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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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말할 것도 없이 장기려 박사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손봉호 교수 같은 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장기려 박사를 꼽는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양자로까지 일컬어지던 양덕호 박사를 비롯하여 이건호 박사, 정태산 박사 강현진 박사 등도 장기려 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가 살았던 삶의 방식을 추수하는 문도들이다. 안양샘병원의 박상은 원장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나 장기려 선생의 정신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부산으로 내려와 복음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밟았고 지금도 그런 정신으로 성산생명윤리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필자 역시 장기려 박사의 신앙과 삶을 배우고자 그가 인도하는 성경공부모임이나 부산 부용동의 기독교사회관에서 모였던 ‘부산모임’ 말석에 앉아 말씀을 듣고 배운 바 있다. 후에는 부산 초량의 YMCA 건물에서 모이던 ‘종들의 모임’에 참석하여 휠체어에 앉아계시던 장박사님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인물을 존경하고 흠모하다 보면 사실과 다른 전설이 유포되기도 한다. 정도 이상의 경외심은 세월이 지나면서 확대 재생산되어 왜곡되거나 과장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교회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흔히 나타나는데 중세시대 성인전(聖人傳)에서 더욱 그러했다. 이런 경향의 역사편찬을 하기오그래피(hagiography)라고 말한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은 칼라일의 의도와 관계없이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적 숭배 혹은 절대화를 자극했다. 장기려 박사의 경우에도 이런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 한 가지 사례를 지적하고자 한다.
  장기려 박사의 일화 중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다. 복음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은 환자 한사람이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원장 장기려 박사가 “오늘 저녁에 이 담을 넘어 도망가시오.”라고 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선의의 월담권면이 처음 언급된 것은 모 출판사가 제작한 장기려 박사에 대한 책에서부터였다. 그 이후 이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재생산 되었다. 그리고 장기려 박사의 주된 담론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장 박사의 일이 아니다. 사실은 이러했다. 우측 골수염으로 고생하던 환자가 있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치료했으나 별 차도가 없었고 재산만 탕진했다. 그러든 중 복음병원으로 와 입원하였고 당시 외과과장 이상기 선생의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치료가 잘 되어 완치되었으나 퇴원하지 않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치료비를 낼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탁한 사정을 안 병실 간호사 김경애씨는 이상기 의사의 조수이자 외과 수련의였던 박영훈 의사에게 말했다. “치료비를 낼 형편은 못되고 밥만 축내고 있으니 차라리 오늘 저녁에 도망가라고 합시다.” 박영훈 의사 생각도 동일했다. 치료비를 받을 형편이 못되니 차라리 그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합시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박영훈 의사는 환자에게 여비까지 챙겨주면서 “오늘 저녁에 그냥 도망가시오”라고 말했다. 당시는 병원 울타리도 없었고 요즘같은 경비체계도 없었다. 그날 밤은 도망가기 좋은 환경이었다. 인적이 드믄 늦은 시간을 택해 그는 병원을 빠저 나와 당시 거주지였던 경남 산청군 척지리로 돌아갔다. 그가 1934년생인 정명헌이라는 환자였다. 1961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장기려 박사의 일로 각색되어 회자되었고, 장기려 박사의 아름다운 일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난한 환자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잃지 않으셨던 장 박사는 능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분이다. 그것이 장박사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장 박사에 대한 존경심이 감소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장박사의 일이라 하여 장 박사를 더 존경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실(fact)이 어떠한가이다. 팩트를 확인한 이상 그것을 밝혀두는 것이 역사학도의 의무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투스는 역사를 ‘탐구하여 획득된 지식’으로 정의했다. 금년이 장기려 박사 20주기가 된다. 그가 주로 일해 왔던 고신대학교 복음병원 외에도 인제대학병원, 부산대학병원 등도 그를 기리고 있고, 그의 이름 석자로 후광을 노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역사의 장기려’에 무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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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 장기려 박사는 월담(越壁)을 권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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