을 이루려면 쓰디쓴 고통의 땀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야한다. 그때에야 세상은 그대에게 달콤한 성공의 열매를 맛보게 하여 주리라. 밤이 어두울수록 아침이 가깝다. 별이 지면 태양이 뜬다. 깊은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면 정상에 설 수 있다. 그대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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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칼럼] 높은 산은 골짜기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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