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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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을 앞두고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 건물이나 거리에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비롯한 장식이 만발했습니다. 공공장소라 할 수 있는 부산역 광장이나 광복동 거리에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사회는 성속(聖俗)을 냉정하게 구별하고 분리하는 농도가 아직은 그리 진하지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맘때면 TV나 영화관을 통해 거침없이 기독교 드라마나 영화가 상영되던 불과 20년 전을 생각한다면(‘나는 할렐루야 아줌마였다’(1981),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2년), ‘죽으면 살리라’(1982년), ‘새벽을 깨우리로다’(1989년))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느낄 만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공교롭게도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이 법적 이슈가 된 때도 비슷합니다. 1984년 린치 대 도넬리 사건(Lynch v. Donnelly : 465 U.S. 668)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예수 탄생 장면을 포함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市) 당국이 시(市) 예산으로 설치하는 것을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1989년 앨리게니 대 ACLU 사건(Allegheny County v. Greater Pittsburgh ACLU)에서는 군 법원 계단에 예수탄생화를 걸어 전시한 일과 정부청사 앞에 세워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촛대 장식이 문제 되었는데 연방대법원은 예수탄생화에 대해서는 위헌(違憲), 크리스마스트리와 촛대장식에 대해서는 합헌(合憲)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지금도 미국은 연방정부청사 앞에까지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합니다. 그러면 그 옆에 무신론자들이 ‘신은 죽었다’(니체)나 ‘종교는 아편이다’(마르크스)라는 문구가 새겨진 팻말을 세워놓곤 합니다. 낯선 풍경이지만 머지않아 겪게 될 한국의 현재형 미래라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관련해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최근 수년 간 갑자기 교회의 십자가 불빛이 도시 미관 상 과하다거나 일반 시민들의 수면에 장애요소가 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회마다 외벽에 웅장하게 늘어뜨리는 밝은 조명 장식도 장차 문제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환경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면서 특히 가로수나 화단에 설치하는 작은 꼬마전구가 식물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하는 견해가 늘었습니다. 장식용 꼬마전구의 발열량이 식물을 고사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공식 연구 결과가 있지만(산림청 임업연구원, 2013), 낮엔 광합성을 하고 밤에는 호흡을 해야 하는 나무의 생체적 리듬을 깨뜨려 결국 성장을 저해한다는 혐의만큼은 면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앞에 심어 놓은 나무나 화단에 지나치게 화려한 조명 장식을 설치하는 일 또한 한번쯤은 재고(再考)해야 할 시점입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에너지 부존 국가에서 과도한 크리스마스 조명은 불필요한 전력 낭비가 아닌가 하는 사회적 비판 앞에서도 조금은 겸허해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나 장식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상징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 구주 오심을 축하하기 위해 설치하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성경적인 것도 아니요 신학적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만일 크리스마스트리나 장식이 오히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교회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면 문제 아니겠습니까? 구세군 자선냄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따뜻한지와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성탄절에도 교회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상징과 장식 설치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지만 절제와 검약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사실 예수님은 베들레헴 작은 마을 구유에서 나시지 않았습니까? “(전략)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예수님의 모습이면서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이요 특별히 성탄절에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진면목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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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크리스마스 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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