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장기려 박사의 25년 시대를 마감하고 박영훈 새 원장 시대에 들어가
1976년 6월 25일 박영훈 장로의 제2대 원장 취임과 장기려 박사가 퇴임하는 그 날 장 박사는 인사말을 통해 “박영훈 전문의사가 저의 후임으로 원장에 취임하는 것은 무한한 기쁨이요 또한 여호와이레(하나님이 준비 하셨음)라고 믿는 바입니다. 그래서 이 병원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수년 전부터 이 병원에 불화가 생겨서 인사문제가 어려워졌고 또 작년에는 경리상 부채가 생겨서 이 모든 책임을 느끼고 두어 번 이사회에 사표를 제출하였으나 그때마다 사표를 반려해 주셨고 오늘까지 만 25년간을 근속하게 해 주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요, 불명예로 가득 찬 저를 명예원장으로 추대해 주신 총회와 이사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새로 취임하는 원장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시고 병원 발전에 사명을 다하실 것을 믿으면서 이것으로 저의 퇴임사를 드립니다”라고 고별사를 대신하고 떠났다. 

▲장 박사의 신앙정신은 보수적이었으나 훗날 무교회로 기울어
장 박사가 젊었을 때 평양 산정현교회에서의 신앙은 그야말로 보수적인 신앙에서 배워 교회장로직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월남하여 부산 산정현교회의 장로로 있던 약 10년간에는 한국교회가 분열과 분쟁으로 교권이 활개를 칠 때였다. “아, 이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한국교회를 한탄하시지 않겠냐”며 1970년대부터 우찌무라 간조와 김교신, 그리고 함석헌 선생을 초청하여 무교회주의적인 신앙사상을 주입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장 박사는 그 당시 분열로 망신창이가 된 한국교회를 보고 최초로 교회를 세웠다. 중구 부평동 소재한 신성교회는 어느 교파에 가입 된 적이 없는 독립 교단으로 몇 년간 있다가 박광선 목사가 시무 할 당시 사하구 괴정동으로 대광교회와 합병해 통합 부산노회 부산 산정현교회로 명칭을 바꾸어 새로 출발 한 것이다. 
장 박사는 보수적 신앙을 가졌지만 중간에는 무교회주의적인 작은 종들의 모임으로 가정에서 주일날 예배 드리고 십일조는 아예 삭제하여 스스로 헌금하는 퀘이커 신앙으로 탈바꿈 했다고 볼 수 있다. 부산모임에 나가 보면 거의 우찌무라 선생의 강의나 주석을 가지고 성경공부 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 함석헌 선생을 초청하여 강의를 듣곤 했다. 함 선생도 장 박사는 교파를 멀리하고 순수 복음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교회가 다시 종교개혁이 일어나야한다고 역설했다. 
장 박사가 부산 산정현교회 원로장로로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교회를 떠나고 말았을 때에 담임목사였던 박광선 목사가 가장 괴로워하며 안타까워한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장 박사 혼자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손동길 안수집사 등 몇몇 교인들도 장 박사를 따라 교회를 떠나는 상황이 되었다.

▲장 박사는 왜 기존 교회를 떠나가게 됐을까?…평화주의자로 발돋움
그것은 분열로 얼룩진 한국교회에 희망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라며 종종 말씀 가운데 강조했다. “이 땅의 불쌍한 동포들의 살 길은 하나님의 나라 곧 평화, <샬롬>”이라고 설파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하니 장 박사가 한반도의 분단을 걱정한 나머지 이 땅에 전쟁이 없는 평화를 주러 왔노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장 박사는 평화주의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료된다.
장 박사는 한시도 이북에 두고 온 처자식을 잊지를 못했다. 그 심정으로 한반도의 평화가 찾아오는 남북통일을 이루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라고 늘 강조해 왔다. 세계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는 오로지 복음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같이 이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그의 차원 높은 신앙을 읽을 수가 있었다.

▲장기려 박사의 신앙과 소명의식은?
장 박사는 1972년부터 복음병원 내 불화를 보고 ‘나의 생애와 헌신’이란 부산모임 회지에 이렇게 그의 심정을 적었다. “그때 나는 나의 책임이 가난한 환자의 진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평화를 이룩하는데 있음을 절감했다. 환자 진료보다는 평화에 대하여 더 힘써야겠다고 느꼈다. 원내의 평화뿐만 아니라 이 민족의 평화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살아야하겠다”는 소명의식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장 박사의 신앙적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1965년 즈음에 일본 야나이하라 타다오 선생의 히브리서 11장 1~4절까지를 해석한 <기독교 이상주의>라는 글을 읽고 난 뒤 그 사상 정신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교회정신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도록 신앙에 심취한 것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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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장기려 장로의 신앙 사상과 그의 역사 의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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