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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따뜻하게 말해 주면 좋을 텐데
2019/10/28 12:2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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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진 목사.jpg
 
광장과 광장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마침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폭탄 같은 시월을 슬픔과 충격으로 가라앉혀버렸습니다. 가수 설리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열한 살 아역배우로 데뷔해서 이제 스물다섯의 그 나이답지 않은 앳된 미소와 그 나이답지 않은 처연한 눈매 가에는 여전히 맑고 순수한 심성과 동시에 몸부림치며 감당했었던 누군가로부터의 질시와 혐오들이 배여 있었습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페미니스트의 선봉이 되어 낙태죄 반대, 노브라 논쟁 등 전선에 서서 평범한 연애사마저도 엄청난 루머와 악플로 시달려야 했던 그녀, “그래도 욕하는 건 싫다. 이게 되게 문자로 남는다는 게 그 사람의 감정이 안 보이니까 얼마나 무서워요. 조금 따뜻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가끔은 칭찬도 칭찬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세상을 떠나기 8일 전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1986년 독일의 울리히 벡(Ulich Beck)은「위험사회(Risikogesellschaft)」를 발표합니다. 현대사회는 그의 예지처럼 환경오염이나 빈부격차와 같은 현대적 위험에 직면한 것이 사실입니다. 동시에 예상을 뛰어넘는 새로운 위험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자연이나 사회집단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양상의 위기 가운데 몰릴 때가 많습니다. 가수 설리 양을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온라인 욕설이나 악플의 공격성을 보십시오. 처음도 아닙니다. 이전에도 우리는 몇 차례에 걸쳐 익명성을 무기로 삼은 인터넷 댓글로 인해 초래된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한 바 있습니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손끝 살인’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을 지경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새로운 위험 앞에서 무력하기만 한 개인에게 절실한 것은 공감과 소통과 신뢰, 무엇보다도 따뜻한 말 한 마디임을 상기하면서, “조금 따뜻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로 끝나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0년 한병철은 독일에서「피로사회(Müdigkeitsgesellscaft)」를 발표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21세기 사회는 부정성이나 타자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과 내재성의 테러로 몸살을 앓습니다. ‘하지 말라’의 억압이 아니라 ‘할 수 있다’의 긍정 과잉에서 문제가 발생하며, 타자(他者)가 아니라 자아(自我)로부터 말미암는 문제가 보다 심각합니다. 각 개인에게 소진(Burnout)과 더불어 찾아오는 심각한 질병이 만연한 세상, 이를 한병철은 또한「우울사회」라 명명합니다. “실제 내 생활은 너무 구렁텅이인데 여기 바깥에서는 밝은 척하는 게… 너무 이게 사람들한테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살지 말라 해서, 그냥 되게 양면성 있게 살아가고 있어요. 지금.” 설리가 마지막 방송에서 남긴 말입니다. 구렁텅이 속에서도 밝은 척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그런 세상으로부터 자유롭습니까?
2012년 김승섭 교수는「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발표하면서 ‘병든 사회’를 거론하며 최근 인터뷰에서는 “너만 힘드냐 나는 더 힘들다, 마치 고통 올림픽이 펼쳐지고 있는 듯”한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조커(JOKER)>는 빈부격차와 차별과 혐오가 극심하지만 치료할 역량도 없고 회복 의지도 없는 고담 시에서 조커가 우연한 기회에 분노에 찬 루저(loser)들의 영웅이 되어 사회를 파괴한다는 내용입니다. 공감하니까 흥행하겠지요? 설리가 한 달 전 손으로 쓴 편지에 적힌 내용을 마지막으로 소개합니다. “매 순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고 그들 덕분에 웃었고 용기 낼 수 있었습니다. 삶은 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분들이 곁에 있고 소중한 시간들도 모두 같이 만들었습니다. 저도 여러분께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작은 온기(溫氣)나마 되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서로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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