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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에서 일한 북장로교 선교사들, 노세영
2020/02/25 14:1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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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영(盧世永)으로 불린 시릴 로스(Cyril Ross)는 1868년 4월 24일 영국 에딘버러 피블스(Peebles)에서 출생했으나 부모를 따리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에서 성장했다. 그의 가정배경이나 초기 교육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없으나 초중등교육을 마친 그는 매서추세츠 주 노스 아담(North Adam)에 위치한 윌리암대학(William College)에 입학했다. 그 후 해외 선교의 이상을 가지고 매코믹신학교에 입학하여 1897년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의사인 수잔(Susan Shank)와 결혼했고 선교사 인준을 받은 그는 곧 한국선교사로 파송된다. 1897년 10월 11일 내한 한 그는 부산으로 배속되었다. 윌리엄 베어드가 대구지부로 전출하게 되자 그의 사역을 계승하기 위해 미국북장로교는 부산으로 오게 된 것이다. 노세영은 베어드가 떠난 이후 그의 사역을 계승하는 임무를 담당하게 되어 그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지역순회와 개척전도였다.
1891년부터 부산에서 사역하기 시작한 북장로교 선교사들도 부산과 경남일원을 순회했는데, 부산에 온 노세영은 배정된 북장로교지역을 순회하며 지역교회를 후원했다. 그는 호주 선교사들과 협력하면서 일했고, 박도면씨를 경남지방 권서인(勸書人)으로 임명하여 함께 지방을 순회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의 초량교회 제일영도교회 항서교회 등을 순회했고, 구포, 김해, 함안 마산 등 경남지역을 순회하며 교회를 개척하거나 설립된 교회를 시찰했다. 예컨대 그는 지금의 제일영도교회인 영도교회 개척 초기에 이 교회의 설립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비록 제일영도교회 교회 연혁(1995년도 교회요람)에는 “1896년 본 교회는 설립자 김치몽이 자기 집을 헐어 예배처소를 만들고 미국북장로교 소속 선교사 로세영, 사보담 양씨를 초청하여 예배드림으로서 시작되니 교인은 김치몽 씨 가정 외 2 가정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로세영은 1897년 10월에, 사보담은 1900년 11월에 부산으로 왔기 때문에 1896년 영도교회 설립일에 초청되었다는 것은 옳지 않다. 아마도 1897년 이후 로세영은 영도교회를 돌보고 교회 행사에 방문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교회 연혁에서는 설립시 관여한 것으로 잘못기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1899년에는 함안지방을 순회하던 중 함안이령교회 설립에도 관여하게 된다. 이 점에 대한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기록은 다음과 같다. “함안군 이령(二靈)교회가 설립하다. 선시(先是)에 선교사 로세영과 의사 어을빈의 인도로 김세민(金世民)이 신종하여 교회가 성립되니라” 곧 김세민은 노세영에 의해 영수로 임명되었다.
1901년에는 마산문창교회도 순회했음을 다음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구마선 교회가 설립되었고, ... 그후 선교사 노세영이 래(來)하여 학습 7인을 세우고 부산교회 재직이 윤회인도(輪回引導)하였으며...”(88쪽) 이때를 전후하여 부산의 초량교회에도 관여하였음을 보여준다. 1901년분 사기에 보면, “부산부 영주동(瀛洲洞)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노세영의 전도로 강형린(姜亨璘) 장여익(張汝益) 박원일(朴元一) 김성윤(金成允)이 신종(信從)하여 사가(私家)에 예배하다가 교우가 점가(漸加)하여 초옥(草屋)을 매수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고, 그 후에 와제(瓦製) 14평 예배당을 개축하니라.”(89쪽) 이 기록도 정확한 기록이라고 할 수 없다. 초량교회는 1893년 설립되었는데 아마도 그 이후의 역사를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부에서 사역하면서도 1900년 10월에는 대구의 헨리 부르엔과 더불어 평양으로 가 마펫과 같의 그의 사역자를 둘려보는 여행에 동참하기도 했다.
1897년 10월 내한 한 이래 약 5년간 일했던 그는 1902년 11월25일 평북 선천지부로 전임하게 된다. 부인과 아이들은 1903년 4월 선천으로 갔다. 그 후에는 강계에서 활동했다. 1903년에는 강계로 이동하여 만주지방까지 전도했고, 1912년 장로교총회가 조직될 당시에는 초대 평북노회장으로 피임되기도 했다. 노세영은 매우 학구적인 인물이었다. 선교사로 일하면서도 프린스톤에서 신학사(BD), 파크대학(Park College)에서 문학석사(MA), 달라스신학교에서 박사(ThD)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개척 전도, 교육활동, 성경개역 작업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1937년 4월 한국에서 은퇴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의사인 부인은 부산에서 하디의사를 도와 의료활동을 했다. 후에는 선천 강계지역에서 의료선교사로 크게 활동했다. 귀국 후 1954년 6월 16일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소천했고, 남편 노세영은 1963년 2월 5일 캘리포니아 그랜데일에서 사망했다. 그의 딸 Lillian Ross(盧一蓮)은 아버지에 이어 한국에서 1926-54년 어간 대구지방에서 제2대 선교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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