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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기독교이야기] 부산에서 일한 북장로교선교사들, 안의와
2019/11/25 14:4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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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아담스, 곧 안의와(James Adams, 1867-1929) 선교사는 ‘대구경북지방 선교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첫 사역지는 부산이었다. 부산에서 지낸 첫 2년 4개월은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사회를 익히는 준비의 기간이었고, 한국에 대한 그의 인식은 부산에서 형성되었다. 인디에나주 맥코이 출신인 그는 워쉬번대학과 존 홉킨스대학을 거쳐 1894년 매코믹신학교를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YWCA에서 일하던 넬리 딕(Nellie Dick, 1866-1909)이라는 여성과 혼인했다. 안의와 본인은, 1891년 남편과 더불어 내한한 에니 아담스(Annie Adams Baird)의 동생으로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진 가문이었고, 안의와의 부인 또한 그러했다. 부인 넬리 딕의 언니는 이미 아프리카 선교사로 일하고 있었고, 선교에 대해 깊이 헌신된 가문이었다.
신학 수업과 더불어 함께 일할 배우자까지 얻은 아담스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의 파송을 받고 1895년 5월 29일 부산으로 내한했다. 이들 부부는 북장로교의 38, 그리고 39번째 선교사였다. 넬리 딕은 1909년 10월 31일 대구에서 사망하게 되지만 아담스는 1921년 7월 13일 은퇴하기까지 36년간 부산과 대구에서 활동했다. 그가 부산에서 조선에서의 사역을 준비하고 지내던 중 1897년 11월 1일에는 그의 한국어 조사 김재수와 더불어 부산을 떠나 선편으로 대구로 갔고, 대구경북지방 기독교의 초석을 놓게 된다. 그가 대구에서 서면욱(徐勉煜)이라고 불린 서자명(徐子明, 1860- )이라는 첫 한국인을 전도하게 되는데 그는 1899년 6월 16일 세례를 받게 되어 대구경북지방 첫 수세자가 되었고, 대구지방 첫 교회인 대구제일교회 신자가 된다. 곧 그는 대구 지방 첫 근대병원으로 장인차 의사(Dr Woodbridge O. Johnson)가 세운 제중원의 보조원으로 일하게 된다. 아담스는 대구제일교회에 이어 사월교회(1898.4), 반야월교회, 범어 교회 등을 설립하게 되고, 1906년에는 계성중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남자소학교라는 이름으로 1902년에 시작되었다. 이런 그의 활동으로 대구경북지방 기독교의 초석을 놓았고 1923년 공식적으로 은퇴하고 귀국하게 된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29년 켈리포니아주 버클레이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으나 그의 3남 1녀 중 장남인 에드워드 아담스(Edward Adams, 1895-1965)는 아버지를 이어 제2대 선교사가 되어 1921년 12월 24일 내한한 이래 대구와 재령에서 일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아담스의 사역은 부산에서 얻는 경험과 자형 베어드로부터 수득한 사역의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도 자형 베어드처럼 일기, 편지, 그리고 선교보고서를 남겼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중요한 사료가 아닐 수 없다. 부산 체류기 그가 남기 기록은 베어드의 기록과호주선교사들의 기록을 보완해주고 있어 보다 객관적 사실 접근에 유용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예컨대, 그는 1895년 6월 24일자로 북장로교선교부 총무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가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사실을 이재야 알립니다. 우리는 4월 29일 떠나 5월 29일에 도착하였는데, 매우 짧은 여정이었습니다.” 이 기록에 근거하여 그가 부산에 도착한 때가 5월 29일이라는 점을 확인하게 된 곳이다. 그는 이렇게 이어갔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로 우리의 거주지는 아직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현재 데이비드(David) 씨와 같이 지내고 있는데 조만간 만족스럽게 해결되리라고 확신합니다. 6년을 기다린 후에 제가 드디어 이 선교지에 와있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6년전부터 준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나 엘리운드에게 보낸 9월 13일자 편지를 보면 적절한 주택을 구하지 못했고, 일본인 거류지의 주택을 매입할 계획이었으나 그럴 경우 한국인과 접촉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이를 포기하고 베어드 집에서 같이 살면서 베어드의 서제에서 지내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담스의 일기에 보면 중혼자 문제가 심각한 토론의 주제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중혼자에게 세례를 주고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드릴 수 없다는 자형 베어드의 입장을 알 수 있고, 또 호주 선교부 내의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분명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그의 부산 체류가 2년 4개월에 불과했지만 한국선교를 위한 준비 기간이었고, 이 기간 그가 남기 기록은 초기부산 지방 기독교 상황을 헤아릴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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