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홍석진 목사.jpg
 
바둑기사 서봉수 9단이 의미심장한 국내 최초 기록을 남겼습니다. 연말을 며칠 앞두고 한국기원에서 열린 시니어리그 챔피언 결정전 1경기에 패배하면서 통산 1,000패를 달성한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1,000패”, “뿌듯한 1,000패”였습니다. 1970년 17세 나이로 입단하여 근 50년 동안 바둑 외길을 걸으며 1,692승 3무 1,000패, 승률 62.85%에 최다대국 2위, 최다승 3위의 대기록도 보유하고 있는 그는, 비록 조훈현과 이창호라는 불세출의 사제기재(師弟棋才) 때문에 만년 2인자에 머물렀으나 결코 좌절하지 않고 언제나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41세 때인 1993년에는 제2회 응씨배 세계바둑대항전에서 기적의 역전 우승을 이루었고 1996년 제5회 진로배 국가연승대항전에서는 기적의 9연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현장에서 끊임없이 연구하며 때론 승리하고 때론 패배하여 전인미답의 처연하게 아름다운 고지를 정복했으니 실로 ‘위대한 패배’라 하겠습니다.
그보다 며칠 전 이세돌 9단 역시 또 하나의 역사를 썼습니다. 한국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한돌’과 대국을 펼쳐서 1승 2패로 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2016년 구글 ‘알파고’와 대결하여 1승 4패로 진 적이 있습니다. 1997년 IBM의 디퍼블루(deeper blue)가 인간을 이기고 체스 게임에서 승리했지만 고도의 직관을 요하고 무한대급의 변수가 존재하는 바둑만큼은 인공지능(A. I.)이 승리할 수 없으리라고 장담해 왔던 터라 이 9단의 패배는 인류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그를 폄하하고 힐난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인간의 승리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굴욕적이지만 두 점을 깔고 두는 접바둑으로 도전해서 마찬가지로 1승을 거두고 장렬하게 패배했습니다. 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맞서는 결기, 패배의 굴욕을 딛고 다시 도전하는 투혼, 이 9단은 실수가 없는 인공지능이 영원히 흉내 낼 수 없는 패배의 미학을 거듭 보여준 셈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현대인들은 패배를 꺼리고 심지어 패배를 두려워하는 성향을 보입니다. 승리와 성공이 우상이 된 시대이다 보니, 패배공포증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등장했는가 하면(kakorraphiophobia) 실패공포증으로 일컬어지는 병리 현상도 나타나기에 이르렀습니다(atychiophobia). 패배를 향한 관용과 용서와 위로를 보여주어야 할 종교계마저도 승리지상주의와 성공신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어떤 종교가 가장 신도수가 많은가? 무슨 종파가 제일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는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파는 어디인가? 교회마저도 성도 숫자나 재정 규모가 증가하면 기뻐하고 그 반대면 실망하고 좌절하기 일쑤입니다. 부흥 일로를 달려온 한국교회에서 부쩍 늘어난 일종의 패배공포증 같은 증상들입니다. 양적 성장 없는 질적 성숙, 외적 팽창 없는 영적 심화, 공간적 확장 없는 구심력 강화 같은 현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위대한 패배로 여기고 기뻐할 수는 없을까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패배였습니다. 부끄럽지 않고 고결한 패배였으며, 창피하지 않고 떳떳한 패배였습니다. 애초에 교회는 그렇게 위대한 패배의 터전 위에 세워졌고, 위대한 패배의 가르침 속에 지어져갔습니다. “잃고자 하는 자는 얻고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마 11:39).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 44).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도다”(행 20:35). 그리스도의 승리는 역설적 승리였습니다. 잃고자 했는데 얻었고, 주고자 했는데 받았으며, 지고자 했는데 이긴 승리였다는 뜻입니다. 패배는 잠깐이었지만 승리는 영원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도 마찬가지 원리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산에 있건 저자 거리에 있건 광장에 있건, 수치스러운 승리보다 자랑스러운 패배를 꿈꾸며, 잠깐의 위대한 패배로 영원의 영광의 승리를 거두는 그런 한국 교회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사칼럼] 위대한 패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